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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즈 Aug 10. 2023

시어머니와의 공존

노인성 치매, 파킨슨성 치매

#엄마의 투병이야기 그 세 번째


나의 할머니는 1923년생 올해로 100세가 되셨다.

몇 년 전(엄마의 건강이 나빠지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사시다가 아빠 혼자서 두 분을 케어하기가 어려워 예산에 사시는 삼촌이 할머니를 모셔가셨다.

엄마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부터 할머니와 자주 다툼이 있으셨다. 할머니도 90이 넘으시면서 점점 아이가 되어가셨고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다툼의 원인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사탕이라도 한 봉지 사다 드리는 날엔 '어머님이 더 많이 가져가셨네, 네가 더 많이 가져갔다.' 이러시면서 끝이 없는 밀당 게임을 하고 계신 듯했다.

어찌 보면 그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런 일이 자주 있은 후부터 꼭 똑같이 사다 드렸다.

사탕도 같은 맛으로 두 봉지, 과자도 두 봉지 뭐든 전부 두 개씩. 그러면 혹시라도 한쪽으로 더 많이 갔을까 봐 계속 살피시다가 같다고 생각되면 각자의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셨다.

뭐 쌍둥이 자식들도 아니고 노인성 치매 초기의 시어머니와 파킨슨성 치매 초기의 며느리의 모습니다. 

아빠는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런 아빠의 힘듦이 보여서 그랬는지 삼촌들과의 회의 끝에 할머니를 모셔가신 것이다.


엄마의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옅어져 갔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어있는 것처럼 처음에는 교인들을, 다음은 친척들을, 그리고 손주들을 자식들을, 마지막엔 남편마저도 하나씩 하나씩 지워지는 듯했다.


엄마가 환갑이 지났을 무렵 우리 가족은 모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여행을 며칠 앞두고 집안에 큰 사고가 있어 기약 없이 미뤄지고 말았다.  엄마가 기억을 더 잃기 전에 그토록 타고 싶어 했던 비행기라도 태워드리자는 의견이 모아져 오빠 내외가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TV에서 요양원에서 학대한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평소에 '나는 절대로 요양원에 가지 않는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었다.

기억이 왔다 갔다 한 순간에도 그 생각이 났었는지 아들이 제주도에 나 버리고 오면 어떻게 하냐고 나 절대 비행기 안 타겠다고 고집을 피우셔서 애를 먹었다. 막상 여행지에 가서는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볼 수 있어 모시고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고 그 여행이 엄마의 마지막 여행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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