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다른 모습
할머니는 전형적인 충청도분이시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걸 극도로 싫어하신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기억으로 아빠는 단 한 번도 설거지를 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할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 때까지는 그랬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간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았다. 살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아빠가 아픈 엄마와 함께 살아가실 수 있을까가 모두의 걱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가 내려가시고 나니까 청소며 부엌일이며 우렁이각시라도 집에 있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즐겁게 하고 계셨다.
40년 넘게 보지 못했던 아빠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동안은 할머니 눈치 보시느라 하지 않았던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가 아프시고 나서 가장 큰 걱정은 역시 밥이다.
부모님께 밑반찬이라도 매번 해드리고 싶지만 워킹맘을 핑계로 우리 아이들 끼니 챙기는 것도 벅차다.
어쩌다 한 번씩 반찬을 사서 냉장고를 채워드리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생각과 걱정과는 다르게 아빠는 무척이나 엄마를 살뜰히 챙기신다.
과일도 매일 갈아서 챙겨주시고 욕창이 생길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자세를 바꿔주신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꼭 산책도 시켜주신다.
젊을 때 두 분이 이렇게 다정했었나 싶다.
두 분을 보면서 역시 나이 들어 병들면 남편밖에 없구나를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자식인 우리가 엄마걱정을 한다고 한들 저렇게 까지 할 수 있을까?
긴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는데 벌써 8년째 한결같이 병시중을 드시는 아빠가 존경스럽다.
이렇게라도 두 분이 오래오래 함께하셨으면 좋겠다.
지금 바라는 것은 아빠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시는 것, 엄마가 더 나빠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