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재활용 삶과 한 줄기 햇살
3명의 여자들이 만나다.
윈디와 나는 술주정뱅이 폭력적인 아빠에게서 인간 취급조차 못 받는 엄마를 보며 자랐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가족 안의 위계서열이었다. 우리 가족은 하나뿐인 아들인 오빠가 아빠와 같은 상위 포식자였다. 반대로 윈디는 무능력한 아빠를 대신한 남동생을 둔 가장 이었다. 윈디를 맨 처음 만난 건 28살 어느 여름 3번의 임용고시 낙방 끝에 내 삶을 재활용하고자 찾은 어학원 에서였다. 인정만 받는다면 제법 큰 수익을 보장받는다는 어학원에서 나는 윈디의 수업을 처음으로 observation 하였다.
윈디는 나무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청설모처럼 온 교실을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초등학생 13명의 주의력을 단 1초도 흩트리지 않고 100분가량의 수업을 진행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짧은 경력에도 이 학원에서 제일 높은 수익을 보장받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주변 동료들의 시기 질투를 받고 있었다. 윈디는 푹 삭아서 쉰내까지 나는 재활용 쓰레기 같은 내 처지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활력과 생기가 넘쳐 보였다. 강사 한 명 한 명이 원장 격인 이 어학원에서 그녀는 가장 크고 넓은 교실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모티브로 삼아 다시 한번 살아나고자 온 힘을 다해 수업에 매진했다. 교포들과 원어민 사이에서 그들만큼의 능력을 인정받으러 성대가 나갈 정도로 24시간 수업 준비를 했다. 문제는 그런 내 노력을 보잘것없이 치부하는 아빠였다. 캐나다 어학연수라는 지원에도 영어 교사가 되지 못한 나에게 실망한 아빠는 학원 회식 날 술에 취해서 전화를 해댔다. 입사 후 첫 회식이었고 크리스마스 마니또를 발표하는 건전한 회식이었다. 나는 "아빠! 대체 왜 이러세요? 금방 들어갈 테니 걱정 말고 먼저 주무세요..."라고 아빠를 말렸다. 하지만 아빠는 내 말을 무시하고 "회식 장소가 어디야!"라고 윽박을 지르면서 당장 쫓아올 기세로 집요하게 물으셨다." 뭐 같지도 않은 학원 나부랭이가 회식은 뭔 놈의 회식! 너 미쳤어? 지금 당장 집에 들어와!"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내 자존심은 변기통에 처박힌 기분이 들었다. 사범대 나와 임용시험 떨어졌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모 있는 인간이라고 애쓰며 그간 잘 견디어 왔다고 생각했다. 3주간의 교육이 끝난 후 치러지는 학원 최종 영어 인터뷰를 앞두고 긴장한 내 모습을 보며 아빠는 버럭 짜증을 냈다. "넌 뭐 그까지 것 가지고 긴장을 하냐"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파이팅" 이란 격려가 아닌 비아냥 섞인 조롱을 들어가며 꾸역꾸역 인터뷰를 마쳤다.
이런 나에게 그날의 사건은 커다란 모욕이었다. 다음날 나는 술이 덜 깬 아빠에게 출근 전 목멘 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임용시험에 떨어져서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분수를 알고 제가 서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니 제발 제 노력을 모욕하지만 말아주세요."라고 애원했다.
딸의 합격을 포기한 엄마는 30살 넘기 전 나를 취집이라도 시키려 했고 아빠는 하자 있는 사람 대하듯 내 삶을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부모와 크게는 세상과 싸우며 내 자존감 높이기 훈련에 돌입했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학원에서도 내 노력은 계속되었다. 반복되는 임원진들의 수업평가에 분기마다 열리는 학부모 참관 수업에 스스로를 채찍질하였고 평가에 익숙해지려고 애를 썼다. 누구 하나 나를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버티고 버티는 시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 시기적절한 그날 꽃향기를 뿜으며 재스민이 내 교실로 찾아왔다. 뜻밖의 손님에 급히 우울한 표정을 감추는 나에게 재스민은 끼니 대용 건강 음료를 건네주며 동갑이니 친하게 지내자고 하였다. 그녀는 세련된 갈색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윤이나는 얼굴로 칙칙한 내 머리 위 먹구름을 걷어내 버리고 내 교실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곤 했다. 재스민의 날씬한 몸매는 감싸는 기품 있는 옷들은 그녀를 더욱 고급져 보이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그녀와 같은 위치에서 같은 학원강사로서 일을 하는 나에게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재스민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나를 발견했다. 재스민과 내가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다른 원어민 교사들도 재치 있는 그녀의 유머에 빵 터졌으며 윈디 또한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같은 나이였던 우리는 어느새 거의 매일을 윈디 교실에서 정모를 가졌으며 퇴근 후 여러 번의 야식 끝에 우리는 둘도 없는 직장 내 절친들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