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연 Oct 22. 2024

아름다워라

인간의, 또한 여성의

존엄조차 알지못하는 억센 덩어리들이

우가우가 험악하게 헤쳐 짓이긴

나의 꽃잎들.

여린 얼의 파편들.

발치에 소담소담 모여있노라.

 

빗방울과 함께 양분이 되어

곱게 꽃물이 든 나의 뿌리여.

비통하리만치 어여쁜 나의 서러움이여.

 

용서하노라, 모두 용서하노라.

사랑해 마지 않는 가엾은 그대 역시 용서하노라.

 

아, 그렇게 나의 꽃은

어제보다 더욱 싱그로워라.

 

아, 나의 꽃은

오늘보다 더욱 달콤하여라.

 

지혜와 인류 보편의 상식,

인권과 생사에 구애받지않는 박애,

희망. 

그 모든 빛을 품고서

아, 나의 꽃은 아름다워라.



많이 아팠을 때 썼던 시.


스트레스로 문장이 와해될 지경에 이르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었을 당시 썼던 시였다. 흉터 많았던 삶을 되돌이키며, 나를 괴롭게 만든, 내 인생의 모든 악랄한 존재들을 기꺼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썼다. 그리고 나의 남은 생을 축복하며 썼다.


병원에 입원한 채 쓴 글이라, 집필 후 담당의에게도 보여줬었다. 간호사들은 물론,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에게도 이 시를 포함, 집필한 시를 몇 편 보여주기도 했었다. 아파 입원한 상태임에도 연필을 놓지 않는 나를 보고 모두 질색을 했지만...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소설을 쓰기가 아무래도 힘이 들어서 시를 주로 썼었는데, 그때 썼던 시를 보면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어, 개인적인 기록물로써는 사실 무척 만족스럽다. 젊은 날의 흔한 우울과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억누를 수 밖에 없는 격렬한 분노와 비릿한 서러움. 한 톨의 감정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고 전부 글감으로 쓸 수 있어서 나는 기쁘다. 앞으로 살며 어떤 일들을 견뎌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더라도, 문학으로, 예술로 승화하여, 삶의 흔적과 영혼의 궤적들을 작품으로 남겨놓을 생각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같은 예술가적 마음가짐은 생애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다. 난폭한 폭풍은 강한 뱃사람, 훌륭한 항해사를 만든다. 삶의 바람이 거세질수록 나는 조금씩 더 유연해진다. 

이전 06화 어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