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고 싶어서
개교기념일이다. 그간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다. 4월에 있었던 학부모 상담이 그저 형식적인 학교 행사에 그치지 않고 일 년 중 가장 지칠 시기에 아이를 향한 사랑을 보호자의 입을 통해 수혈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이를 좀 더 자세히 보고 사랑하려는 마음을 다잡는 시기.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우리 반 다문화 학생의 아버님이 연락이 오셨다. 아이가 위탁가정 학생의 과격함과 거친 행동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아버님은 에콰도르에서 선교사님으로 계시는데 아이의 말에 걱정돼서 타지에서 연락이 오신 거였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위탁가정 아이가 가야 할 길은 멀고도 느린데 그 사이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다른 아이들이 있으니 가운데에서 잘 지도를 해야 한다. 아버님께 전후 사정을 말씀드리고 아이에 대해서도 나누었다. 다문화 아이의 어머님은 에콰도르 분이신데 다음 주 화요일에 에콰도르로 출국하셔서 다문화 아이는 형과 함께 한국에 남아있게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 돼서 연락이 오셨구나 싶었다. 부모의 빈자리를 조부모님이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지만 한국으로 유학 온 이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마냥 힘들지만은 않고 성장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교사로서 지내다가 문득 나도 학부모이지 느낄 때가 있다. 어제가 그랬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현장체험학습을 멀리 다녀왔다. 동복을 입혀서 보내달라고 안내를 받았는데 27도라고 해서 아이가 땀이 많아 더울 것 같아 상의는 반팔티에 가벼운 점퍼를 입혀서 보냈다. 잠시 뒤에 담임 선생님께서 연락이 오셨는데 안내를 했는데 상의를 왜 동복으로 입혀서 보내주시지 않았냐고.. 해서 나도 내 상황을 설명하게 되었다. 상의정도는(?) 자율적으로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무리 교사라도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는 또 다른가보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빠르게 식별하기 위해서는 상하의 다 동복으로 입혀야 했던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남는 동복으로 갈아입혀 가겠다고 하셨는데 퇴근 후 아이의 하원을 기다리며 '선생님이 출발 전에 아이의 원래옷을 갈아입혀서 보내주시려나? 혹시라도 아이들 앞에서나 버스에서 갈아입는 상황은 없었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를 봤는데 원래 입던 옷을 입고 있었고 언제 옷을 갈아입었냐고 물으니 버스에서 갈아입었다고 했다. 그럼 버스에서 발가벗었어? 물어보니 그랬다고 말하면서 친구가 웃었어~라고 했다. 마음이 안 좋았다.. 아이들이 많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잠시 동안이었지만 내 아이가 발가벗겨졌다는 생각이 드니 선생님께 주의해 달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내 아이의 마음을 지키고 싶은 학부모로서의 마음과 바쁜 시간들을 이해하고 싶은 교사의 마음이 충돌했다. 감정을 빼고 팩트 위주로 최대한 말실수 없이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챗gpt에게 물어가며 카톡으로 보낼 글을 다듬었다. 그리고 선생님께 보냈다. 선생님의 잘못으로 느껴지지 않고, 아이의 부끄러움이 걱정되니 다음에는 좀 더 신경 써주실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연락드렸다. 휴,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나로서 큰 용기를 냈다. 잘했다. 나야.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엄마로서의 마음을 우선한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학부모와 교사. 어느 것도 쉽지 않은 하루였다.
1교시에 동료장학을 했다. 통합 교과로 수업을 했는데 아이들과 소통이 잘 이루어졌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재미를 느끼며 배움이 일어난 것 같아 수업하는 내내 마음이 편했던 시간이었다. 참관 오신 선생님은 두 분. 학년군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셨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수업으로 수업을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했던 교대 시절과 초임 시간들이 있었다. 이제는 뭔가를 보여주려고 애쓰는 수업이나 통제된 수업보다 주사위를 굴리듯이 흘러가는 수업의 방향 속에 아이들과 발맞춰 이루어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도체가 잔뜩 활성화된 채로 수업을 하면 나 자신이 더 힘들 것 같아 이 시간을 즐기는 마음을 최대한 가지려고 준비도 많이 안 했다(?)
점심시간에 사후 협의회를 했는데 뜻밖의 나의 강점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았다. 스스로 평소에 어떤 말투를 쓰고 수업 중 어떤 행동을 주로 하는지 매번 인식하기가 힘든데 참관 오신 선생님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반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있다고 하셨다. 동시다발적으로 선생님을 찾는 1학년 아이들의 요청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여유 있게 다 반응해 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한 아이를 보고 있어도 귀를 열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아 내가 그런 면이 있구나. 이건 내 강점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작은 목소리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교사. 이 부분이 어떤 면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 싶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실수가 부족한 모습을 지적하기보다 잘한 것을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강화하는 나의 언어가 있었다고 한다. 나의 관점이 곧 나의 시선이 되고 아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이 될 수 있음을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수월하게 수업을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엄청나게 피곤하다. 긴장을 안 하려고 했어도 어쩔 수 없이 많이 했나 보다. 오늘은 퇴근 후에 외식을 하며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주고 싶다. 힘내서 5월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