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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현 Aug 16. 2024

"아버님"

생면부지의 낯 선 청년이 “아버님”이라고 하던 순간 내키지 않는 나의 노년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몇 해 전 핸드폰에 이상이 생겨 핸드폰 상점에 들어갔을 때 생긴 일이다. 대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창구 너머 안쪽에서 손님들을 응대하던 청년이 나를 향해 물었다. 

“아버님, 아버님은 어떤 일로 오셨어요?”

분명히 나를 쳐다보고 한 말이었지만 순간 멀뚱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디 아버님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나?’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옆이나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른바 젊은이들이었다. 상점의 청년이 아버님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없었다. 

‘아, 나를 보고 한 말이었구나’. 

짐짓 새로 깨달은 듯 스스로 마음을 수습했지만 처음부터 분명했던 상황이었고 다시 확실해졌을 뿐이다. 불과 10여 초 사이, 순식간에 전개된 일이었다. 그 청년을 다시 쳐다보았다. 왜 그러고 있느냐는 표정으로 그는 나의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를 부른 말에 대해 그 상점에 있는 사람 아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나의 행동을 재촉하는 그 청년의 표정은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당사자인 나만 낯설고 이상했다. 

어찌어찌 용무를 보았다. 그다지 만족스럽지도, 그렇다고 아주 불만족스럽지도 않은 정도로 핸드폰 문제는 해결됐던 것 같다. 지금도 그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용인한 ‘아버님’이라는 나의 위치를 정작 나는 남의 일 구경하듯 쳐다보았다. 나는 언제 어떻게 입은지도 모르고 어떤 옷을 입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 자연스럽거나 아니면 적어도 어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상점을 나오면서 ‘아버님’, ‘아버님’. 속으로 몇 번을 뇌까려 보았다. 집에 얼추 그 또래의 아이가 있으니 내가 아버지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사회적 칭호 ‘아버님’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너무 멀었다. ‘내가 네 아버지냐, 이 놈아!’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내 행동이 모르는 사이에 ’ 아버님‘이 됐나?’. 생각은 시계추처럼 이 끝과 저 끝을 왔다 갔다 했다. 주관과 객관 사이에 하늘만큼 땅만큼 격차가 있던 나의 노년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 생각은 지금도 왔다 갔다 한다. 따지고 보면 바뀐 시절은 이미 몇 해 전에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운동을 하다가 인대가 끊어졌을 때 담당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젊었을 때와 같다고 생각하고 뛰면 안돼요.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주의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버님’을 들어 본 적이 없던 그때는 무리하지 말라는 충고 정도로 이해했다. 몸은 객관적 변화이고 마음은 대중없는 주관이라는 뜻이었나? 

머리도 동년배 친구들보다는 세지 않아서 염색을 했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다. 이런 대화가 몇 번 오고 간 모임에서는 몇몇 친구가 “쟤는 머리가 세지 않잖아. 염색한 게 아니지”라고 먼저 정리를 해 주곤 한다. 예전부터 동안이라는 소리가 익숙했고 요즘도 심심찮게 “얼굴이 세월을 따라가는 것 같지 않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운동과 함께 사는 스포츠맨은 아니지만 재미 삼아하고 있는 테니스가 벌써 오래됐다. 권장하는 정도의 충분한 양은 아니어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어서 인대는 한번 끊어졌을지언정 몸이 뻣뻣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아버님’이라고? 


그러고 보니 준비가 안된 주관이 남들이 판단하는 객관을 만나 당황한 사례를 친구들로부터 종종 들었다. 

주로 지하철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요즘은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가 흔하지 않고 지하철에는 노약자 전용석까지 따로 있어서 그럴 일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행색을 한 주관적 젊은이가 아무 생각 없이 일반 자리 앞에 섰을 때 종종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한다. 머리가 하얗게 센 친구들이 심심찮게 그런 일을 겪는다. 양보를 받은 ‘젊은이’는 당황하며 한사코 사양을 한다. 그 난감한 상황은, 거절에 성공해도 계속 서 있기가 어색하고 실패해서 앉아도 면구스러워 애초에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몇 차례 당한 어떤 친구는 난감한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전철에 타면 처음부터 노약자 보호석 앞에 가서 선다고 한다. 거기에는 고참들이 많아서 누가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일어서지는 않을 테니까. 


처음 ‘아버님’의 생경함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그 후 간헐적으로 맞닥뜨린 ‘아버님’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아버님’에 익숙해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아버님’과 현재의 나는 아직 한참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남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받아들이거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목격하는, 그냥 또 하나의 ‘아버님’으로 나는 나를 이해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아버님’이고 나에게는 아직 아닌 것이다. 객관적 ‘아버님’과 주관적 ‘아버님’이 언제 만날지, 만날 수나 있을지 알 수 없다. 


객관적 ‘아버님’에 대해 화들짝 놀라며 거부하던 데서 일단 그 말의 자리를 만든 것 자체가 변화라면 변화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주관적 ‘아버님’의 자리를 따로 만드는 정도의 저항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비중은 아직도 오락가락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저 멀리 있는 객관적 ‘아버님’에게 내가 조금씩 다가갈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삶에서 노년이, 그어 놓은 선을 넘고 계단을 오르듯 선명하게 구분될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지금 생각에 그것은 아마 인정보다는 익숙해지는 과정일 것 같다. 

구불구불, 오름내림을 겪으며 가다 보면 어느새 경치가 달라져 있는 것, 나는 늘 하던 대로 해 왔을 뿐인데 제법 다른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노년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모른다. 요즘 많이 쓰는 말마따나 변화가 있는 듯 없는 듯, 이른바 인생의 그라디에이션인지도 모른다. 색감의 변화가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노년에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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