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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신성의 ‘빛’을 찾아서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느낄때 오히려 내 안에 '빛'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두려워한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을 이겨냈다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할만큼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후엔 이 이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지만 근본적인

‘죽음’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늘 외롭고 고독하다는 마음을 지니며 살았다.

 그래서 누군가와 쉽게 친해지기 쉽지 않은아이였다.

 누군가와 함께하면 그 끝을 헤아릴때 헤어짐이 너무 깊고 슬퍼 다시는  혼자 남고싶지않아서 필사적으로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 이기적인 인간인것 같다.

나의 외로움이 너무 짙고 싫어서 누군가 한명을 놓치지 않고 깊고 깊게 끈을 얽매여 놓는다.

 헌데 그 끈에 나의 발이 걸려 넘어질 줄이야.


인생사 인과응보라는데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도  나를 떠나지 못하게 꽁꽁 묶어 놓았었다.

명분이 좋아서 함께 동업을 하며 이것저것 빌려준것이지  생각해보면

그가 나를 떠나지 못하고 깊게 사랑할 수 있게 그냥 내가 장치를 걸어놓은 듯 하다.

그가 떠난 후 그의 뒷정리를 하면서 나는 내가 묶은 밧줄들이 내 올가미가 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처음엔 말도 없이 떠난 그에게 화가나고 속상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이 모든것이 다 나의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세상은 내가 한만큼 되돌려 받는것 같다.


나는 매일매일을 그가 떠난 후 ‘죽음’이라는 수렁 속에 갇혀 살고 있다. 자기 전 그리고 잠깐 깬 새벽이 가장 두렵고 차갑게 느껴진다.

그의 마지막 얼굴을 만졌던 그 서늘한 온도가 나의 새벽에 느껴진다.

그럴때면 갑자기 공황이 찾아와 기도를 하기도 하고 염불이던 성가던

모든 종교의 힘을 빌어 방어막을 쳐놓는다.  누군가가보면 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생과 사 사이에서  일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이별의 고통이 끝나지 않은 지금 엄마가 아프다. 무서웠다.

 왜냐하면 갑작스레 또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수 없으니까.

 나는 더이상 내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매일 기도한다.

 내 남은 수명을 떼어 내 부모에게 건네주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부모님을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 계시게 해달라고..

그들이 없이는 난 지금 일어날수없고 살아갈 수 없노라고..

이런 나의 기도를 신께서는 뭐라고 답할 지 모르겠다. 


 "어리석은 중생아 정신차려라 그 죽음이라는것을 정할 권리는 너에게 있는것이 아닌데 어찌 감히 니가 정하느냐"


라고 말하며 혼내는 목소리가 간혹 들린다.

허나 나는 말한다.


"감히 제가 한말씀 아뢰오니 저를 가엾이 봐서 제 소원을  꼭 들어주세요. 만약 제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제 남은 생을 다 바쳐 신께서 도와야할 모든 이들을 위해 살겠나이다.
 제 목소리로 제 손길로 제 눈빛으로 그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리는데 힘을 쏟겠으니 부디 우리 가족의 평안과 화목을 지켜주시어 앞으로 남은 10년은 제가 크게 효도하며 살 수 있는 영광을 제게 주소서.."


남편도 제 아이도 바라지 않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제 아이가되고  제 남편이되고 제 부모가되어 살테니 우리 가정을 지켜달라고 늘 기도중이다..


이렇게 두려움속에서 오들오들 떨며 사는 나에게  요가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나무는 흔들릴수록 뿌리가
 더 단단해지는 법이다.
지금 너도 강해지기위해 흔들리는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나의 두려움이 잘못된 것이 아닌 나를 강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하는 ‘빛’이 될 수 있구나 싶었다.  물론 아직 다 이해한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불안정함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내 안에 신성의 ‘빛’을 찾기로 결심했다.

물론 나에게 좋은 일들만 가득해 티끌없이 해맑고 행복만 아는 사람이였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어둠이 있기에 ‘빛’을 더 발견하고 밝혀 나갈 수 있는것 같다.

뭐든지 세상에 다 나쁜법은 없다.

나의 두려움 그 모든것이 나의 신성의 ‘빛’을 찾게하는 도구일뿐이니

많은 분들이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자신의 ‘생’을 느끼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신성의 '빛'을 찾기를 바랄뿐이다.

나 또한 두려움이 느껴질때마다 내가 지금을 살아가고 있구나 느끼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질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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