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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훈 Feb 15. 2024

그림책 출간의 끝없는 길

보이지 않는 정상


  그림책 공모전 시상식 이후의 내 삶에는 약간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림책 출판을 위해 출판사와의 미팅을 연달아 진행했기 때문이다. 본업인 언어치료를 할 때에는 선생님, 출판사 미팅을 할 때에는 작가. 마치 어릴 적 남몰래 봤던 천사소녀 네티의 주인공처럼 밤낮으로 나의 호칭이 바뀌는 것은 신선한 즐거움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 정말 내가 그림책작가로서 한걸음 더 나아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어떤 출판사와 함께 할까?


  그림책공모전 수상의 특전 중 하나였던 그림책 실물 출간. 심사를 맡았던 여러 출판사 중 내 그림책에 관심을 보인 출판사는 총 세 곳이었다. 출판사 한 곳만 나에게 컨택을 하더라도 감사할 따름인데, 무려 세 곳이라니! 나중에 함께 수상 작가분들의 후기를 살짝 들어보니 세 군데의 제의는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빨리빨리 레스토랑의 비밀>을 찾아주시다니... 뭔가 일반적인 그림책과는 또 다른, 나만의 스타일이 돋보였던 걸까? 혹은 그동안 제대로 공부한 게 없으니, 무지한 상태로 그린 책이 신선해 보였던 걸까? 침대에 누워 혼자서 즐거운 상상에 빠지곤 했다.


   공모전 시상식에는 LG유플러스뿐만 아니라 여러 출판사가 함께 자리를 빛내었다. 시상식 직후, 여러 출판사 관계자분들이 나에게 다가와 명함과 함께 조만간 연락드리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참 정신없는 하루였다. 출판사에서 내 그림책이 어땠는지에 대해 얘기를 해주시다니. 보통 투고를 할 경우 피드백을 받기도 어려운 마당에, 관계자분이 직접 내 눈앞에서 나의 그림책에 대해 좋은 평을 해주시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이후 내 작품을 어느 출판사와 함께 해야 할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두 출판사는 직접 미팅을 하였고, 한 출판사는 전화를 통해 여러 대화를 주고받았다. 가장 감사했던 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내가 그림책을 만들게 된 과정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말할 때 경청해 주셨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 그림책작가의 배경이 타인과는 다르기 때문에,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 지부터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모든 출판사와 미팅을 마친 후 며칠의 고민 끝에 한 출판사와 계약하기로 정했다. 나의 성향, 내가 추구하는 그림책의 뱡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출판사를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미팅들은 내가 그림책작가로서 완성형이 아니라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고, 앞으로 작가로서 많은 성장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하였다.




  끝없는 작업의 시간


  사실 <빨리빨리 레스토랑의 비밀>의 초고를 수정할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이미 완성된 것을 손봐야 한다는 불안감, 여기서 더 무엇을 어떻게 추가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등 여러 생각이 나를 잠식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출간을 하고 싶다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출판사와의 지속적인 미팅에서 내 작품의 부족함이 여실이 드러났다. 옷이 홀라당 벗겨진 기분이랄까. 내 민낯을 세세하게 들킨 기분이었다. 기본기라던가 그림에 대한 이해도 등 나의 작업스타일을 나 자신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동안 작업했던 파일은 웹툰을 그리는 것처럼 레이어를 겹치지 않고 한 번에 그렸었다. 하지만 레이어는 겹겹이 쌓아 올리는 개념이다. 출판사에서 작업물의 위치를 옮기거나 수정하려 하자, 쌓아 올려진 레이어가 아니라 비어있는 부분을 발견한 것이다(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 마디로 빈 부분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는 것이었다.


  작품의 스토리를 살짝 변경하거나 한 장면에 대해 새로 그리는 것도 많은 에너지 소모가 필요했던 찰나. 모든 페이지를 처음부터 손봐야 한다는 생각에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의 감정을 느꼈다. 심지어 그림책 공모전때와는 다르게 생계유지를 위해 일마저 시작한 상황.


  이때부터 내 삶의 초점은 그림책을 다듬는 것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내 그림책을 세상 밖에 내놓겠다>라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고 출판사의 피드백울 참고하여 작품 수정을 시작하였다. 공모전에서 수상하였으니 언젠가는 책이 나오겠지라는 생각보다는, 매 순간 미션을 클리어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다 보면 내년에는 책이 출간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이었다.


(새로운 장면을 구상하고 그리는 것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나의 방향 vs 출판사의 방향


  출판사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그림책 작업을 진행한 몇 달간은 내가 그림책작가로서 성장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몇 계단은 더 밟고 올라간 기분이었다. 나는 비록 새내기 초보 작가였지만, 출판사에서는 내 의견을 물어보며 그들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하는 편이었다. 갑과 을이 아니라 함께 배려하면서 소통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출판사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출판사와의 소통은 나에게 값진 영양분 같은 시간이었다.


  다만, 내 머릿속에서 고민이 생기기도 하였다. 보통 출판사 입장에서는 상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더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피드백을 제시한다. 작가 입장에서는 본인만의 신념이 있겠지만 일부는 수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며 서로가 만족할만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오류가 발생했다. 


  출판사의 피드백은 뼈와 살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처음부터 생각했던 작품의 색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초심자의 작업물은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를 나타낼 있는 포인트들이 점점 줄어들면, 내가 처음 의도한 주제 혹은 내용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면 완성본을 내가 만든 그림책이라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그림책 수정작업을 하면서 내 중심이 흐트러졌다. 출판사 측에서는 최대한 내 의견을 존중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았지만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에게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무조건적으로 내 의견만을 내세울 수도 없는 것이며 그렇다고 너무 피드백을 수용만 하다가는 내 색을 잃어버린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잘하는 것이 중요했다.


  피드백에 따라 작품을 수정을 열심히 했는데, 다시 엎어져서 새로 작업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정답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내 생각이 그나마 정답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옆의 의견을 무시할 수만도 없는 노릇. 이러한 과정은 그림책 작업 막바지까지 물레방아처럼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사실 지금도 이런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추구하는 그림책의 뱡향을 최대한 보존하며 출판사의 피드백을 수용하여 모두가 만족할만한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 내가 그림책작가로서 더 경험이 쌓이면 이 부분에 있어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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