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고 싶어서
입학식날 사진 찍는데 화분 뒤에 가려서 얼굴을 보이기 싫어했던 아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아이. 약간의 경계를 가지면서도 옆에 앉은 나에게 쉼 없이 질문하던 아이. 우리 반 수현이(가명)의 첫 모습이다. 아직은 서로가 어색하고 그래서 조심하게 되는 3월 첫 주, 아이들 하교지도 후 돌봄 선생님이 반에 찾아왔다. "선생님. 수현이 반에서 어때요? 보통 아니라고 하던데." 어떤 류의 특별함일까? 돌봄 선생님을 보니 표정이 좋지 않다.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돼서 경험한 수현이의 진면목은.... 뭐라고 해야 할까. 한 마리의 맹수와도 같았다. 친구가 보는 앞에서 친구 물건을 말없이 가져가고 (당당하게!), 수학 문제를 1등으로 풀어서 내지 않으면 짜증을 내며 수업 안 들을 거라고 문 밖으로 나가버리고, 자신을 화나게 하는 친구가 있으면 가차 없이 주먹과 발길질을 하는 수현이. 수업 시간 내내 '싫은데요?', '아, 하기 싫어.' 등의 추임새를 하고 문제행동을 지적할 때면 말대꾸를 하는 등 학급의 분위기를 흐린다는 것이 이런 경우구나 싶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급식 지도를 할 때 모든 음식을 한번씩은 다 먹어야 갈 수 있다고 하니 바닥에 몰래 음식을 버려서 다 먹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현이의 문제 행동으로 인해 보상 점수를 내리려고 할 때는 나를 밀고 때리기도 했다. 제일 많이, 제일 먼저, 모든 것을 움켜쥐듯 악착같이 행동하고 내 뜻대로 안 되면 소리 지르고 화내는 수현이를 보며 수현이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 무엇이 이 아이를 이런 방식으로 생존하게 만들었을까. 앞날이 깜깜했다.
곧바로 수현이의 가정 배경에 대해 알아봤다. 수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올해 1월까지 영아원에서 살았다. 그리고 1월에 위탁가정으로 가게 되어 60대 엄마 아빠를 만났다. 교육과정 설명회 때 만난 수현이 위탁모는 수현이에 대한 애정과 고충을 동시에 표현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아이를 책임질 것이라는 말. 처음 집에 왔을 때 수현이의 말과 행동이 온 가족에 분란을 일으킬 정도로 심했는데 몇 개월이 지난 후 아주 조금은 나아진 거라고 하셨다. 갈 길이 멀구나. 천천히 쉬엄쉬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매주 우리 학교로 오시는 순회 상담 선생님께 수현이의 정기적인 1:1 상담을 신청했다. 순회 상담 선생님은 수현이와 몇 번의 상담을 한 후 협의회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수현이는 전쟁고아와 같아요. 자신의 것을 움켜쥐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에게 배려와 존중은 사치인 거죠." 부모의 울타리가 부재한 아이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자신을 지키려 방어와 공격을 거듭해 습관이 되었다. 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배려하는 법 이전에 너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우리들이 너를 지켜주겠다는 것, 너는 존재만으로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져도 되고 2등 해도 되고 꼴등해도 너의 세상이 무너지지 않다는 것일 테다. 아이에게 신념과 같이 박혀버린 생존 방식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어서 온 마을이 수현이의 보호자가 되어 함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현이의 신경가소성이 열일해 줘서 새로운 생각의 패턴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수현이에 대한 상황을 동료 선생님들과 나누고 교감, 교장 선생님들께도 말씀드렸다. 지속적으로 수현이 어머님과도 통화를 했다.
수현이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들을 조사했다. 우선 교육복지 예산으로 우리 반 전체 집단 상담 10회기를 신청해서 집단 놀이 활동을 통해 또래 상호 관계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강사 선생님과 내가 함께 지도해도 매시간 싸움이 일어난다. 싸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행동을 수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이들은 늘 서로를 원하고 함께 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갈등을 바람직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지금 기분이 어때? 왜 싸움이 일어난 것 같아? 친구의 입장이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친구와 계속 즐겁게 놀려면 어떻게 하면 좋겠어?" 장난과 싸움의 경계는 사람마다 달라서 아이들은 서로를 계속 경험하며 선을 맞춰나간다. 수현이는 평소 하지 않는 양보, 인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등을 할 경우 긍정 행동 강화를 위해 공개적으로 칭찬을 했다. 수현이는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힘이 있는 아이라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리더십 있게 클 수 있는 학생이다.
반에서 생일파티를 했는데 수현이가 제일 첫 번째 생일 당사자였다. 친구들이 "사랑하는 수현이의~" 노래를 부르는데 수현이는 그 부분에서 손으로 두 귀를 막았다. 야단을 치면 웃고 있고 사랑과 축복의 말을 하면 두 귀를 막는 아이. 익숙해야 할 말은 불편하고 한두 번 들어도 속상한 말은 익숙해하는 수현이를 보며 긍정확인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자아긍정감을 높여줄 문장을 10개 뽑아 칠판에 붙여 놓고 아침마다 자신을 안으며 긍정확언 한 줄을 크게 외친다. 수현이 덕에 정착된 우리 반 문화이다.
사랑에 어울리지 않는 아이. 그게 수현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사랑이 고프고 사랑이 필요하며 많은 잠재력을 갖춘 수현이를 보며 이 아이만큼 사랑이 어울리는 아이가 또 있을까 싶다. 반에서 제일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수현이이지만 수현이 덕에 나 자신이 지치지 않고 틈틈이 충전해야 할 이유가 생겼고, 교사가 얼마나 고귀한 직업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멀리 보고 같이 가자 수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