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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수 Sep 27. 2022

입대하는 날

항구에서 스무달

입대하는 날은 대개 멍하다. 멍한 얼굴로 전날 잡아두었던 숙소를 지나, 같은 모양의 까까머리를 시내에서 마주치고, 마지막 점심을 우물거리다 보면 어느새 초록색 강당이다. 공식적인 입대는 두시였으나 멍하게 걷다가 한시 가량부터 강당 앞에 서성이다 보면 얼결에 강당 안으로 일찍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렇게 어이없이 일찍 들어간 강당에서는 다시 나올 수 없었고 나는 두시까지 다시 멍청하게 서있었다. 비가 와서 습한 강당 냄새가 낯설었다.


입대하는 날에 다들 멍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의 이유는 상상력의 부족이다. 훈련소의 파괴적인 풍경을 상상하기에는 우리의 경험이 너무 따스하고 평범하다. 훈련소 정문을 지나가기 전에는 물론, 막상 훈련소에 입소해 신분을 등록하고, 번호를 부여받고, 보급을 받을 때까지도 우리는 아직 사회의 포근한 막에 둘러싸여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리둥절한 기분이다.


그 안온한 기분이 깨지는 순간은 다들 다르지만, 빠르던 늦던 다들 그 순간이 찾아온다. 오히려 일찍 찾아오는 편이 낫다. 내게 그 순간은 식사시간에 찾아왔다.


점심부터 조금씩 내리던 비가 저녁에 이르러서는 쏟아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산이 아니라 군청색 비닐 천떼기였다. 펴보니 다행히 천이 아니라 우의였지만 지난달 비가 왔을 때 쓰고는 어디엔가 처박아두었는지 지독한 냄새가 났다. 차라리 비를 맞고 싶은 심정으로 우의를 쓰고 걸었다. 소대장 지시에 멈춘 곳에서는 중앙아시아의 독재자가 지은 듯한 반듯하고 커다란 건물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게 식당임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식당의 컴컴한 출입구로 들어가자 당연하게도 표지판도, 배식 아주머니도, 차림표도 없이 거대한 강당에 파란색 고무가 씌워진 책상만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그 사이로는 울긋불긋한 조화가 가짜 흙에 담겨있었다. 왜 밥은 없지? 바보 같은 궁금증은 금방 풀렸다. 밥은 우리가 하는 것이었다. 강당의 세모 지붕이 너무 높아 현기증이 났다.


나는 배식 조였다. 더러운 식당을 청소하고, 다른 훈련병들이 오면 국과 밥을 나눠주는 역할이었다.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밖에서는 군청색 우의를 쓴 우울한 까까머리들이 식당 유리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운 바깥에 그들의 동그란 얼굴만 조명을 받아 하얗게 번들거렸다. 문이 열리면 소란스러워지겠지.


https://youtu.be/DCthAzNDi3w



소대장이 문을 열자 훈련병 발걸음 소리, 교관들이 꽥꽥거리는 소리, 식기류 부딪히는 소리가 공간을 메웠으나 실상 내 귀를 때리는 것은 그 소리가 아니었다. 어디에선가 군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도 없게 사방에서 울리는 군가는 높다란 천장에서 나오는 듯 착각을 일으켰다. 별안간 입대를 하고, 바보처럼 서서 기다리고, 지독한 냄새의 우의를 쓰는 건 다 괜찮았지만 이 수용소 같은 거대한 공간에 앉아 하늘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군가를 들으며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내 안온한 마음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정말 하늘에 스피커가 달려있나? 쳐다보니 천장에 스피커는 없고 까마귀들이 날아다녔다. 순간 내 마음에서 무언가가 툭 깨지고 난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이 년 동안 이런 곳에서 전역만을 기다리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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