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보하
이 집을 산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나는 워낙에 집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한 집에서 몇 십 년부터 어쩌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도 모순적이었다.
나는 자유롭게 여기서 일 년, 저기서 이 년 이렇게 유목민처럼 살고 싶은 꿈이 있다.
그래서 내 집 장만에 열혈인 사람들이 조금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너무 싫증 나지 않는가. 한 곳에 머무는 삶만큼 매너리즘적인 인생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아이가 커가면서 어떤 상황이 올 지 모른다. 지금 우리의 계획처럼 중학생이 되면 독일에 유학을 가야 할지도 모르고, 또 다른 나라에 가서 살 게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도 아니라면 귀촌을 할 수도, 제주도로 갈 수도...사람일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주 좋은 집에서 한평생을 살 의향이 전혀 없다.
아이의 방향에 따라가든지(해외가 된다면), 아니면 아이가 독립한 후 나만의 집들을 찾아 유목하리라.
아무튼 이건 추후의 이야기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이사를 결정했다.
아파트는 워낙에 내 취향이 아니고, 마당이 있는 주택집을 원했는데 지극히 자본주의자인 나의 남편은 5층짜리 상가건물을 선택했다.
조건은 일단 아이가 다닐 초등학교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어야 했고, 주변 편의시설이 좋아야 했다. 마트, 편의점, 커피숍, 식당들, 그 와중에 백화점과 터미널도 걸어서 10분 거리니 여기가 딱이다. 그렇게 우린 이 집을 처음 만났다.
새로 지은 건물도 아니었고, 겉보기에 번쩍번쩍하지도 않았지만 내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딱 2가지였다.
우선은 거실과 주방이 넓어서였고, 다음으로 올라가 본 옥상에 텃밭과 두 그루의 나무 때문이었다.
텃밭의 흙이 매우 좋아 보였고, 텃밭 자체도 꽤나 넓었다. 그 텃밭의 양 옆으로 나무가 있었는데 그 당시 계절이 겨울이라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몰랐다.
부동산 중개인에게 물어볼 생각도 안 했고, 다만 나무가 살아있다는 것만 확인했다.
그렇게 우리가 이 집에서의 첫 봄을 맞이하기 전, 아직 바람이 차가운 2월이었던 것 같다. 옥상 청소를 하러 올라갔는데 저 멀리 텃밭 앞쪽에 빼꼼 고개를 내민 듯한 노오란 꽃이 보였다. 나는 꽃이든 나무든 풀이든 그 종류를 잘 모르는 무지렁이였기에 검색을 했더니 '수선화'란다.
'어머, 이 집엔 별게 다 있네?' 생각하며 한참을 수선화를 들여다보다 내려왔다.
그리고 두 달 후, 벚꽃이 만개하던 4월에 나의 옥상에 있던 그 두 그루의 나무에 벚꽃 같은 꽃이 피었다.
'어머, 이 나무가 벚꽃나무였나 보네.' 그렇게 또 예쁜 분홍분홍을 한참 들여다보고, 그 꽃잎들이 흩날릴 때까지 매일 옥상엘 올라갔다.
그러더니 한 달쯤 지난 5월 중순, 꽃잎이 다 떨어진 그 나무에 빠알간 열매들이 매달려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앵두나무였네~' 그렇다. 그 나무는 앵두나무였다.
앵두꽃은 벚꽃과 매우 흡사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다. 사실 열매도 앵두인지 버찌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동네 이모에게 물어봤더니 앵두라고 했다. 그래 누가봐도 앵두지. 버찌는 앵두보다 더 보기 힘든 것 같으니.
꽃만 활짝 펴내도 너무도 선물인 것을 거기에 열매까지 마구마구 품어내는 두 그루의 앵두나무.
이 나무는 내 아들이 세 살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 애에게 새로운 선물이 되어주고 있다.
어린이집을 가기 전부터 매일 옥상에 올라와서 텃밭에 물을 주고, 씨를 뿌리고 열매가 되어가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농촌체험이 따로 없었다.
아이의 감성에 우리 집 옥상 앵두나무는 엄마와의 추억으로 가득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내가 앵두나무에게 감사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앵두를 따면서 입으로 쏙쏙 집어넣던 아이의 모습도, 탱글탱글한 앵두를 바구니 한가득 따 시원한 물에 세척할 때의 그 눈부시던 빛깔과 청량함. 그때의 햇살과 그 바람, 앵두로 잼을 만들고 청을 담가 지인들에게 나누어주던 기쁨과 설렘.
이 모든 것이 옥상에 있는 앵두나무 두 그루 덕분이었다.
작년까지는 텃밭에 이것저것 채소를 계속 심었는데, 올해는 너무 바빠서 못했다. 잡초를 뽑는 일도 보통일이 아닌 데다가 심어놓은 것을 다 먹지도 못하는 경우가 매년이었다. 하지만 그 잡초들 속에서도 부추는 부추대로, 애플민트는 애플민트대로, 대파는 대파대로, 깻잎은 깻잎대로 자라났더라. 역시 자연의 힘이란 엄청난 것이었음을 깨닫는 요즘이다.
우리 건물은 앞 뒤로 가로막힌 것이 없어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분다.
여기에서 나는 한 때 새벽하늘 아래 요가매트를 깔고 요가와 명상을 했으며, 여름마다 아이의 수영장을 설치했고, 나만의 작은 포차를 만들어 밤마다 낭만을 노래했다.
올해 텃밭은 못 가꾸었지만, 앵두는 따야 한다. 두 그루에서 따는 앵두가 양이 제법 많아 처치곤란이기에 작년에는 한 알도 따지 않고 그냥 떨어져 죽게 했다. 아까운 줄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또 오만을 떨었지 뭔가.
몇 십억짜리 고급 아파트는 아니지만, 우리 가족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는 이 집이, 해마다 수리할 것들이 생기지만 유일하게 1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나의 앵두나무가 나의 아보하를 만들어주는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