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초, 한겨울에 댄스스포츠 첫 시간이 시작되었다. 엄마와 큰누나는 주민센터 2층의 여분 공간을 주민 평생교육센터로 마련한 방 입구에서 시골쥐들처럼 머뭇거렸다. 안에서부터
"들어오세요~."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멈칫거리며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고 두리번거리며 최대한 한쪽 구석에 가서 섰다.
TV에서처럼 댄스 복장을 차려입은 댄스 선배 회원들은 시골쥐처럼 머뭇거리는 두 여자에게 의자를 내어주었다. 야무진 표정의 여자 강사가 다가오며 톤이 높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서른 명은 너끈히 듣고 남게
"이번 학기에는 중급반만 있어요. 쪼끔 어렵겠지만 그냥 함께 배우면 돼요." 했다.
카펫이 깔린 장소에서 신곤 했던 클래식 단화와 운동화를 준비하여 참석한 두 번째 시간에 강사는 누나 일행의 신발을 발견하고, 누나네에게만 해당하면 좋을 나지막한 목소리 대신 교실 내 참여인원이 모두 듣고도 남을 만큼의 우렁찬 목소리로 "댄스 구두의 필요성"을 말했다. 그리고 벽장 선반 속에서 쥐가 쏠은 것처럼 헌 구두를 한 켤레 꺼내 주며 신어보라고 했다.
신데렐라 연극의 소품으로 제대로 어울릴 헌 구두의 사이즈가 엄마에게 조금 적지만 누나 엄마는 진짜 재투성이 소녀가 신듯이 발을 끼워 넣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 동안 큰누나는 의자에 앉아서 참관하고 누나 엄마는 누군가가 댄스에 혼신을 다 한 징표인 헌 구두와 함께 서툴게 빙글거렸다. 덕분에 엄마는 댄스 구두의 느낌을 학습하였다.
쉬는 시간에 선배 댄스 회원들이 돌아가며 조곤조곤한 톤으로 댄스 구두 구매 요령, 장소, 가격 등의 정보를 건네주었다. 누나 엄마는 댄스교실의 생경한 분위기에 머리가 지끈거려오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만 두지... 이건 빈혈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하는 소리가 이어졌지만, 큰누나 앞이므로 표정관리에 애쓰며, 수업이 끝날 때까지 견디었다.
두 사람은 닷새의 고민 끝에 선배 댄서들이 알려준 대로 건대입구 거리 어디쯤에 위치한다는 댄스 구두 전문점을 찾아갔다. 영락없는 촌닭처럼 가장 기본형 까만 가죽구두 2켤레를 예산을 초과해서 구입했다. 가격이 올랐나 보다. 초보이므로 강렬한 색상의 댄스복은 미루는 걸로.
탁구도 라켓만 사고 면티셔츠를 입고 1년을 쳤는데... 새로운 프로그램마다 필요하다는 도구들을 죄 구매하면 두 사람의 취미활동 도구만으로도 작은 방 하나 가득 채우게 될지도... 이미 미술과 동화, 웃음치료, 전통놀이치료 재료 박스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중인데.
누나 엄마는 댄스 수업 시간마다 몹시 긴장되었다. 두서너 차례의 강사 시범 후 음악에 맞춰 모두 빙글빙글 돌아가며 파트너가 바뀌고, 자리 잡아 잘 서야 하는 일이 참... 여고 때 예비고사 체력장쯤은 연습 없이도 "달리기부터 던지기, 매달리기"까지 '날아가는 특급'이었다는 누나 엄마를 아주 '서있는 가로등'으로 만들곤 했다.
큰누나는 의자에 자주 앉아있곤 하는데도 누나 엄마보다 댄스 순서 기억을 잘해서 동작 순서는 잘 따라갔다. 전 과정을 술술 잘 넘기는 60대 남성 선배 댄서가 휴식 시간에 큰누나에게 스텝 순서를 지도해주었다. 중급반 속에서 초급을 막 시작한 엄마와 큰누나는 함께 몸 개그 중이다. 여성 선배 댄서들은 어리숙한 두 초보에게 시범을 몇 번 보여주었다. 60대 남성 선배 댄서는 아예 파트너로 나서서 큰누나가 무리가 되지 않게 배려하면서 큰누나의 자세를 잡아주었다. 엄마는 파리한 누나의 표정에 시선을 고정했다. 쓰러지지 않기를...
큰누나는 잦은 어지러움에 양해를 구하고 자주자주 의자에 앉곤 했다. 앉아서 눈으로만 구경한 시간이 더 많은데도 큰누나는 금세 매 시간 순서를 정확히 기억했다. 그리고 참여시간이 점점 늘어갔다. 어르신을 위한 스포츠댄스라는데 몇 년씩 돌아 돌아 중인 선배 댄서들에 맞게 차차차, 룸바, 라틴댄스 등을 첨가해주었다. 그곳에선 큰누나가 제일 어린 연배이다.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14명. 은퇴 남성 4명 그리고 큰누나와 엄마까지 모두 20명 정원이다.
1분기 즉 3개월 코스에서 큰누나네 엄마는 그곳에서 빙글거리는 운동을 선뜻 선택해서 끈기 있게 지속하는 어르신들의 정열이 새삼 부러워졌다. 오후에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외손녀를 돌본다는 60대 후반의 여성 댄스 선배는 체력 유지를 위해 2년째 시도인데, 땀을 흘리며 열심히 댄스를 배우니 잔병치레가 없어졌단다. 빨간 댄스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자태와 동작은 누나 엄마의 눈엔 공작부인처럼 우아했다.
한겨울에 선배 댄서들은 스텝에 맞춰 운동을 하느라 모두 얼굴과 목에 땀이 흘러내렸다. 엄마와 큰누나는 언제쯤이면 땀이 흐를 만큼 빙글거릴까? 어느 시간부터 큰누나가 의자에 앉는 시간 없이 동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2개월 동안 엄마와 큰누나는 댄스 구두 굽 (3.5cm)의 부담을 제외하고는 댄스스포츠에 대한 호감이 오르기 시작한 상태가 되었다. 누나가 아프기 전에는 엄마 구두의 기본 높이가 4.5cm 뾰족구두였는데... 이젠 병원 보호자용으로 제격인 슬립온 신발에 적응되어 있다. 50분 수업 10분 휴식으로 구성된 3시간의 댄스 수업에선 3.5cm 굽의 가죽구두가 큰누나랑 누나 엄마는 좀 고단하다.
그렇게 엄마와 큰누나의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두 사람은 매주 1회 학교 출석과 병원 치료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째 닳지 않고 새것인 채 까만 댄스 구두 두 켤레는 구두 주머니에 담겨 집의 신발장에 놓여있다. 언젠가는 빨간 구두 소녀처럼 빙글빙글 스텝을 땔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