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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llara Feb 24. 2024

순댓국의 배반

산패된 순대라니

(그림 출처: freepik)



겨울햇살 같은 평화


한번 떨어진 큰딸의 혈압은 빈맥과 부정맥에 더해서 수년째 저혈압을 유지 중이다. 큰딸의 매스꺼움은 칼슘제제 복용이 많은 탓도 있을 테고, 저혈압이 원인일 수도 있다고 했다.


칼슘수치는 그렇게 여러 알 섭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균 아랫단인 7~8 사이에 멈춰있다. 대신 척추 주변에 칼슘찌꺼기가 허옇게 쌓여 엑스레이상으로 확인되고 있다. 4개의 부갑상샘을 덩달아 상실해 버린 수술 전엔 아무런 약 복용 없이 밥만 먹어도 칼슘수치는 9.5였다.


칼슘섭취를 위한 칼슘정 서너 알, 비타민 D 두세 알 그리고 마그네슘까지 칼슘섭취를 위한 노력을 하지만, 칼슘수치를 약으로 더 올리는 데는 부작용 우려로 한계가 있다. 손톱이 자주 깊숙이 찢어지는 걸 견디다 못해 닥터에게 호소한 끝에 이틀에 한 번은 칼슘을 하나 더 먹기로.


대신 갑자기 고칼슘증세가 심해지면 즉시 동네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하고 일시적으로 약을 줄이기로.. 부갑상샘의 역할이 전무하니 칼슘섭취가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칼슘분배 문제가 크다고 들었다.


급성과 만성 신부전 치료 경험으로 인해 닥터도 환자도 칼슘약 조절엔 신중해진다. 대신 신장내과와 신경과에서 지속적인 지나친 저혈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의 약처방을 추가했었다.


각각 2개월, 3개월마다 외래가 있으니 두 개 과의 관찰은 평균 4주마다 주호소 증세 외에도  칼슘 수준을 덤으로 들여다보는 상호보완 효과가 있었다.


초반에 중복처방된 칼슘으로 인해 고칼슘혈증 입원치료를 여러 차례 경험한 후로는 늘 여러 외래 과의 처방약을 환자가 미리 A4 용지에 적어 제출한다. 2분 진료에 수백 페이지는 고사하고 다른 과 진료 확인까지 할 사이가 있겠는가?


환자와 보호자가 매번 확인하고 A4용지로 보고하는 게  중복처방의 사고방지에 도움 된다. 이제 사구체여과율도 신장기능도 정상밴드 입구에 가까워져서 아직은 젊은(?) 큰딸의 건강복원력이 감사하다.


32세부터 시작된 암수술 후폭풍이 십 년 동안 지속되었으니 국가가 늘려준  '청년혜택 나이'조차 누려보지도 못하고 진작에 지났다.


그래도 내겐 여전히 큰딸이 청년이다.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던 때부터 일주일에 두세 차례 병원외래를 다니고 매번 주사를 꽂고 검사를 하고,  4시간씩 자가면역 치료제를 맞던 시기에도 주저앉지 않고 학문 연구에 동행한 큰딸에게 말할 수 없이 고맙다.


입원 중인 때를 제외하고는 결석도 안 했다. 도착 후 약기운에 교실에서 내게 기대어 잠들지라도 일단 학교행 KTX 왕복 티켓을 끊었었다. 


수술 초반 2년 동안 갑상선 내과와 갑상선 외과 그리고 신장내과에서 저칼슘혈증 치료 목적으로 한 칼슘계 중복처방으로 급성 신부전을 반복해서 앓다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았었다.


신장은 한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지지는 않으니 더 나빠지지 않도록 식생활에 조심하라는 전문의의 조언이 내 귀에는 건조하게 들렸었다. 그리고 10년째인 지금 내 심장을 쫄깃하게 겁주었던 큰딸의 신장기능이 조금씩 좋아져서 기적처럼 정상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진작부터 집에선 따로 싱겁게 하지 않고 간을 잘 맞춰서 식사준비를 한다. 한 움큼의 칼슘 관련 약들로 매스꺼움이 심한 큰딸의 식욕을 돋우기 위한 시도이다. 신장내과와 신경과 교수님이 복용약 외에도 저염 소식보다는 맛있게 잘 먹는 게 전해질 균형에 도움 된다는 제안을 작년에 해주신 까닭도 있다.


그렇다 해도 아주 가끔  맛있는 외식   모녀가 복통이나 배탈을 경험한 뒤로 점점 더 집밥 위주로 준비한다. 코로나 시기조차도 우리 집 문밖엔 배달음식포장은 없다. 대신 가끔은 신선한 재료가 들어간 베이글이나 치아바타를 구워서 신선한 고수와 민트잎 그리고 블루베리와 양파 등을 얹어 먹으며 눈을 즐겁게도 했다.


딸아이의 긴 치료기간 동안 아이의 기호 식품이던 피자나 스파게티 등 밀가루를 재료로 한 식품보다는 소화가 좋은 쌀과 된장, 김치를 재료로 한 상차림이 확실히 배 속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도와주었다.


하여 육류와 신선한 야채 그리고 발효된 장국과 김치를 응용한 메뉴들 준비에 그이도 나도 이젠 익숙하다. 밤에는 식은 밥으로 미리 만들어 말린 누룽지를 한번 헹궈서 물을 넉넉히 부어 끓인 고소한 물누룽지를 선호한다.


따끈한 물누룽지와 얇게 구운 몇 점의 소고기, 오이양파무침,  매실장아찌무침, 신선한 고수와 설탕에 절여둔 유자채를 함께 먹으면 배가 따뜻해지니 딸의 낮은 체온도 모처럼 따스해진다. 그러고 나서 약을 먹으면 딸은 덜 메스꺼운가 보다. 


딸의 컨디션이 좋을 땐 딸이 얼음 띄운 녹차를 준비하면 나는 생선을 뜨물이나 우유에 담근 뒤 구워내기도 한다. 월 1~2회는 월남쌈을 먹는다. 신선한 야채와 부드러운 소고기 편과 쌀피가 파인애플 조각과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매콤한 쌀국수 마무리 깔끔한 맛을 낸다.


내리막 나이에 우리 부부는 참 운이 좋다. 오랜 고생에도 우울을 털고 웃음이 많아진 큰딸과 반려견 수리와 함께 하는 일상은 겨울 창가에 비추는 햇살만큼이나 평화롭다.


셋이 삼발이처럼 집안일을 나누어하고, 식사메뉴를 돌아가며 준비하니 새삼 '감사기도'가 나온다. 그리고 해외 학술지에 실린 동물매개심리치료와 동물복지 관련 논문들을 딸과 읽고 의견을 나누는 즐거움이라니.


 이런 노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주말 밤에는 함께 누워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이토록 따스한 겨울 햇살 같은 평화로운 시간이 행여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까 겁이 날 만큼 조심스럽기도 하다.



순댓국의 배반


겨울햇살이 따스하던 날에 신장내과에서 약 처방을 받고 다음 혈액검사와 외래방문일자를  6주 후로 예약하였다. 그리고 다소 가벼워진 맘으로 나는 옆지기와 큰딸에게 밖에서 식사하기를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돌아오는 길에 평소 눈독만 들이던 유명브랜드 지점인 H순댓국집에 들렀다.


순전히 내가 제안한 거였다. 그리고 찹쌀순대세트와 순댓국을 세 그릇 시켰다. 사실 2그릇만 시켜서 1그릇은 순대를 좋아하지 않는 딸과 나누어 먹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국을 지나는 길이라 사람 수대로 주문해야 할 것 같았다. 순댓국을 세 사람 몫을 모두 시키고, 찹쌀 순대세트는 그동안 참아준 남편을 위한 보너스로 추가주문했다.


맛있게 먹은 찹쌀순대세트에 이어 따뜻한 순댓국을 먹었다. 접시에 있던 찹쌀 순대와 달리 국 속의 순대 일부에서 식용유 산패맛이 났다. 여러 번 확인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딸의 순댓국 속 순대도. 먹는 속도가 빠른 남편은 이미 식사가 끝났다. 그이도 순댓국에서 약간 특이한 맛이  났다고 했다. 딸도 나도 더 이상 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수저를 놓았다. 


그리고 부녀를 문밖으로 내보내고 계산을 했다. 그때 영업에 방해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상황을 설명하고 부엌 재료를 확인할 것을 부탁했다.


계산하던 나이 든 주인의 반응은 예상을 벗어났다.


 "예전에도 그렇게 불평하지 않았어요?"


"오늘 첫 방문이에요.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건가요?"


모처럼 외식을 한 남편과 큰 딸의 기분이 가라앉을까 봐서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나만 조용조용 처리하고 나왔다.


"좀 시간이 걸렸어요. 계산하면서 주인에게 ' 순대 유통기한 확인하시라' 했네요."


이럴 땐 내가 직선적인 성격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소리가 큰 여자였으면 더욱 좋겠다. 수입에 목을 매면 기본상식이 없어지는 식당주인에 참 어이가 없다. 대응하는 걸 보니 이 가게는 상습적인가 보다.


그때는 강력한 블랙컨슈머로 등장한 어느 목사모녀의  개업식당에 대한 질긴 횡포 뉴스가 연일 시끄럽던 시점이다. 돌아와서 생각을 정돈 후 다음날 본사에 전화를 했다. 


본사  응답자는 매뉴얼대로 예의를 보였다. 나는 '음식 가격은 제대로 받되 신선한 재료를 써달라'고 했다. 젊은 사람들처럼 순발력 있게 기관이나 고발 페이지에 못 올리고 ㅠㅠ.


식당운영에 애로사항이 수없이 많겠지만 식당에서의 재료신선도는 기본이다. 산패냄새가 날 정도의 재료를 섞어서 음식을 만든 행위는 ' + 부엌책임자고의'라고 생각했다.


모처럼 용기 낸 순댓국집 방문으로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경험하게 되다니. 쩐내 나순대가 걸려서 한동안 떡볶이 옆 순대조차 외면했다.  물론 떡볶이는 집에서 궁중떡볶이로 준비한다. 유명브랜드의 프랜차이즈 순댓국식당이 주 1회 아파트 장터가 열릴 때 함께 오는 미니트럭 순대보다도 못했던 불편한 경험은 순대 관련 식당 간판이 눈에 띌 때마다 떠오른다. 어찌 그 집뿐이랴. 부실한 재료를 사용한 음식점 고발 뉴스가 하루이틀이 아닐진대.


그래도 아주 오래전 가끔 들렀던 송파의 옛 신천역 먹자골목 끝에 있던 식당 '송송 썬 부추와 함께 내는 순댓국'은 가끔 그리웠다. 그러던 차에 며칠 전 식품구매 목적으로 검색 중 우연히  냉동순대가 팝업창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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