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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다이소, 그리고 차 한잔

폭설이 내리는 설 연휴에

by 소금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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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보다 길다는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뉴스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을 찾는 방문객들이 역대 최고라는 소식을 전한다. 설 연휴에 해외여행이라니 부럽다. K-며느리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명절이다. 시댁에 가면 상 차리고, 치우고, 설겆이하는 나도 명절이 가까워지면 조금씩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남편이 설 연휴에 주간 당직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럴 땐 속으로 웃어야하나! 적어도 며칠 전에 가는 건 피했으니 부담감이 쓱 내려간다. 폭설 예보 소식이 들린다. 때마침 시골에서도 내려오지 말라는 전화가 왔다.


연휴라고 하지만 우리집은 여느 날과 똑같은 일상이다. 산책을 나갈까 했더니 하늘이 거뭇해진다. 거실 창가 식물을 비추던 햇빛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하늘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심술을 부리는 상황이 명절을 앞둔 내마음 같았다. 산책을 나가려고 했지만 눈이 내려서 얼마 전에 오픈한 다이소에 가보기로 한다.


차를 타고 가는내내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린다. 희끄무레한 하늘을 먹구름이 조금씩 뒤덮고 있었다. 다이소에 도착하니 국내 최대 매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만큼 인파들로 붐볐다. “이제 다른 다이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다.”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며 웃는다. 지금까지 보아온 다이소 매장보다 넓어서 내 눈은 쉴새없이 바빠진다.


다있소라는 다이소처럼 설 연휴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사지 않는다고 큰 소리 쳤지만 천 원, 이 천원짜리 물건들이 쇼핑백에 담긴다. 견물생심이다. 결국 남편의 재촉에 무인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남편과 나는 근처에 차를 마시러 가기로 한다. 휘황찬란하게 들어선 고급 상가들이 유령도시처럼 휑해서 브리티시(영국) 몰이라는 간판이 무색해보였다. ‘이것도 모두 불경기탓이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눈이 쌓인 거리를 걷는다.


저 멀리 커피숍을 알리는 노란 간판이 보여 우리는 그리로 간다. 키오스크 앞에서 무슨 차를 마실지 고민하느라 시간이 길어지니 남편이 사람들이 기다린다고 눈치를 준다. ‘아차 ‘싶어서 뒷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다. 나이를 먹는건지 이제 더이상 빠릿빠릿 하지 않는 내가 느껴진다.


차를 마시는데 눈발이 또다시 날린다. 눈발이 점점 휘몰아치다가 거짓말없이 맑아진다. 하루 종일 안전 안내 문자는 이어지고 눈은 끝날 듯 위태하게 내린다. 집에 있었으면 평범했을 하루가 다이소와 차 한잔으로 이렇게 특별한 의미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폭설과 함께 찾아온 설, 그 시작은 일상과 다르지 않았지만 소소한 기쁨이 함께 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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