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시로 알려진 아름다운 성벽 도시 Ostuni
폐허의 아름다움을 지닌 이탈리아 타란토 항구에서 햐얀마을 오스투니를 방문하기 위해 차로 45분 정도 쉬지 않고 달려갔다. 오스투니(Ostuni)는 Puglia에 속한 마을로 3천 년 된 올리브나무가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 데 그래서인지 마을 도착하기 전부터 마을의 주변은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 등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방문자에게 시각적으로 많은 것을 제공해주는 풍경이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하얀 마을이라는 이곳의 별칭을 들으면 마을의 외관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데 이탈리아의 산토리니라는 표현도 할 만큼 처음 들었을 때는 마을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하얀색으로 가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이곳은 마을의 외관과 관련해서 마을 조례로 매년 7월까지 집집마다 하얗게 깔끔하게 외벽 등이 색칠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외벽의 페인트가 벗겨진 부분이나 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아마도 7월 이곳의 여름 성수기가 시작되는 시즌에 맞춰 매년 새롭게 외관을 정비를 하는 차원에서 정한 것 같다.
단순히 외관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마을 전체를 하얗게 단장하는 것이 아닌 사실 이곳이 온통 하얀색으로 색칠을 시작하게 된 사연은 마을의 아름다움을 위한 것과는 상관없이 안타까운 질병을 피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었다.
Ostuni의 겉만 봐서는 이곳은 Trullis 계곡의 포도밭과 Salento 푸른 물의 멋진 전망과 함께하며 우아한 자태를 예전부터 뽐내며 현재까지 그 모습이 이어져 왔을 것 같은데 실상은 이 유명한 "하얀 도시"의 이름이 유래한 데는 중세에 무섭게 번졌던 흑사병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병에 걸려 쓰러져갈 때 그들은 자신이 무슨 병으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병에 걸리자마자 이곳저곳에서 계속 죽어나갔다. 공포가 마을을 뒤덮고 내일은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마을을 비롯해서 유럽이 전체적으로 미래가 안 보이는 상황이 순식간에 돼버렸다. 그런 던 중 우연히 이 지역에 있는 라임이라 불리는 석회가루를 물을 타면 하얀색으로 변하는 데 그 라임으로 외벽을 칠한 집들은 흑사병이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이곳의 마을에 퍼졌다.
이 지역의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살기 위해 석회가루를 집과 마을 전체에 바르고 칠하게 된 데서 하얀 마을이 유래했다고 한다. 최초의 흑사병이 보고된 1348년부터 1350년까지 이 역병은 전 유럽을 휩쓸었고, 전체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어서 작은 마을에 흑사병이 강타하면서 사람들이 집집마다 죽어나갔다. 공포심이 극에 달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오직 신앙에만 자신을 의지하며 라임을 집 전체에 바르고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문 열고 나가기도 두려웠던 당시 마을 사람들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와 하얀 라임을 마을 전체에 칠하는 것뿐이었다.
하루하루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면서 이 마을의 수호성인이었던 성 푸블리오 오론초에게 마을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매일 성당을 찾았다. 이곳 사람들은 역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라임을 집에 계속 더 발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온 집안 전체에 라임을 계속 바르면서 치유를 구하는 100일 기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라임 또는 ‘레체 석재’라고도 불리는 이탈리아 석회암은 부드럽고 가공이 쉬운 돌이었는 데 이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었다. 재료의 특징으로 라임은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 곳곳에 세워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의 건축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주변에 유난히 화려한 성당이 많았는 데 이 석회암을 진흙처럼 쉽게 다룰 수 있어 그만큼 화려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오스투니가 하얀 마을로 유명하다면 이웃 마을 레체는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풍의 화려한 건축물로 유명한 것인데 아마도 이 지역의 라임 석회암으로 지어서 그런 화려만 모습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곳의 수호성인 오론초에게 100일의 기도를 드리며 마을을 온통 하얀색으로 칠한 이후 이 마을은 기적적으로 공포의 역병이 사라졌다. 실제 라임이라는 석회암은 세정제 성분으로 사용될 만큼 세정력이 좋아서 그 구성 성분에 실제 살균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수호성인 오론초는 사도 바울의 사상에 감화되어 이곳에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하여 레체와 오스투니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이었다. 그는 로마시대의 기독교 박해시기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데 마을 사람들은 그의 순교 이후 그를 기리며 마을의 어려운 일에는 그를 찾아서 도와달라고 기도했었다 (출처: 이탈리아 성당 기행, 출판사 시공사 2020년 12월 11일 )
이곳 사람들은 흑사병을 이겨낸 후에 어론초 동상을 세우고 그를 기렸고 해마다 그의 이름을 딴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만약 당시 전염병이 돌던 시절에 내가 이곳에 있었다고 상상해보면 공포에 질린 이곳의 시민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석회암으로 집을 하얗게 바르고 또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기도할 수밖에 없었는지 공감이 된다.
그 당시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하얀 마을 언덕에 서서 하얗게 칠해진 마을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그 애절한 마음이 와닿는다. 흑사명이 돌던 시절에 고통받는 자신의 마음을 달래고 싶었던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성당을 짓고 기도하면서 매일 벌어지는 죽음의 고통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의 3분이 1이 죽어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이 마을은 중세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존하고 멋진 풍경으로 가꾸었으며 언덕에 기다랗게 동그란 모양의 동화 속 세상을 구축하였다.
오스투니(Ostuni)에는 해발 약 250미터의 경사면에 오스투니(Ostuni)와 레체(Lecce) 시의 수호자인 산 토론초(Sant' Oronzo)의 기둥이 구도심의 광장을 지켜보고 마을을 지켜주는 것처럼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흑사병 이후에는 역병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자가 되었는 데 이 기둥은 바로크 양식으로 높이가 약 20미터로 꼭대기에서 구시가지를 바라보며 축복하듯이 서있다. 리베르타 광장(Piazza della Libertà)에 위치한 이 오벨리스크는 그에게 기도한 후 벌어진 흑사병 퇴치의 기적 이후 그를 기리기 위해 오스투니(Ostuni) 조각가 주세페 그레코(Giuseppe Greco)가 헌신과 감사의 마음으로 1771년에 지어졌다.
리베르타 광장(Piazza della Libertà) 양쪽에는 오론초동상과 교회( Chiesa di San Francesco d’Assisi)가 오스투니 메인 광장에 마주 보고 서있다. 동상을 마주 보면서 중심을 잡고 있는 아름다운 교회는 1300 년대에 최초의 지어져서 당시 본당 구조만을 남기고 파사드를 포함한 나머지 건물은 르네상스 스타일등으로 화려하게 계속 변경되었다.
광장 위쪽으로 구 도심을 언덕길로 올라가다 보면 Scoppa 아치가 주교의 궁전과 신학교의 궁전을 연결하고 있다. "Loggia"라고도 알려진 Ostuni 대성당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아치는 베니스 탄식의 다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데 최초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1750년에 스토파 추기경은 석재로 변경을 지시하여 돌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이 변경은 아치의 라틴어 비문에서 기록을 볼 수 있는 데 "원래는 나무다리였습니다. Scoppa 주교는 그것을 사용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덜 위험하도록 벽돌로 지었습니다" 고 쓰여있다.
하얀 마을의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걷는 자체가 힐링이 되는 데 하얀 마을 곳곳에 빼곡하게 예쁘고 알찬 맛집 들로 가득 차 있다. 아기자기한 부티크와 상점으로 가득한 곳에서 구경하고 언덕 꼭대기에서는 탁 트인 전망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의 역사적인 교회들과 역사박물관 고고학 유적지는 걷다가 잠시 쉬는 휴식처로 계속 만날 수 있다.
멋진 풍경과 어우러진 하얀 마을의 아름다움은 이 마을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 이곳 사람들이 기도하며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공포 속에서 마을을 온통 하얗게 칠해야먄 했던 그러므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당시 역병의 환경 속에서 피어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이 이 마을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접하게 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이곳의 언덕에서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며 성당과 집을 오갔던 수백 년 전 이 마을 사람들의 발길을 느끼면서 하얀 마을의 절경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