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움직이자.
몸을 움직이자.
고된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야말로 녹초이다. 조명이 너무 밝은 탓에 눈에는 아직도 영업점의 잔상이 아른거린다. 딱 숨 쉬는 것. 그 정도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한다.
1년간 그렇게 지냈다. 평일에는 일밖에 몰랐고,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말도 하기 싫어 그저 이불을 온몸에 칭칭 둘러싸 매고 조명을 모두 끈 채로 정적을 느꼈다. 그저 주말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해가 떠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온 힘을 다해 웃고, 즐기고, 일했다. 그러다 밤이 되어 우울이 나를 집어삼키는 날에는 이불에 파묻힌 채로 그 작은 공간에 의지한 채 엉엉 울기도 했다. 분명 너무너무 원하고 원했던 회사에 왔고, 누가 봐도 적성에 맞다고 말할 만큼 잘 적응했다. 그렇다면 기분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이리도 외롭고, 우울하게 만드는지 근 1년 동안 고민을 했다.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지쳤을 때 거짓말처럼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우울감을 키운다. 생각은 생각을 낳아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런 날은 또 침대 속에 파묻히게 되는 것이다. 딱히 내 리듬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숙경이가 개인 PT 수업을 받자고 꼬셔서 운동을 시작했다. 의욕에 넘쳐 거금을 미리 결제했기 때문에 죽도록 가기 싫은 날에도 갈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 딱 한 시간뿐이지만 헬스장에 가는 날 만큼은 잠들기 전 나를 집어삼킨 우울감이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을 홀린 듯 퇴근 후 헬스장에 출석했다.
딱 6개월. 그 사이 내 몸무게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반복하며 나를 애태웠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보면 사람들은 한 시간은 거뜬히 러닝머신을 타던데, 왜 나는 10분만 뛰어도 숨이 차나 생각했다. '운동을 하러 왔으면 그래도 한 시간은 채우고 가야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래서 꾸역꾸역 러닝머신을 타고 시간이 남으면 스트레칭을 해서라도 시간을 꽉 채우고 갔다. 몸무게에 과하게 신경 쓰는 나에게 트레이너 선생님이 "왜 이렇게 몸무게에 집착해요?"라고 말했다. '그야 예전보다 살찌기 싫으니까요..'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근육은 지방보다 무거워서 당연히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가지만 실제 눈으로 봤을 때는 전보다 지금이 더 나을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쌤의 모습을 보며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이게 효과가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두세 달쯤 흘렀을 때는 '헬스장에 온 것만으로도 절반은 했으니 30분만 유산소하고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정말 운동복을 입고 산책하듯 나가서 딱 30분만 땀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또 어느 날은 다리에 근육이 너무 많이 붙어 터질 것 같았던 바지를 보고 근력운동을 멈추기도 했다. '어제는 한 시간을 했으니 정말 잘했고, 오늘은 삼십 분만 했으니 어제보다는 못했다.' 따위의 생각은 버리게 되었다. 대신에 '어제도 난 헬스장에 갔고, 오늘도 난 헬스장에 갔으니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드라마틱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여전히 술을 좋아하고 음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집착하던 몸무게는 그대로이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해짐을 느낀다.
결국 나는 나에게 머무르던 우울감을 떨쳐낼 방법을 찾았다. '몸을 움직이자.' 쉬는 날이면 집 앞 공원에 나가 햇살을 받으며 조깅을 했고, 퇴근 후에는 더 이상 침대에 누워 숨만 쉬지 않는다. 책 한 권을 들고 출근하여 퇴근길에 해안가 카페에 들러 단 한 줄을 읽더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 후 집에 돌아간다. 잘 쓰지 않아도 좋아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파도에 부서지는 바다를 보기도 한다. 물론, 사람인지라 수많은 고객들 틈에서 바쁘게 시간을 보낸 하루는 여전히 지쳐 쓰러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예전처럼 나를 집어삼켰던 집채만 한 우울감은 아니다.
이렇게 우울감에 휩싸이고 부딪히고 이겨내는 일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결국 멀리멀리 날아가는 동안의 풍파를 이겨내고 내 둥지를 소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련다. 그리고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밥을 먹고, 좋아하는 것들을 한다. 또 몸을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