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2년 하고 11개월. 후회가 남기보다는 마음에 산들바람이 부는 것 같이 시원했다. 2년 11개월의 회사생활 그 시간은 오롯이 내가 견뎌야 할 시간들이었다. 드라마 미생에서도 “시련은 셀프입니다.”라는 대사가 있다. 회사는 공동체지만, 각자가 짊어진 시련은 셀프였다. 회사생활을 하며, 나를 지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들은 나를 지우는 시간이었다. 신입의 열정과 패기는 점차 흐릿해졌고 내 의견, 선호를 내기보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편해졌다. 명백한 상하관계 속, 상사가 농담으로 던진 말에도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 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내가 내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여기 살아있어요.’를 보이지 않으면, 나의 존재가 사라질 것 같았다. 글을 쓰며, 회복하는 시간을 갖았지만, 그럼에도 회사에 대한 내 기력이 점점 고갈되고 있음을 은연중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와중에 교통사고까지 당해, 휴식의 시간을 갖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연애를 하면 나를 더 잘 알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회사생활도 그랬다. 인간관계, 팀워크, 업무태도, 스트레스 대처법, 문제해결능력, 의사소통 등 회사를 다니면서 나 자신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부족한 점을 느꼈을 때는 부끄럽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스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이 뿌듯했다.
회사에는 다양한 여러 사람들이 존재하고 각자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 모두의 기준을 맞추는 건 어렵다. 회사이니, 일 잘하는 능력을 0순위로 뽑을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사회생활 능력(본인 말을 잘 듣는 사람, 토 안다는 사람), 쇼맨십, 인간관계, 팀워크 등 여러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판단 기준과 평가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회사생활을 하며, 헨리포드의 명언을 더 마음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헨리포드는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이 옳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나 자신과 더 나아가 타인의 능력, 잠재력을 한계 짓지 말라는 말이다. 각자가 가진 기준에 따라 직원들의 능력을 한계 짓고 평가하는 모습을 자주 봤었다. 평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내린 잠정적 결론에 따라 직원들을 대하는 상급자 태도들을 보며 안타깝다 생각하기도 했다. 나 역시도 누군가의 평가를 받는 입장이며, 그 평가에 따라 다르게 대우받았다. 이럴 때마다, 속이 느글거렸다. 나는 나 자신인데, 각자가 가진 기준에 따라 나를 다르게 대하는 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 마음속은 혼란했고, 상급자가 바라는 기준에 맞춰 내 자아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게 거지 같았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다, 나는 헨리포드의 명언을 내 마음속에 새기기로 했다. ‘상급자가 그리고 타인이 뭐라고 하든, 내 자신을 믿자’ 헨리포드의 말을 0순위로 적용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타인이 무엇이라 하든,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혹은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옳은 것임을 나는 마음 깊숙이 새겼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 자신을 믿는 마음’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자.
퇴사 후,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회사생활을 하면 절대적인 시간 양이 부족하다. 인스타나 유튜브를 보며 ‘나중에 가봐야지, 나중에 해봐야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직접 다 해보기로 결심했다. 아침 이른 시간 요가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평소에 가보지 못했던 동네의 예쁜 카페를 방문해 책도 읽고 글을 쓸 것이다. 또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맛집도 내 마음대로 먹으러 돌아다닐 거다. 미뤄두었던 운전면허 연수도 받고, 동영상 편집 수업을 들어 유튜버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회사생활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내 한계를 나 스스로 규정짓지 않으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과파이는 사과와 밀로 만들어진다. 이 사과파이를 이루는 원자는 사람의 몸을 이루는 원자이기도 하다. 137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고 그 후 별에서 산소, 탄소, 질소, 마그네슘, 철이 생겼다. 이 원소들이 지구를 구성해, 때로는 구름이, 때로는 생물이, 또 흙과 빗물이 되기도 한다. 또 사람이 죽으며, 분해를 통해 몸을 이뤘던 원소들이 다시 꽃이나 숲, 구름, 생물의 몸을 이루는 원소 일부가 된다. 우리 몸은 1년에 98%의 원자들은 다른 원자들로 교체하는데, 이 원자는 지구와 전 우주를 떠돌며 결합하고 분해된다. 한 때 구름이었을지 모르는 원자가, 셰익스피어의 몸을 이루었을지 모르는 원자가, 헨리포드에 속해 있었을지 모르는 원자가 내 몸 안에 있을 수 있다. 그럼 나는 때로는 자유로운 구름이 될 수도 있고, 초원을 달리는 퓨마가, 하늘을 나는 철새가, 그리고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가, 사업가 헨리포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원자를,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를 기르는 법 14_기칠운삼 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