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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약 Sep 21. 2022

정신과 4 - 죽을병은 아니다

기쁨의 눈물



너무 아프고, 너무 힘든데 통증은 더 심해지기만 한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지 모를 두통은 분명 지금보다 고통스러울 것이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계속 아프기만 하는) 이 상황이 좌절스러운데, 그런 내 앞에 '네게 무슨 문제가 있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아무도 관심 없는 내 문제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가족조차 알아채는 데 오래 걸렸던 일이었다.

'지금 너에게 어떤 문제가 있냐'라는 말은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이었지만, 나 스스로조차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의 물 잔이 왈칵 흔들려 쏟아져 내렸다. 나는 침착하게 내 상태를 설명하고자 했지만,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울분과 한탄과 기쁨이 섞인 복합적인 의미의 눈물이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해방감을 맛봤다. 동시에 그럼에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좌절감이 밀려들었다.

당장 변하는 건 없었다. 그럼에도 그때 나는 고통 속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운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울어서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지만, 나는 언제나 울고 싶었던 것 같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벽을 마주하고 한탄하며 슬피 울고 싶었다.  

운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는 않겠지. 이런 이유로 울고 싶은 마음을 내내 억눌러왔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 좀 울면 어떤가? 눈물로 씻어낸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지는데 말이다. 그 시절 수도 없이 경험해 본 바, 나는 울어서 꽤나 스트레스가 풀리는 인간이었다.


하늘도 무심한데, 울면 좀 어떤가. 뭐가 문제인가? 헤픈 눈물에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 사람이 유약해 보인다는 거? 약한 나를 참아주기 힘들다는 거? 그게 다 뭐 어때서. 그게 뭐 어떤가. 그저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하나 찾았을 뿐이었다. 울음에 한결 관대해져도 나는 괜찮았다.


























다시 오겠다는 다짐



정신과를 찾은 건 나지만, 손을 내민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미련 없이 약만 받고 가려는 환자에게 (투철한 직업의식인지 혹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선의인지) 자기가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라고 몇 번이고 손을 내밀어줬다.


문을 닫고 나오며 언젠가 이 정신과에 다시 한번 방문해도 좋겠다, 아니 방문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통이 좀 잦아든다면 가능하겠지. 혹 나에게 어떤 심리적 문제가 생긴다면 꼭 이곳을 방문하겠다 다짐했다. 나에겐 당장 덮어두었으나, 언젠가 다시 돌아보고픈 내부의 문제가 있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자기만의 골칫거리 말이다.


당장 가지 않는다 해도, 문제가 생겼을 때 갈 믿을만한 곳이 생겨서 마음이 든든했다. 우연이 만들어낸 이번 방문이 썩 나쁘지 않았다. 정신과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거부감을 단번에 뛰어넘을 정도로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먹으면서도 고작 몇 개월 만에 (이렇게나 빨리) 다시 정신과를 찾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두통이 나아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나로선, 상담할 상태조차 되지 못한다고 그리 여겼었다.


























세상의 기본값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게 순차적으로 내 생각대로 돌아가진 않는다. 내가 아무리 생각하고, 다짐하고, 계획 한들 상황이 받쳐주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입맛에 맞는 결과가 도출되도록 노력하기를 그만두지 못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기 때문이었다.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몇 번이고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그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받았던 것 같다.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자잘한 목표들을 위하여. 왜 내 뜻대로 되지 않는가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아래로 아래로 내리누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정확히 뭘 원하는지조차 헷갈렸다. 애매모호한 이상향을 쫓아 파란 깃털의 새를 쫓았다. 내가 노력하면 무언가 바꿀 수 있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나를 힘들게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내 원과 머릿속 계획과 달리 제멋대로 흘러간다. 안타깝지만 이게 세상의 기본 세팅 값에 더 가까워 보인다. 통제하고자 했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이 세상이 나를 병들게 했다. 노력은 할 수 있어도, 통제할 수는 없다는 걸 나는 자주 잊고는 했다.


























선생님의 이야기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아프다고 울자 선생님이 휴지를 건넸다. (어찌나 쉽게 감동받는지) 휴지를 여주는 선생님에게 나는 또 한 번 감동받았다.


방에는 간간이 내 울음소리만 들렸다. 단순히 아프다고 말하며 울었을 뿐인데, 속에 맺힌 게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프고, 힘들고, 울고 싶다. 그래서 울었다. 나로선 터진 울음을 멈출 이유가 없었다.


선생님은 잠시간 나를 지켜봤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떤 말도 할 생각이 없었다. 울어서 머리가 더 아픈 거 같기도 했다.

그런 나를 알아봤는지 선생님은 내 입이 열리길 기다리는 것을 멈추고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울면서도 나는 선생님이 무슨 얘기를 하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부드러운 휴지를 손안에 말아 쥐고 눈물을 꾹꾹 찍으며 선생님의 말을 들었다.


내 시선을 돌리려 한 걸까? 내가 머리가 너무 아프다며 우니까 일부러 말한 걸까?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자기 머리에 혹이 있다고








짧은 한마디가 가진 무거움에 놀라 나는 반응을 못했다. 뒤이어 선생님은 머리에 혹이 있지만 자신은 혹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신기하리만치 통증이 없다고 첨언했다.


머리에 혹이 있다면, 그 크기와 위치에 상관없이 (양성종양이라 할지라도)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 평소에 있는지 없는지 전혀 인식할 수 없다 해도 위치가 위치인 만큼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뇌는 인간의 중추적인 기능이 밀집된 중요하고도 민감한 장기였다.


머리에 혹이 있다는 그 한마디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지만, 증상이 없다 해도 꾸준한 추적 관찰은 필수적으로 보였다. 예상대로 선생님은 불과 얼마 전에도 병원에 다녀왔다며, 주기적으로 모교 대학병원을 방문하여 정기검진을 받는다고 했다.


























죽을병은 아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뇌에 구조적인 문제는 없지만 통증이 견딜 수 없을 만치 심하고, 본인은 뇌에 혹이 있지만 통증은 전무하니 우리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라고.

그러게.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생님과 나는 '통증'과 '목숨의 위협'이라는 면에서 정반대 위치에 있었다.


편두통은 통증이 있을 뿐, 목숨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질환이다. (만약 편두통 환자가 두통을 호소하지 않는다면, 현대의학에서 편두통 환자는 어떤 질병도 없는 건강한 사람으로 인식될 것이다) 나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뇌와 관련된 질환 중 편두통은 경미하다면 경미한 질환으로 취급된다.


사람의 '목숨'과 질환의 '중대함'을 같은 선상에 둔다면, 편두통은 분명 중대하지 않은 질병이 된다. 아무리 아파도, 환자의 일상이 어떻게 어그러진다 해도, 설사 하루 종일 죽을 것 같은 통증이 이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목숨에 영향을 주진 않기 때문이다. 이만한 통증을 유발하고도 그렇다니 정말이지 믿기 힘든 일이지만, 아직 밝혀진 바론 그렇다.


다행인 걸까. 

다행인 일일 것이다.


























머리에 혹이 있다



극심한 두통을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생각일 테지만, 나도 정말 내 머리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 이렇게 아플 수 없다고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내 머리엔 아무 이상이 없었고, 두통 증상의 원인이 될만한 다른 어떤 중차대한 뇌질환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뇌 CT, 뇌 MRI를 통해 감별 가능하다) 조절되지 않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영상검사 결과 나는 적어도 뇌질환으로부터 목숨이 위협받는 아찔한 상황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장의 내 목숨은 온전히 보장돼있었다.


그에 비해 뇌에 있는 종양은 언제 어떻게 변모하여 내 목을 조를지 모른다. 아직 터지지 않은 내부의 시한폭탄에 언제 불이 붙어 째깍째깍 초침을 줄여 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운이 좋아 불발탄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단순히 운에 맡기기엔 무시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요소인 것이다.


안정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머리에 혹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이 미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진작에 결혼하셔서 둘째가 이미 대학생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나처럼 20대부터 아팠을 거라 지레짐작한 것이다. 그러나 머리에 혹이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젊어서 알았는지 이후에 살면서 우연히 발견했는지, 실제로는 어떤지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표정에 드러나지 않게 신경 썼지만, 나는 매우 놀랐다.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서 듣게 될 말이라곤 생각지 않았으니까. 초면에 화두로 꺼낼 거라곤 생각지 않은 내밀한 사정이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처음엔 어떤 의도로 내게 이런 말을 하는지 몰라서, 그리고 뇌에 혹이 있는 자신의 상황을 처음 본 나에게 말하는 게 쉬이 믿기지 않아서 말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머리에 문제가 있다면



위로차 말해주셨던 걸까? 밖으로 보이지 않아도 누구나 아픈 구석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뇌에 종양이 있는 자신보단 내가 낫다는 위안을 얻길 바랐던 걸까?

의사선생님이 어떤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 나는 모른다. 단순한 너는 그렇고, 나는 이렇다는 사실 적시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필 그 순간, 이 말을 꺼낸 것에 진정 아무 의도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통증 속에서 아프고 싶지 않은 마음을 표하며 울고만 있던 나는 갑자기 떨어진 말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몇 번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사선생님보다







내가 더 낫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거다. 정말, 절대. 절대로 내가 더 낫네 싶진 않았다.

선생님은 안 아프잖아.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은 안 아프니까. 되려 선생님은 뇌에 혹이 있어도 아무 통증이 없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보통 악성 뇌종양의 경우 목숨이 오락가락하고, 예후가 좋아 살아남더라도 몸에 마비가 오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선생님은 악성도 아니고, 통증도 없으며, 그냥 추적 관찰만 하면 됐으니 (아직까지는) 여러모로 종양이 있는 거 치고 아주 운이 좋은 경우였다.


























누가 나은가



그러나 아무리 운이 좋은 경우라 해도, 의사선생님이 '나보다 더 나은 상황'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언제 어떻게 나빠질지 모르는 이 상황을 어떻게 나보다 낫다고 낙관적으로 취급해 버리겠는가.


정말 뇌에 종양에 있고 싶진 않다. (절대로) 그래서 아파 죽겠으면서도 나는







그래도 선생님은 통증이 없으니까
저보다 낫잖아요.






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질병이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는 숫자가 말한. 5년 생존율, 완치율, 사망률 등의 수치는 듣는 것만으로 무시무시하다. 겁이 난다. 그러나 냉혹한 통계 값 이상으로 숫자가 말하지 않는 그 뒤의 것들이 나는 두렵다.


병원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 무력감이 감도는 병실, 주변의 앓는 소리, 내 옆자리에 들어오고 나가는 저마다의 사람들, 그리고 시시각각 닥치는 신체적/심리적 어려움은 삶은 '비극적인 죽음'을 향해 내달리는 열차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투병 생활은 일상으로의 성공적인 복귀를 가정한다 하더라도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종류의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나로서는 특히나 취약했다. 병원이 주는 부정적 기운을 감당하기에 내 정신은 연약하기만 했다.


아마 통증이 지금 정도로만 조절됐다면, 조금이라도 견딜만했다면






그래도 제가 아주 조금은 낫네요.





라는 식의 말을 넌지시 꺼냈을지도 모르겠다. 의사선생님은 정말 그런 말을 유도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너와 다른 이유로 아픈 사람이 존재하며, 멀쩡히 웃으며 앉아있는 네 눈앞의 나조차도 그렇다고 말이다. 밖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말하지 않지만,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이야기를 들어온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은 당시 내 입에선 나오기엔 불가능한 말이었고, 나아지고 나아져서 내가 상상도 못 했던 수준으로 많이 좋아진 지금에 와서도 꺼내고 싶지 않다.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지금은 지난한 통증의 세월과 또 앞으로 반복될 통증이 두려워 말하지 못한다.


고통으로 점철된 (나아질지도 알 수 없는) 현재와 당장 아프진 않지만, 앞으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목숨이 걸린 중대한 질병. 암울하기 그지없는 현재와 미래 중 선택하라니, 이런 비극적인 양자택일이 어디 있는가?

이런 선택을 왜 해야 하는가? 둘 다 비극일 뿐인데 말이다. 그냥 나나 선생님이나 운이 좋지 않은 거였다. 서로 다르게 운이 좋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났을 뿐이었다.


























위안은 되진 않지만



솔직히 죽을병도 아니다. 죽을 만큼 아프니 그다지 위안은 되진 않지만, 하루 내내 아플 때 듣게 된 이 말이 신선하긴 했다. 이렇게 아파도 죽진 않는다는 거니까. 통증 속에 잊고 있는 사실을 다시금 재인식했달까?

그러나 그 인식이 딱히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그냥 '너도 안됐다. 나도 안됐다. 고로 우리 둘 다 안됐다'라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죽을병이 아니라는 게 위안 삼을 이유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상처만 중하고, 내 상처에 압도돼서 다른 사람의 상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식의 접근은 적용하기 힘들지 않나 싶다. 남의 괴로움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본인의 작은 괴로움보다는 못하는 게 사람이지만, 글쎄, 지금은 해당되진 않는 듯하다. 

내가 가장 중해서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기보다 그냥 나는 눈앞의 통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뿐이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치 아픈데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무엇보다 둘 다 별로인 선택지 앞에서 딱히 첨언할 말이 없었다. 나는 놀란 기색만 보일 뿐, 선생님의 말에 어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나라믹의 결말



아껴먹고 있던 애증의 나라믹은 다섯 통을 받아왔다. 여유 있게 확보해둘 생각이긴 했지만, 지나치게 여유 있는 양으로 이후 내가 실제로 복용한 양은 한 통 정도였다.

정말 버티다 버티다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참은 후 복용했기 때문에 실제로 먹은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어차피 머리는 매일 아프고, 아플 때마다 매번 약을 먹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약물과용두통을 의식했다) 약을 항상 아껴먹었었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드디어!!) 대학병원 내원일이 왔다. 나라믹에 집착했던 것이 무색하게 편두통용 진통제로 나라믹이 아닌 다른 약을 처방받았다. 나라트립탄(Naratriptan)에서 알모트립탄(Almotripta) 성분으로 약을 변경했다. 

상품명은 알모그란으로, 나라믹과 같은 트립탄 계열의 약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듯한 앞선 경험으로, 알모그란은 여유 있게 달라고 해서 넉넉히 처방받았다.




나라트립탄(naratriptan)→ 알모트립탄(almotriptan)





https://brunch.co.kr/@d688cc96ca81425/28









쟁여놓은 나라믹은 한참을 내 서랍 안에 모셔져 있었다. 더는 먹지 않는 나라믹의 존재를 알면서도 나는 사용 기한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버릴 마음이 들었다. (사용기간이 지나고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를 때까지) 나라믹을 쉽게 버리지 못한 것은 이 약을 애타게 구하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였다.

손쉽게 버릴 수가 없었고, 사용기간이 훌쩍 지난 약을 정리하고도 한동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통증에 시달렸던 나에 대한 연민인지, 아직도 편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현재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는 안도인지.


이후, 트립탄을 몇 번 더 변경하여 현재는 조믹에 정착했다. 


넉넉히 받아온 약을 결국 버린 걸 보면, 굳이 약을 많이 쟁여둘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편두통 환자만이 아니더라도) 만성질환자의 경우, 한 가지 약만 계속 먹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동안 병원을 방문하지 못할 특정 사유가 없는 한, 약을 미리 많아 쟁여둘 필요는 없다. 나는 불안해서 그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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