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리님, 오늘 미스터리우스 모임, 못 가시는 거죠?]
[네, 저도 진짜 가고 싶은데, 오늘 저 출근이에요. ㅠㅠ 월요일 전까지 꼭 마쳐야 되는 일이 있어서. 지금 사무실 막 도착이요.]
[그러시구나 ㅠㅠ 주말에도 고생 많으세요. 대리님 몫까지 재미있게 잘 참석하고 오겠습니다!]
승아와 진대리는 요즘 유튜버 '미스터리우스'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둘 다 추리물을 좋아하지만 호러 느낌이 강하면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감상할 작품을 선택하는데 약간 어려움이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미스터리우스 채널에는 직접 그린 귀여운 그림체로 완성도 높은 추리가 담긴 영상이 올라왔다. 승아와 진대리의 취향에 딱 맞았기에 채널 초기부터 열린 오프라인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했다. 한 달에 두 번 미스터리우스와 구독자들이 만나서 함께 추리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영상을 자주 만드는 미스터리우스로서는 구독자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구독자는 좋아하는 유튜버와 대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서로가 윈윈 하는 자리였다. 구독자가 늘어나자 그저 미스터리우스의 외모에만 열광하는 사람은 모임에서 제외하였고, 참석자는 반드시 초단편 길이의 추리 스토리를 한 편씩 가져가야 했다. 그래서인지 구독자 수에 비해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회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승아는 피가 낭자하는 잔인한 사건보다는 사라진 고양이를 찾는 사건처럼 마일드하지만 추리 구성이 탄탄한 스토리를 짜 가곤 했다. 처음엔 승아 자신이 읽어도 낯 뜨거울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몇 편 쓰다 보니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바쁜 와중에도 꽤 성실하게 준비해 갔다. 그 덕분에 미스터리우스도 승아에게 조금씩 관심을 보이더니 어느 날은 승아의 스토리를 영상에 사용하게 해달라는 제안을 했다. 승아로서는 왠지 으쓱해진 기분이 들었기에 팬심을 담아 기꺼이 수락했다. 승아가 쓴 이야기가 미스터리우스 채널에 올라오던 날, 승아와 진대리는 어린이날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오늘은 승아가 처음으로 진대리 없이 참가하는 날이었다. 매번 짝꿍처럼 붙어 다니던 사람 없이 승아 혼자 나타나니 자주 얼굴을 보이는 회원 몇 명이 관심을 보였다.
"미스토리님, 오늘 미추리님은 어디 두고 혼자 오셨어요?"
"아, 미추리님은 회사에서 급히 하실 일이 있다고 못 오셨어요. 오늘 재밌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는데 아쉽다고 하셨어요."
"미추리님을 위해서라도 재밌는 이야기는 좀 아껴 둘까요? 그나저나 두 분은 진짜 사귀는 사이 아니세요?"
어느새 승아 곁을 둘러싼 회원들이 눈을 빛내며 승아를 쳐다봤다. 평소 오지랖이 넓기로 유명한 회원 아무개가 나서서 질문을 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엷은 미소를 띠며 승아에게 집중했다. 적재적소의 오지랖이었다며 만족을 담아 아무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사람도 있었다.
"저희는 회사 동료예요. 삭막한 회사에서 우연히 추리물을 좋아하는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고는 곧바로 취미 메이트가 되었지요."
"이 문장만 들으면 완전 연인들의 첫 만남 소개 아니에요?"
"저는 만난 지 오래된 남자친구 있어요. 남자친구는 추리물을 안 좋아하고 미스터리우스님 모임에 같이 안 오겠다고 해서. 저 남자친구 허락 맡고 오는 거예요."
승아는 이걸 지금 왜 구구절절 이야기 하고 있나 싶었지만 이미 눈이 반달이 된 회원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어라 변명하지 않으면 진대리와 커플 취급받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승아는 본능적으로 성실하게 진실을 밝히는 자의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승아가 열변을 토할수록 그들의 입꼬리는 더욱 흐뭇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오늘의 모임을 시작해 볼까요?"
미스터리우스가 입을 열자 회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승아에게서 미스터리우스에게로 미소를 옮겼다. 그가 솜씨 좋게 자신을 곤란에서 구해주었다는 걸 승아는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승아도 벌게진 얼굴을 잠시 식히고 다른 회원들처럼 미스터리우스에게 집중했다. 참 잘생기긴 했단 말이야. 승아는 미스터리우스를 바라보며 새삼스레 감탄했다. 이내 곧 그가 풀어내는 지난 영상의 숨은 추리를 들으며 더 크게 감탄하게 될 테지만.
미스터리우스에게 아름다움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었다. 그래서 아름다워 보이고자 하는 욕망을 쉬이 놓을 수 없었다. 놓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손쉬웠던 건 10대, 20대 즈음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못생겨져서가 아니다. 손쉽게 아름다움을 얻는 10대, 20대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어서다. 그 시절 외모 이외에 다른 것도 가꾸어 왔던 친구들은 여전히 빛나는 구석들이 있었지만, 손쉬운 방법에만 기대었던 자신은 왠지 모르게 조금 빛이 바랜 느낌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미스터리우스라는 필명을 스스로 붙이고 미스터리 장르의 글을 써서 괴발개발 그림도 그렸다. 자신이 보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재밌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타고난 외모가 아닌 노력한 결과에 대한 첫 칭찬이었다. 짜릿했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그의 노력은 더욱 커져갔고 유튜브에서 작은 성공을 맛보았다. 물론 여전히 아름다움은 가려지지 않아 오프라인 모임에서 외모를 보고 좋아하는 팬들도 생겼지만, 결국 꾸준히 그를 좋아해 주는 건 추리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미스터리우스는 사람들을 매혹시킬 새로운 영상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지난 영상의 숨은 추리를 공개할 때 승아와 회원들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7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