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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고딕 Jul 31. 2023

알렉산드로스왕이 선물해 준 위로

세상을 지배한 알렉산드로스가 흘린 눈물이 내 삶에 위로를 주다

더 정신 차리고 다른 결정과 선택을 했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일이 있다. 나는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었는 데 내 삶이 참 헛되구나. 그럴듯해 보이지만 형편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무너지는 순간.


나만 기대고 있었을 가엾은 저 쓰러진 어머니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는 못난 딸이고 한없이 죄짓는 바보 같은 딸이었다.


그때 억지를 부려서 엠블런스 안에서 난리라도 치고 어떻게라도 했었다면 어디로든 병원으로 바로 들어갔다면 어머니는 금방 회복되실 분이었는 데  죄책감속에 고개를 들 수도 없는 힘든 죄인이었다.


행복게이지가 0인 상태로 나는 매일매일 안절부절못하며 벌을 받고 있었다. 이미 처치가 많이 늦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라도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다. 만약 다른 처지를 더해서 회복될 수만 있다면 그런 방법을 안다면 내 모든 것을 다 던지고라도 그 방법을 선택하고 싶었던 내 인생의 가장 슬펐던 순간.


그동안 나는 무엇을 쫒으며 살아왔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과 행복은 무엇이었나.

딸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집에 들르라는 어머니의 요청에 나는 바쁘다고 며칠을 뵙지 않고 있었는 데.

결국 나란 인간은 내 인생을 후회로 만드는구나.


어머니가 쓰러진 이후에야 그 어떤  세상의 산해진미보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먹었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몇 가지의 반찬이 내가 세상에서 맛본 가장 맜었었던 음식이었으며 일상의 별 것도 아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순간이 인생의 가장 행복의 순간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얼마나 멍청한 나인가!  일상의 그 지극히 평범한 그 순간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는 것을 나는 참 모르고 살았구나. 나를 사랑해 주는 그 눈빛을 바라보며 험한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었었는 데 그 감사한 마음을 외면하면서 그동안 나는 무엇을 바라고 살았던가.

 

공기와 물처럼 어찌 보면 당연히 나를 위해 항상 있었던 존재의 소중함에 나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왔구나.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자리에 소중한 것이 사라진 후에야 얼마나 내가 소중한 것에 소홀했었는지 깨닫고 슬퍼하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내 모습에 한없는 나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무력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참 인생이란 것이 허무하다. 세상의 끈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이런 상태였나 보다.

세상의 감정들 중에 가장 사람을 힘들게 하는 감정 중의 하나가 아마도 죄책감일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드는 죄책감...


알렉산드로스 대왕 하면 대단한 키워드들의 함께 등장한다. 동서양 문화의 융합, 대제국의 건설 그러나

그러나 나는 그런 위대한 업적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회한의 눈물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단한 업적을 안다고 한들 로마의 카이사르처럼 알렉산더는 어린 나이에 대제국을 이루었는 데 나이도 더 많은 데 제국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비교할 위치도 아니고 제국을 만들 위치도 아닌 나에게 알렉산더는 그저 대단한 인으로 나와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와 다른 그에게도 나에게 퍽이나 공감이 가는 부분은 있었으니 나는 그가 제국을 만든 것은 따라 할 수 없지만 그가 자신의 나약한 모습에 인간적인 눈물을 흘린 부분은 그곳에 나의 모습이 겹쳐 보여 새삼 눈물이 났다. 위대한 저런 사람도 나처럼 스스로의 바보 같은 모습이 견디기 힘들었을까?  


제국을 건설하게 된 알렉산더가 술에 취해 논쟁을 벌이던 중 자신의 화를 누르지 못하고 창으로 찔러 죽인 클레이토스는 검은 피부를 가져 검은 클레이토스로 불리며 알렉산더의 친위대장까지 하며 최측근에서 알렉산더를 보살폈던 인물이었다.  그의 누이는 알렉산더의 유모였었고 클레이토스는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 시절부터 신임받충직한 부하였었다.

 

클레이토스는 알렉산더를 위험한 상황에서 구해내기 까지 자신을 아낌없이 바쳤던 인물로 알렉산더와의 중요한 일화로 유명한 크라이코스 전투에서 곧 죽을 위기에 처한 알렉산더를 페르시아의 군인 스피토리다테스의 팔을 베어  구해내기도 한 우수한 지휘관이자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클레이토스는 자신들의 고향 마케도니아의 풍습을 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그런 면에서 페르시아와 융합정책을 펴는 알렉산드로스와 충돌이 있었다. 그러던 중 알렉산더가 술에 취한 채 클레이트스와 논쟁하는 중에 술에 취한 알렉산드로스는 클레이토스와의 논쟁에 화를 참지 못하고 주변 호위대의 창을 뽑아서 던져 클레이토스의 심장을 관통해 그를 죽이고 만다.


이후 술에서 깬  알렉산더는 자기가 한 행동에 스스로 심한 충격을 받아 며칠간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둔 알렉산드로스는 왕위 계승에 필요한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았는 데 알렉산더가 좋아했던 일리아드 서사시를  통해 용맹한 왕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배웠을 뿐 아니라 삶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머나먼 원정길에서 목숨을 건 승리 이후 전쟁으로 얻은 막대한 전리품에도 알렉산드로스는 큰 욕심을 내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과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으며 그의 이후의 행동들도 물질적인 것보다 그 이상의 중요한 가치를 그가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삶의 고결함을 추구하려고 했었던  알렉산더의 면모를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아리스토텔레스도 알렉산더에게 인생은 많은 굴곡이 있다는 것과  인생의 쓰라린 고통의 순간은 용감하고 지혜로운 자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진 않았었나 보다.  인간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고통의 순간이 자신에게 찾아왔을 때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을 참아내야 하고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는 가르침은 알려주지 않았던 같다.


작은 마케도니아의 왕국의 왕자로 세상의 큰 제국을 만들고 가는 곳바다 승리를  쟁취한 위대한 왕이었던 그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쟁취한  도시 이름을 '알렉산드로스'로 이름 붙이길 좋아하며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를 좋아했다. 그랬던 그가 논란이 많은 그의 죽음의 순간에는 자신의 비문을 남기지 말라고 할 정도였던 것으로 미루어 짐직해 보면 그가 정복지의 도시 이름을 알렉산더로 바꾸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며 뽐내던 그 시절의 알렉산더가  더 이상 아니었다는 것으로 짐작된다. 33살의 이른 나이에 열병으로 쓰러져 이제는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아는 순간에 그는 더 이상은 자랑스러운 알렉산드로스라는 이름을 남기길 원하지 않았으며 최고의 순간을 밝았었던 그의 인생을 뒤로하고 스스로를 후회와 회한의 눈물을 흘렸던 이름 없는 한 사람으로 남기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클레이토스를 죽이는 알렉산더, by 앙드레 카스티뉴 1898–1899


역사적인 사실로 알렉산더 대왕이 죽음 전에 공허함을 느낀 것은 추측할 수 있으나 그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의 상상력이 개입되어 그를 부정확하게 해석할 수도 있음도 인정하니 이 부분에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알렉산드로스를 칭송하며 그의  영광의 유산만 보지 말고 그가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저같이 보잘것없는 사람만 인생의 고통의 순간에 넋 나간 모습으로 고통을 받아들이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참아내고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대한 알렉산드로스대왕도 인생의 고통의 순간은 감내하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보면서 인생의 의미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숙고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같이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내면세계의 변화를 상상해 보며 그의 고통을 생각해 보고 자신의 인생관도 정리해 볼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테네에 남아있는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 문명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유적지


세상 곳곳에 알렉산드로스라는 도시를 수없이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했던 자신만만 한 대 제국의 왕이 32살의 이른 나이에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며 죽음의 순간에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이 그의 내면의 변화의 모습을 이해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알렉산드로스가 비통의 눈물을 흘리는 역사의 한 장면을 이해하는 것은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에게도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저가 알렉산드로스의 고통을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내 내면의 고통도 그를 통해 분산시키고 싶었나  봅니다.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나 같이 사람만 위기의 순간 침착하지 못한 스스로의 멍청하다 싶은 실망스러운 모습에 고통받는 것이 아닌 위대한 사람도 그랬나 보다로 위안을 얻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힘든 내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려 나는 노력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내 정신상태는 황폐해져 가는 것 같았다. 아마도 정신과에서 진단을 받으면 나는 아마도 섣불리 판단하긴 어렵지만 내 상태가 우울증인 것도 같았습니다. 


인생에서 승승장구하다 보면 승자의 저주처럼 인생에서 자만할 수 있고 그러면서 겸손함을 잊어버리기도 쉽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 점령 이후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를 신격화하는 풍습으로 인해 그는 스스로를 신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는 신적인 존재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신적인 존재로서 실수가 있으면 안 되니 자신의 결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없게 되고 잘못은 더욱 인정하기 힘들어지고 행동했으면 그게 옳다고 믿게 해야 되는 상황이 돼버리니 이런 상황이 되면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만약 잘못이 있어도 잘못이 아니고 맞는 것으로 인식시켜야 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신이 아닌 데 남들에게 신처럼 보여야 하니 스트레스도 많았겠죠. 


언제나 승리만 했던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국한 키루스왕의 무덤이 도굴된 장소를 지나가며 키루스 대왕의 비문을 보았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철학과 자신만만하던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있지 않았나 상상해 본다. 역사 기록에는 키루스의 비문에 '지나가는 나그네여 이곳은 페르시아를 건국한 사람이 묻힌 곳이다.  내가 묻힌  작은 땅을 그냥 내버려 두길 바란다.  '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웬일인지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말의 키루스왕의 그 비문을 그리스어로 해석한 글을 받아 들고는 한참을 자리를 뜨질 못하고 그곳을 서성거렸다고 전해지는 데요. 


위대한 페르이사의 건국왕 키루스도 언젠가는 자신이 이룬 페르시아 제국도 무너지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과 무너진 후 자신의 무덤이 초라하게 도굴될 것을 염려한 것처럼 남긴 비문의 글귀에 자신의 미래 모습도 투영되어 보였으리라 추측됩니다. 이때의 선명한 기억으로 이후 알렉산드로스의 실제 죽음의 순간에 그 자신의 이름을 비문을 남기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이 듭니다.   


A map showing the route that Alexander the Great took to conquer: 출처 https://www.worldhistory.org/


클레이토스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이후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헤파이스티온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습니다. 헤파이스티온은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알렉산드로스와 함께 자라며 우정이상의 감정을 나누던 알렉산드로스의 절친한 친구였다. 왕과 함께 자란 모든 친구들 중 가장 친했고 우정과 사람을 나누던 친구였으며 모든 비밀까지도 공유했다고 전해진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와 전쟁 승리 후 페르시아 왕족과의 만남에서 페르시아왕족이 헤파이스티온을 왕으로 잘못 알고 헤파이스티온에게 알렉산더 왕이라 부르며 인사할 때도 헤파이스티온은 또 다른 알렉산더가 맞다고 응수하며 헤파이스티온을 알렉산드로스  왕으로 생각한 것을 잘못이 아닌 것처럼 대응한 것만 봐도 알렉산드로스가 헤파이스티온을 자신의 분신처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었는 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헤파이스티온이나 알렉산드로스는 둘 다 전쟁터가 아닌 전쟁 이후 휴식을 위하는 중에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죽음을 맞는 공통점이 있네요. 


헤파이스티온이 병사했을 때  대왕은 매우 슬퍼하며 헤파이스티온을 신격화하고 헤파이스티온을 치료했던 의사도 죽이고 이성을 잃어버리고 폭력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즈위에 자신의 사랑이 사라져 버렸다고 말하며 매우 슬퍼하였다고 전해지는데요. 


가장 친한 친구였고 연인 같은 , 평생 동안 자신의 모든 경험을 함께하면서 알렉산드로스의 아픔을 공감해 주며 자신을 무한대로 지지해 주었던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으로 인한  알렉산드로스의 상실감은 이후에 대왕의 정신적인 공허함과 삶에 대한 덧없는 마음을 갖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렉산더의 죽음에는 광대한 제국을 이루기 위한 도전으로 수년간의 끊임없는 전쟁이 알렉산드로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빼앗은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고도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에서 죽음직전까지 갔었던 많은 순간이 있었지만 정말 끝이구나 싶은 부상에서도 불사조처럼 매번 일어났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헤파이스티온의 죽음 1년 후 그 자신도 절친한 친구를 따라 죽음을 맞은 것은 모든 희로애락을 나누며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었던 헤파이스티온의 죽음 이후 그의 정신적인 무너짐이 컸던 것이 알렉산드로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영향 요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좋아했던 서사시 일리아드의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숨어 지내다가 절친이었던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트로이의 헥토르를 죽임으로 친구의 죽음을 복수하고 이후 예언처럼 죽어간 것처럼 알렉산드로스도 친구의 죽음 앞에 이성이 완전히 나간 모습을 보이며 가까운 주위 사람들을 해파이스티온의 죽음의 배후에 있었는지 의심하며 무너져갔고, 알렉산드로스 역시 아킬레우스처럼 전쟁의 큰 승리 이후 절친의 친구를 따라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쓰러졌을 때마다 매번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서 사람들이 그는 정말 신의 아들이라 믿게 만들었던 알렉산드로스는 열병으로 쓰러진 후 이제는 일어나질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나이가 고작 32살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에서부터 인도의 펀자브지역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만든 후 부하 병사들의 만류로 원정을 잠시 멈추고 바빌론에 왕궁을 마련하고 휴식을 취한 후 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도 정복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절친 헤파이스티온을 따라 죽음을 맞이합니다.


알렉산더의 유언 중 하나로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더가 바빌론에서 죽어가며 제국을 누구에게 맡길 것이냐는 질문에  알렉산더는 "가장 강한 자에게"라고 대답한 후 "나는 당황스럽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병이 났고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빌론에서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 기록의 의미를 일부 학자들은 그가 자신의 야망을 모두 완수하지 못하고 죽는 것에 대한 좌절감이나 실망감으로 보고 있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저는 다른 견해로 그의 유언의 의미가 그의 야망의 일부로 해석되기보다는 키루스 대왕의 비문을 마주하며 삶의 공허함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 대왕의 심정의 변화의 시작부터 클레이토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에 더해 자신의 분신으로 친구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아끼던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으로 그동안은 매번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며 죽음을 멀게 느끼던 대왕이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즉 알렉산드로스와의 관계에서 그가 사랑받았고 또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교류가 죽음으로 단절되면서 죽음과 인간 존재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삶의 덧없음에 대한 그의 인식이 변화가 드러난 것이라 해석됩니다. 

아테네에 있는 고대유적지와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전쟁의 초기에는 그리스의 발달된 문명을 야만족인 주변국에게 전파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스스로를 신격화하기까지 하며 고귀한 인격을 갖춘 완벽한 존재로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던 알렉산드로스, 정복지에 자리 이름의 도시를 세워 자기 이름을 남기기를 좋아하던 그였지만 죽음 앞에서 그는 이전과는 달리 빈손으로 떠나는 덧없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보였는데요. 


왜 바빌론에서 자신이 죽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는 것은 이제 곧 죽을 것이라는 것만 안다는 그의 고백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위대한 일을 해낸 뛰어난 그가, 스스로도 자신의 남다름과 뛰어남을 알았고 그것을 자랑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신이라고 느낄 정도로 실제로도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이제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그저 인간임을 인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세상을 다 가졌노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바빌론에서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그의 비통한 마음까지도 느껴집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물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기 전의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역사적 기록은 그의 내면의 삶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만을 제공하고 있어 정확하게 기록된 사실만을 가지고는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에 관해 기록된 역사적인 기록들을 살펴볼 때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모습을 보였던 모든 것을 다 가진 지혜의 왕 솔로몬처럼 알렉산드로스 역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르면서는 삶의 의미에 대해 심오한 질문들을 던지며 자신의 내면과 깊이 소통한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알려진 대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였던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인도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새로운 도시를 세우며 세계 문화 교류를 촉진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의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은 카르타고 명장 한니발과  로마의 카이사르 같은 대제국 건설에 도전하던 사람들의 많은 귀감이 되었었지요.  그러나 저는 세계사에 기록된 알렉산드로스의 눈에 보이는 외적인 화려한 경력만을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 명의 인간으로 태어나 디오니소스신을 믿는 어머니의 영향이었는지  스스로 신 제우스의 아들이라 생각하기도 했으며 이집트 정복 후 파라오의 지위에도 오르고 세상을 다스리는 신의 위치까지 경험했던 알렉산드로스, 사람들이 다루기 힘들어 말타기를 포기했던 부케팔로스 명마의 특징을 바로 간파하고 말 앞에 쩔쩔매는 사람들 앞에 보란 듯이 말을 다루며 부케팔로스를 타 보이며 남다른 면을 보여주었던 영특한 그는 아버지 필리포스왕에게도 '아들아 이 마케도니아 왕국이 너에게는 너무 작구나'라는 찬사까지 들었었죠.


그가 죽음을 맞이하면서는 한 명의 인간으로 돌아와 고향 마케도니아를 떠나 그리스를 통일하고 계속되는 전쟁을 치르며 대제국을 이루고 이제 젊은 나이에 바빌론에서 왜 갑자기 죽는지 이유도 모르고 죽음을 맞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우리에게 진정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이전의 그처럼 자신의 위대한 업적만 남은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얘기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죽음 앞에 선 그의 내면의 공허함과 슬픔을 이해해 보기를 바라며 우리 자신의 삶의 방향도 반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 지방에 기원전 311년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고대원형극장


더 넓은 곳으로 목표를 설정하여 자신이 통치할 곳을 찾아가며 세계사에 자신의 이름을 크게 남기길 바랐던 야망의 한 남자가 야만인이 사는 줄 알았던 정복지에서 고도로 발달된 이민족들의 문명을 마주하며 그들의 문명을 존중하는 쪽으로 대왕은 인생의 관점을 바꿔나가면서 그가 통치하는 면적의 크기만 넓혀간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생각과 깊이도 그는 영토와 함께 넓혀나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문화도 그리스문명만큼 깊이가 있으며 그들의 문화도 존중해야겠다는 알렉산더의 생각의 변화와는 달리, 마케도니아의 풍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타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깊이보다 더 컸던  부하병사들과의 의견차이로 갈등이 증폭되면서 정복지의 승리 횟수가 쌇여가면서 알렉산더는 그리스병사에게 느끼는 심리적인 고립감도 점점 커져갔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병사들 중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이민족 융합정책에 반발한 것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예상되는 알렉산드로스 암살시도까지 적발되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는 데요. 전쟁의 승리를 쟁취하던 와중에 이런 혼란한 상황이 벌어지는 분위기에서 일락센드로스가 일생의 위기의 처한 순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달여와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고마운 사람 클레이토스를 일시적인 기분에 거슬린다고 순간적 실수로 창을 던져 죽이고 나서 알렉산드로스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며칠 간을 눈물 흘리며 스스로를 자책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세상살이의  황당한 뉴스에 나오는 것들이 다수가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순간적인 기분에 의해서 많은 잘못들이 저질러지는 숱한 인간사의 모습이 그대로 보입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는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인과응보적인 성격이 있기도 하지만 평범함 인간들도 저지르는 심사숙고하지 못한 잘못된 행동을 위대한 사람들도 하는 모습과 스스로를 자책하며 눈물 흘리며 괴로워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모습에서 신의 아들이라 칭송받던 완벽한 모습의 그도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러놓고 비통해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인간적 연민도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일을 찾아 도전했고 인류사에 대왕이라 불리며 큰 꿈도 성취했던 그가 젊은 나이에 죽음 앞에 서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그의 눈에는 과연 무엇이 보였을까요?


세상의 위대한 일을 찾아 꿈꾸며 자신만만하게 도전했던 그 시기에 작은 수의 병사로도 대군의 페르시아 병사를 크게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뽐내며 말한 대로 그 자신의 공이 제국건설에 가장 컸을 수 있겠지만 그 혼자서 어찌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함께 제국건설을 꿈꾸며 배우고 자란 사랑하던 친구들 그리고 소중한 자신들의 목숨을 알렉산드로스를 위해 내줄 수 있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있었기에 그는 행복할 수 있었고 죽을 고생을 함께 나눈 그들이 함께했기에 대제국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내가 잘난 것도 있지만  그들의 공이 더 컸다고 고백하는 알렉산드로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자만심에 스스로를 뽐내는 모습의 알렉산드로스를 클레이토스가 나무라자 은인이었던 그를 술김에 죽이고 이후 자책하며 방에 틀어박혀서는 클레이토스의 자신을 나무랐던 말들이 맞는 것 같다며 알렉산드로스는 슬퍼했었죠.   


스스로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신을 돌보아 주었었던 클레이스토스 같은 병사들의 신임과 호위를 받을 수 있어 지신은 진정 행복하였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고 클레이토스의 죽음 앞에 알렉산더는 말없이 스스로에게 고백하지 않았을까요.


또 다른 죽음 앞에서 알렉산드로스는 다시 이번에는 더 크게 무너져 내린 것 같습니다.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꿈과 아픔을 진실되게 나눌 수 있었던 친구이자 연인존재로 보였던 헤파이스티온 ,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조차 그 두 명은 두 몸이지만 정신은 한 명이라고 여겼던  헤파이스티온과의 진실된 우정과 사랑이 있어 행복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노라고 나에게 그의 마지막 모습은 다시 얘기하는 듯합니다.  


그렇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잃어버린 지금의 자신은 이제 제국을 이룰 힘이 더 이상 없노라고 세상을 살아나갈 힘이 이제는 없노라고 고백하는 그의 위대한 인생 고백이 들리는 듯하여 나는 숙연해지고 위대하지도 않고 뛰어나지도 않은 평범한 나이지만 그의 고백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저는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과 경쟁사회에 지켜있을 마음이 힘든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이 그의 눈물의 의미를 스스로의 인생에 투영해 보고 자신의 인생에 그가 눈물 흘리며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서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인생에 고단함에 알렉산드로스가 주는 위로를 선물 받기를 원합니다.


가끔 웃기도 하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도 찾으며 살아왔겠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가 너무 경쟁적이고 우리들이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인생길이 젊은 학생이건 또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건 참 고단하고 때로는 참 견디기가 버겁지 않았나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경우뿐만 주위의  소위 꿈을 이룬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진정하 행복의 순간은 꿈을 향해 나가는 순간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고 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순간이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의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꿈을 응원해 주고 함께 웃고 나누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정말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경쟁력의 뛰어나 나 홀로 잘나 최고의 자리에 오늘 어떤 인물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저는 그 사람은 겉으로는 참 성공한 위치에 오른 사람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행복 가지지 못한 반쪽짜리 인생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학생들 중 누군가가 우리 사회의 경쟁상황에서 주변의 친구들을 다 경쟁자로만 혹시 인식하고 있다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저는 인생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으로 남을 누르고 남들보다 먼저 우승자의 트로피를 쥐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남들이 작은 아파트 살 때 비교되게 큰 공간에서 살고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는 것이 우쭐한 감정으로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우승할 수도 있고 반대로 중요한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고  가지고 있는 재능도 많고 운도 좋아 좋은 직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고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 평생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살다 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인생에서 다 가질 수 없다는 가정하에 만약 진정한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믿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부와 명예가 있어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반대로 가난에 약간씩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열심히 정당한 방법으로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주위에 내가 아픈 일이 있을 때 진정으로 함께 눈물 흘려고 아파하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는 사람 중 선택하여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특히 학창 시절은 지식만 쌓는 시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경제적 물질적인 것만 강조해서 아이들을 한쪽으로만 연마시키는 것은 이성과 감성을 다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라면 시험에 강한 아이로 키우기보다는 먼저 세상을 사랑하고 주위 사람들과도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이 강한 아이로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돈의 힘보다는 사랑의 힘을 믿는 아이들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경우뿐만 주위의  소위 꿈을 이룬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진정하 행복의 순간은 꿈을 향해 나가는 순간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고 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순간이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의 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꿈을 응원해 주고 함께 웃고 나누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정말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자신의 경쟁력의 뛰어나 나 홀로 잘나 최고의 자리에 오늘 어떤 인물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저는 그 사람은 겉으로는 참 성공한 위치에 오른 사람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행복 가지지 못한 반쪽짜리 인생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의 학생들 중 누군가가 우리 사회의 경쟁상황에서 주변의 친구들을 다 경쟁자로만 혹시 인식하고 있다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저는 인생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으로 남을 누르고 남들보다 먼저 우승자의 트로피를 쥐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남들이 작은 아파트 살 때 비교되게 큰 공간에서 살고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는 것이 우쭐한 감정으로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우승할 수도 있고 반대로 중요한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고  가지고 있는 재능도 많고 운도 좋아 좋은 직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고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 평생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살다 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인생에서 다 가질 수 없다는 가정하에 만약 진정한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믿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부와 명예가 있어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반대로 가난에 약간씩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열심히 정당한 방법으로 소시민으로 살아가면서 주위에 내가 아픈 일이 있을 때 진정으로 함께 눈물 흘려고 아파하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는 사람 중 선택하여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특히 학창 시절은 지식만 쌓는 시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경제적 물질적인 것만 강조해서 아이들을 한쪽으로만 연마시키는 것은 이성과 감성을 다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라면 시험에 강한 아이로 키우기보다는 먼저 세상을 사랑하고 주위 사람들과도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이 강한 아이로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돈의 힘보다는 사랑의 힘을 믿는 아이들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사에 부대끼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혹시 생각하고 살 겨를도 없어 사는 데로 생각한 삶도 때로는 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왔었는지, 꿈은 꾸며 살았는지 , 꿈을 꾸고 할 만큼의 여유 잡을 새도 없이 현실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는지.


사는 데로 생각한 삶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인생의 방향성을 생각하면서 살아왔는지 스스로에게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알렉산드로스처럼 위대한 사람도 큰 잘못을 하고 자책하는 데 우리의 지금까지의 모습이 그렇게 멋진 모습이 설혹 아니었다고 해도 스스로를 자책하는 대신에 앞으로의 우리의 모습이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알렉산드로스처럼 위대하지도 않은 우리들은 완벽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기에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어려움들을 헤치고 살아온 우리 스스로에게 앞으로 더 잘살아보자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도 함께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봅니다.


저도 평범한 사람이라 바보 같은 일을 해놓고는 자책하며 살기를 반복하는 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통해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도 대책 없이 일 벌이고 자책하며 살았구나 하는 위로가 될 수도 있고 대제국을 이룬 직후 32살의 이른 나이에 알렉산드로스 왕뿐만 아니라 참 많은 경우 자신의 꿈을 이룬 최고점의 시기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 데 끝없이 욕심을 부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삶보다는 주변사람도 돌아보지 못하고 나아가고 있다면 자신의 생활에 속도조절이 필요한 것은 아닌 지 돌아볼 필요도 있지요. 


물질적인 것도 한창 일할 나이에 일부러 놀 필요는 없겠지만 물질적인 목표를 계속 끌어올리기보다는 부의 심리적인 경계선도 어느 정도는 정해두고 어느 정도는 부의 목표 경계선에 가까워지면 이제는 미루지 말고  사회를 위해 나누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남들의 보는 것을 신경 쓰기보다는 마지막 순간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나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그래도 멋지게 살았다 중간중간 힘든 상황에서도 이런저런 노력도 했구나 스스로를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순간적인 기분과 감정에 휘둘려 큰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던 대왕의 모습에서 앞으로의 나는 잘못된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을 깊이 있게 하는 사람이 되기로 원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보다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해보려 합니다.  


그래도 수없이 잘못하는 나약한 모습이 저이기는 하지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저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돕고 사랑하며 살아가려고 더 많이 노력하고자 합니다.  


위대하였지만 그 역시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갔기에 대 제국을 이룬 그의 모습은 나와는 다른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크게 슬퍼하고 괴로워하던 그의 모습은 나의 아픈 모습이 그에게 투영되어 그래서 더 공감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알렉산드로스여 

위대한 당신이 평범한 나 같은 사람처럼 스스로의 잘못에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초라한 제 모습이지만 죄를 짓고 살아가는 듯한 생각에 눌려 있는 아픈 제 마음에 당신의 눈물로 위로를 받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언제 떠날지 저는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만 이 세상 사는 동안 사람들을 진정하고 사랑하고 돌보며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일상을 만들려 노력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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