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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팬더 Sep 29. 2021

메타버스가 줄여줄 시행착오들

- 메타버스? 애들 게임 아니야? 네 아닙니다.

벌써 디플레이션에 대한 3번째 chapter까지 적게 되었네요. 이번 글의 메인 테마는 바로 '메타버스'입니다. 2021년 들어서 갑자기 여기저기서 쓰고 있는 용어지요? 용어 자체는 꽤나 익숙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위해서나 주식 투자를 위해서 관련된 용어를 찾아보면서 잘 이해를 하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메타버스를 알더라도 이것이 <유동성을 풀어도 답이 없는 디플레이션>과 연결이 된다고 한다면 고개를 갸웃거리실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이번 글은 메타버스 그 자체에 집중하는 글이라기보다는, 이것이 줄여줄 시행착오들과 그 결과로 가져올 <디플레이션>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적어 보고자 합니다. 아직 개념 자체가 낯선 분들도 계실 것이니 처음에는 메타버스의 기본적인 개념을 간략하게 다루는 것으로 시작을 해 볼까 합니다.



1. 메타버스의 개념과 유형

-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


인간은 항상 현실의 자신에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자신을 꿈꾸어 왔습니다. 인간은 소처럼 강력한 힘도, 늑대처럼 민첩한 움직임도, 말과 같은 빠른 다리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한계를 넘어선 모습을 꿈꾸어 왔습니다. 그것이 투영된 것이 모든 문명에 존재하는 신화와 영웅 설화입니다.


신을 동경하는 마음은 문명이 발달하고 신화의 시대가 지나간 지금도 계속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가 게임이나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사용하는 용어인  ‘아바타’입니다. 이 용어는 인도에서 신의 분신을 의미하는 아바타라 (Avatara, 화신化身)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과거부터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고 꿈꾸어 왔다는 것입니다.


‘메타버스’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Meta’와 세상을 뜻하는 ‘Universe’가 합쳐진 용어입니다. 즉 현실을 초월한 다른 세상이라는 의미지요. 2021년부터 갑작스럽게 회자되고 있지만 과거부터 있었던 표현입니다. 넓게 보면 인류가 고대부터 만들었던 수많은 신화, 영웅담 등에 등장하는 세계들 또한 가상의 세계에 속할 것입니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원형이 존재하였다고 하여 과거의 그것과 지금의 그것을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단지 이야기와 그림, 사람들의 상상으로만 그쳤지 그 세상을 눈으로 보고 발로서 걸어 보는 등 인간의 감각 기관을 통해 접근할 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각종 기술의 발달로 불완전하게나마 인간의 감각 기관으로 가상의 세상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직접 접촉하여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메타버스는 실체는 없지만 버젓하게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1) 메타버스의 몇 가지 유형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 일단 메타버스의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증강 현실’입니다. 증강현실은 각종 도구를 이용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정보를 실존하는 현실에 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몇 년 전 유행했던 포켓몬 고라는 게임을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우리가 핸드폰으로 꽃을 비추었을 때 그 꽃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가 나타나거나 건물을 비추었을 때 그 건물의 설립연도 등이 나타나는 APP도 증강현실의 일종입니다. 아직은 미래의 이야기 같지만 식당을 보고 프로그램을 돌리면 안경이 '이 식당은 서울시가 선정한 성북구 10대 맛집입니다!'라고 메시지를 주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겠지요.


(증강현실의 예시인 포켓몬 고 / 출처 : PIXABAY)


두 번째는 ‘라이프로깅’입니다. 삶(Life)을 기록(Logging)한다는 의미인데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가 대표적입니다. 라이프로깅은 현실의 내가 아닌 가상의 자아가 가장 적나라하게 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사진이 포함된 SNS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상적인 나를 연기하고 그러한 면을 드러낼 수 있는 게시물만 올리는 경향이 있지요.


삶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통화기록, 신용카드 사용 기록, 인터넷 검색기록 등 각종 기록들 또한 이쪽 범주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 데이터가 축적되고 기술이 발전한다면 우리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우리의 선호에 맞춰진 세상에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술이 알아서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소개해주고, 입맛에 맞는 맛집을 알려 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쓴 글과 취향을 보고 성향이 맞는 다른 사람을 연결시켜 줄 수도 있겠지요. 역시 이쪽도 메타버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거울 세계’입니다. 거울과 같이 현실의 세계를 가상 세계에 정확하게 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내비게이션 이겠지요. 각종 식당이나 관광지, 숙박 업소 등을 소개하는 APP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울 세계는 기존에 존재하는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메타버스와는 조금 동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존에는 이러한 정보들이 ①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었으며, ② 현실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③ 따라서 그것이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파편화된 데이터들이 하나로 모이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되며 그것이 하나의 산업 유형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배달의 민족으로 대표되는 배달 APP의 등장 이전과 이후는 배달 음식 시장이라는 범주에서는 같은 현실이지만, 각종 정보를 가공하고 모아서 배달 음식 시장을 진일보시켰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세계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상 세계’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 가상 세계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대부분의 가상 세계는 완벽하게 현실과 구분되는 세계입니다. 대규모의 온라인 게임에서 우리는 우리와 전혀 닮지 않은 캐릭터를 사용하고, 컴퓨터나 핸드폰의 화면에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위주로 가상 세계를 접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게임인 Roblox 또한 레고 블록과 비슷한 이미지로 구성된 세상입니다.


그래도 어쩌면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현실과 똑같이 닮았지만 그래픽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요.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의 세상에서 일반인들은 모두 컴퓨터가 만들어 낸 정교한 가상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시각 만이 아니라 미각, 촉각, 후각, 통각 등 모든 인간의 감각이 현실과 같이 작동하지요. 하지만 이 세계는 또한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를 제외한) 물리 법칙이 무시되는 가상의 그래픽 세상입니다.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한 모습이지만 메타버스가 등장한 이유를 인류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이루고자 하는 꿈과 욕망에서 찾는다면 점점 현실을 닮은 가상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 봅니다.


(2) 싸이월드, 온라인 게임에서 더 나아간 것인가?


이 정도만 봐도 메타버스가 2021년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를 풍미했던 싸이월드, 우리가 즐기는 온라인 게임, 각종 SNS 플랫폼 등은 넓게 보면 메타버스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은 그동안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나 소셜 네트워크 측면 산업에서만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원인은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우선 현실이라고 느끼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이었습니다. 현실과 유사한 세계를 만들려면 현실이 시각, 청각, 촉각 등 인간의 다양한 감각에 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줘야 하는데 기술은 이것을 구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개인이나 몇 명의 소수 유저가 제작사가 만든 시스템 범위 내에서 즐기는 것 정도로는 새로운 세계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대규모의 온라인 게임 세상은 게임 제작사가 미리 만들어 놓은 틀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수 차례 업데이트를 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추가시켰지만 일방적 통행이라는 틀 자체를 깰 수는 없었지요. 세상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구성원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나가는 측면이 있어야 할 것인데, 지금까지의 온라인 게임이나 소셜 네트워크는 그런 점에서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또한 다른 이유로는 굳이 엔터테인먼트나 소셜 네트워크 이외의 영역에서 가상의 세계를 끌어 쓸 필요가 크게 없었던 것도 있습니다. 메타버스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만들어져도 사람들의 주된 활동의 무대는 현실입니다. 최소한 현실에서 밥은 먹고 잠은 자야 하는 것이죠. 가상의 세계가 현실과 완전히 동일한 만족을 줄 수 없다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외에는 가상 세계를 구태여 만들어서 돈과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었지요.


☞ 하지만 지금은?


하지만 각종 그래픽 기술과 통신 기술의 발달로 가상현실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실을 꽤나 정확하게 투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임을 즐겼던 30~40대 분들에게 언리얼 엔진은 꽤나 익숙한 용어일 것입니다. 1990년대 후반 미국의 에픽게임즈에서 처음 공개한 언리얼 엔진은 처음에는 게임 제작에서만 사용되었으나 점점 각종 영화의 CG, 시각효과, 산업 디자인 등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고품질 그래픽 tool 로서 발전하였습니다.


또한 데이터의 처리 속도와 처리량, 그리고 데이터의 보관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다수의 사용자가 동시에 데이터를 누적시켜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작사가 제작한 콘텐츠를 즐기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유명 게임인 Roblox는 제작사가 기본 틀을 만들어 주고 그 틀을 통해 사용자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 구성원들이 각자 창의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현실 세상과 닮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오프라인에서의 활동 자체가 잠시 멈춰 버린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고, 가상의 현실에서 각종 필수적인 활동을 이어가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가상의 공간에서 업무 회의를 해야 했으며, 각종 콘서트나 팬 사인회는 온라인 공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오프라인이 완전히 온라인으로 대체된 것은 아니지만 전환 속도는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빨라지게 된 것이지요.


아래 사진은 우리나라의 국가 부서에서 높으신 분들이 메타버스를 이용하여 회의를 하는 것을 보도한 사진입니다. 정부 부처 외에도 기업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진행하거나, 대학들이 신입생 환영회를 하는 등 메타버스 공간에서의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를 이용한 온라인 회의 / 출처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페이지)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는 위의 내용으로 대충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메타버스의 구체적인 모습을 자세히 적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서론은 이 정도로 접도록 하겠습니다. 시중에 좋은 도서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조금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하여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러한 메타버스가 어떻게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져오는 요소로 적용하는지에 대하여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산업 현장에 적용되는 메타버스

- 인생에도 세이브, 로드가 있었다면?


아직 많은 이들이 게임과의 차이점을 모르겠다고 하실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어느덧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 산업의 영역에도 착실하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산업 현장에서 진지하게 사용되는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규모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서는 하루에도 다양한 모델로 수천 대의 자동차가 생산됩니다. 그런데 내연 기관차에 이어 코로나 사태로 폭증하고 있는 전기차 수요와 관련하여 새로운 모델 출시 압박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다르게 자동차에는 각종 다양한 옵션들이 붙게 됩니다. 운전을 보조해 주는 옵션,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내부에서 지루한 시간을 달래줄 옵션, 오너의 미적 감각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각종 옵션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상 자동차가 차근차근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옵션에 대한 오더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면? 그럼 시스템상 전 단계로 돌아가기 위해 엄청난 과정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생산의 전 공정을 하나의 가상 세계에 온전히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즉 공장을 구현한 메타버스를 만들고 그 단계에서 온전히 완성품을 만들어 보고 그것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과적으로 많은 시행착오와 인간이 할 수 있는 실수들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곧 기업의 효율과 이익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미국 기업인 NVIDIA는 원래 컴퓨터 그래픽을 처리하는 그래픽 카드에 들어가는 GPU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점점 이쪽 분야에서 선구적인 기술을 많이 선보이고 있는데, 이런 NVIDIA가 야심 차게 공개한 시스템이 바로 Omniverse 플랫폼입니다. 이 플랫폼은 실제 공장을 최대한 동일하게 구현한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이것을 digital-twin이라고 부릅니다) 전 공정을 가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산업 현장의 각종 개별 프로그램들과 호환이 가능하도록 하여 범용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이 가상공간에서 확정된 설계를 만들어 내면 그것이 실제의 공장에서 그대로 제작이 되는 식으로 현실과 가상이 서로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배, 항공기, 우주선, 건축물 같은 다양하고 많은 부품이 들어가면서도 안전성이 매우 중요한 각종 기계와 구조물에도 위와 같은 기술은 적용될 것입니다. 또한 중후 장대 한 산업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옷을 직접 입어보지 않더라도 우리 스타일에 맞는지를 코디해볼 수 있는 가상 드레스룸, 가전이나 가구를 사기 전에 그것이 우리 집에 잘 어울릴지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가상 인테리어실 등은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가상공간들은 각 업무의 효율성을 매우 높여 줄 것입니다.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사 왔는데 막상 제대로 입어보니 영 어울리지 않아서 옷장에 처박혀 있는 옷들이나 비싼 돈을 주고 사 왔더니 세탁실에 들어가지도 않는 세탁기 등과 같은 문제들은 크게 사라지겠지요.


또한 가상공간에서 사전 준비를 하게 되면 각 영역 간의 협업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현장이 shut-down 되면서 업무 진행이 지연되는 경험을 하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충실하게 반영한 가상공간이 갖추어진다면 업무의 지연이 많이 줄어들고 효율성도 향상될 것입니다. 공통의 가상공간에 필요한 업무 자료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협업을 위해 일일이 자료를 보여주고 설명하던 수고로움을 상당히 줄일 수 있게 되겠지요.


PC 게임을 즐겨하셨던 분들 중에는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해 세이브와 로드를 애용하셨던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시행착오라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깊이 박혀 있는 가시와 같은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겠지요. 인간이 시간을 뛰어넘어 세이브, 로드를 할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상당히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고 있습니다. 게이머가 최적화된 결과를 얻기 위해 세이브와 로드를 수회 하듯, 각 기업들도 가상의 공간에서 최적의 효율성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3. 사회적 실험의 장

- 전염병을 현실에서 퍼뜨릴 수는 없지만, 만약 게임이라면?


위의 내용이 전문적이고 특정한 산업 분야에 적용되는 것이며, 수천억 원 ~ 조원 단위의 돈을 투자할 수 있는 대기업에게만 적용되는 경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메타버스에서도 위와 같은 가상 test가 충분히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습니다. 세계적인 MMORPG (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인 블리자드社의 World of Warcraft에서 2005년 발생한 예시를 통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게임에 새로 등장한 월드 보스 학카르는 하나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오염된 피라는 기술인데, 플레이어들이 기술을 맞게 되면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잃게 하는 디버프 (쉽게 말하면 몬스터가 캐릭터에게 질병을 건다고 보면 됩니다) 스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스킬은 현실의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치유되기 전까지는 주변의 캐릭터에게 지속적으로 퍼지게 됩니다. 그런데 게임상의 버그로 학카르를 잡은 뒤에도 일부 캐릭터에게 위 디버프가 남게 됩니다. 즉 일부 캐릭터가 게임 내에서 바이러스의 보균자가 된 셈이지요. (이하에서는 이해가 쉽도록 게임상에서 구현된 위 디버프를 통칭 ‘바이러스’라고 하겠습니다)


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플레이어들이 많이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오게 되면서 사건이 커지게 됩니다. 당연히 바이러스를 가진 플레이어가 주변의 다른 플레이어 및 NPC에게 위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게 되었고, 플레이어 들은 영문을 모른 채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잃으면서 캐릭터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마을에 있는 NPC들은 시스템상 자동적으로 생명력이 회복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죽지 않은 상태로 계속 바이러스를 보유하게 된 슈퍼 보균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체력이 낮은 저 레벨 캐릭터들이 위 NPC에게 퀘스트를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방문하다 보니 계속 의문사를 당하거나 전염된 상태로 다른 마을로 이동하면서 다른 마을로도 바이러스를 퍼뜨리게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코로나 사태와도 유사한 경우 같네요)


(바이러스로 지옥이 열린 게임 속 세상 / 출처 : 나무위키)


흥미로운 것은 유저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치유 스킬을 가진 일부 플레이어들은 감염된 다른 유저들의 생명력을 회복시켰습니다. 버그란 것을 알면서 시간을 끄는 경우도 있었고, 원인은 몰랐지만 다른 유저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경우도 있었지요. 체력이 높은 고레벨 유저들은 저 레벨 유저들이 보균자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게 경비를 서거나, 감염되지 않은 유저들을 마을 밖으로 유도하거나 하는 등 대규모 전염병 발생 시 국가가 격리 조치와 감염 통제를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였습니다.


또한 현실과 매우 유사하게도 일부 유저들은 고의적으로 위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다른 마을로 이동하여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혹은 초보 유저들에게 치료를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접근하여 게임 내 화폐를 뜯어내거나 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지요.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꽤나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뉴스에도 소개되었고, 인터넷에서도  ‘전염병이 발생했을 시 사람들의 행동과, 전염병 확산 형태'라는 주제로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전염병 연구에 참고하고자 블리자드社에 관련 서버 기록을 요청했다는 말도 있더군요.


당연히 현실 세계에서 전염병이 터졌을 경우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까요?라는 실험의 데이터를 얻기 위해 전염병을 퍼뜨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상공간에서는 위와 같은 실험을 이벤트의 형식으로 얼마든지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비용이 들고 위험성이 높은 훈련이나 시스템 도입 시에도 게임 시스템을 활용한다면, 시행착오를 상당히 줄이고 현실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율주행 차량을 개발할 때도 충분히 시스템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차량이 실제 도로를 달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겠지요. 그렇다면 자율주행 차량을 개발하는 회사에서는 충분한 데이터가 쌓일 때까지 자신들의 차량을 복사한 프로그램이 가상공간에서 주행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가상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 비용이 많이 드는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면


앞에서 적은 것과 같이 메타버스는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시행착오를 줄여주면서 효율을 향상하거나, 현실에서 쉽게 할 수 없었던 각종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효율성이 향상된다는 의미는 그만큼 기업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향상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업들은 어떤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좋아할지 알 수 없기에 일부 제품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과잉 생산을 하였고, 소비자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시간을 들여 백화점이나 마트를 다녀야 했습니다. 물론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가 이러한 미스매칭을 상당히 완화시켜 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 구매한 제품으로 발생하는 비효율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기업이 현실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되면 많은 자원이 낭비되게 됩니다. 자동차를 잘못 만들어 버렸으면, 실수로 끝이 아니라 그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각종 자원의 낭비가 발생하게 되지요. 자동차 정도면 다행인데 고층 건물 같은 것을 잘못 만들었다가 자칫 철거라도 하게 되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낭비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상공간에서 현실의 절차를 충실하게 준비하고 예행연습까지 할 수 있다면? 만약 시행착오를 하더라도 현실에서의 시행착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손실이 적을 것입니다.


기업의 효율성이 높아져 수익이 늘어난다면 그 기업은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물건과 서비스의 가격을 낮출 것입니다. 현실에서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들이 가상공간으로 옮겨 간다면 그만큼 현실의 자원은 덜 필요하게 되겠지요. 간접적인 비용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기업들은 그만큼 직원들이 출근했을 때 들어가는 비용들을 아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 전체적으로만 봐도 최소한 출근을 위해 대중교통이든 자가용이든 운영을 하는데 드는 각종 비용 등 (직접적인 연료비용 외 교통 혼잡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라거나 차량 운행에 따른 환경 비용이라거나)은 절약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오프라인의 업무 공간이 가상공간으로 옮겨가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이 분야에서의 비용 절감도 무시할 만한 수준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즉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메타버스'가 <유동성을 풀어도 답이 없는 디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얼핏 들으면 조금 엉뚱해 보이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이지요.


또한 메타버스는 수요 측면에서도 <디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소비의 효율성의 관점도 있지만, 가상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점점 늘어갈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이를 자세히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때는 서기 2138년, 스즈키 사토루 씨는 퇴근 후 피곤한 몸을 끌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 MMORPG 인 위그드라실의 접속 버튼을 누릅니다. 그에게 친근한 사람들은 게임 속의 길드원들 뿐입니다. 중소기업에서 힘들게 번 월급은 게임 아이템을 사는데 대부분 쏟아부었고, 현실의 집은 단지 잠시 잠을 자기 위해서만 존재할 뿐,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 속 세상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일본의 라이트 노벨인 오버로드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현실에서의 모습입니다. 이후 전개는 모종의 사태로 주인공이 게임 속 자신의 캐릭터와 합쳐 저 버리고 어쩌고 하는 내용인데 그런 내용까지 구구절절 적을 것은 아니겠고 (물론 소설 자체는 매우 재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위와 같은 주인공이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게임이 너무 재미가 있다 보니 침식을 잊어 가면서 게임을 하고 식사도 컵라면이나 과자로 간단하게 때우는 경우가 많지요.


게임이나 소셜 네트워크의 속성은 몰입입니다.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 게임에서 쉽게 나오지 못하게 하거나, 가상공간에서 맺은 인간관계 때문에 계속 그 가상공간에 머물러 있게 하는 요소를 다양하게 가지고 있고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즉 가상공간은 단순하게 유흥을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외부와 소통하는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의 10대들이 학교와 학원 외 어떤 공간에서 외부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지를 본다면 이것이 위 소설처럼 2100년대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당장의 이야기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상공간 또한 관계이다 / 출처 : PIXABAY)


사람의 시간은 24시간으로 한정적입니다. 즉 가상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그만큼 현실의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게임을 즐겨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게임을 하는 것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많은 돈이 들지가 않습니다. (물론 NC에서 만든 집판검 같이 현실에서 몇억 원 단위로 거래되는 아이템 등은 예외로 합시다.) 요즘 핸드폰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은 과금을 유도하는 유형이 많지만 그래도 무과금으로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PC 게임 같은 경우 인터넷이 되는 PC만 있으면 게임을 즐기는 데는 큰돈이 들지 않았지요. 즉 먹고 - 게임하고 - 먹고 - 게임하고 - 자고 - 게임하고 - 먹고 생활을 만약 반복한다고 한다면 의외로 저렴한 비용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커플이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면 여자 친구가 명품백 사줘 대신 게임 아이템 사줘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상 세상이 발전하고 그것에 사람들이 더 끌릴수록 현실에서 사람들은 돈을 적게 쓸 것입니다. 가상 세상에서 즐길 거리가 많은데 오프라인으로 굳이 귀찮게 나갈 필요도 없고, 거기서 돈을 쓸 여유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유동성을 공급해도 그 유동성을 활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돈을 쓰지 않는 수준이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현실에서 돈을 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적은 돈으로 유흥을 즐기고 대리 만족을 얻는 단계가 올 수도 있습니다.


돈을 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가상공간이 있으니 돈을 쓸 필요가 없고, 돈을 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돈을 크게 쓰지 않아도 되는 가상공간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가상공간에서 생활하는 비중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실제 현실에서 쓰는 돈은 가상공간이 해결해줄 수 없는 식비와 주거비, 그리고 인터넷과 휴대전화 요금 정도가 되겠지요. 이것이 메타버스가 수요 측면에서 가져오는 <디플레이션> 요소입니다.



5. 너무나도 진부한 말이지만 위기는 곧 기회.

- 우리는 '메타버스'의 민족이다.


이번 chapter를 끝으로 <유동성을 풀어도 답이 없는 디플레이션>을 불러올 수 있는 3가지 요소를 살펴보았습니다. 인플레이션 쪽에서 다룬 기후위기, 패권전쟁, 정치의 영향력 확대 등과 마찬가지로, 디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는 자동화, 빅데이터로 무장한 글로벌 독점 기업, 메타버스의 확대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변화일 것입니다. 어쩌면 꽤나 우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변화에 준비할 시간이 있고 역량이 있는 국가라는 것에 희망을 찾아볼까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자동화 수준은 전 세계에서도 굉장히 높은 수준입니다. 국토가 좁고 소수의 대도시에 대부분의 국민이 생활하는 구조다 보니 각종 시스템이나 새로운 산업 유행이 퍼지는 속도도 다른 나라 대비 매우 빠른 편입니다. 흥미로운 새로운 것이 생기면 금방 확산이 되지요. 이런 점은 우리보다 큰 경제 대국이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조심스러운 일본과 비교하면 큰 비교우위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온라인 유통 시장 규모가 경제 규모 대비해서도 꽤 높은 수준이면서도, 미국 기업들로 대표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덜한 국가입니다. 세계의 검색 포털 시장은 Google이 꽉 잡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NAVER와 카카오의 비중이 높고, 이들 기업은 우리나라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차차 실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NAVER의 LINE은 일본과 동남아시아 시장의 대표 메신저이고, 웹툰이나 소설, 엔터테인먼트 등의 soft-power 영역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출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메타버스'의 민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통신 시설과 네트워크 시설기반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는 다양한 플랫폼도 갖춰져 있습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명작 싸이월드가 그립습니다.) 또한 K-POP에 이어 영화나 웹툰, 드라마 등으로 대표되는 K-Culture라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충분한 힘도 있습니다. 마침 이 글을 쓸 때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합니다. 시대의 변화를 피할 수 없다면 변화에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타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우울한 기분은 이 정도로 떨쳐 버리고 다음 chapter부터는 우리가 <유동성을 줄일 수 없는 인플레이션>과 <유동성을 풀어도 답이 없는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서 찾아야 하는 <성장>을 찾아보는 글을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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