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않았다
여자에게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와도 같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던 중, ‘한약 다이어트’를 직접 체험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과거의 나처럼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진솔한 경험이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다.
체험을 하는 날, 나는 일부러 남편과 함께 한의원으로 향했다. 담당자에게 미리 허락을 받고, 남편의 도움을 받아 정성껏 사진을 찍었다. 내 몸의 변화를 꼼꼼히 기록하고, 솔직한 후기를 블로그에 옮겼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시간이, 곧 내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상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의 퇴근길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것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의식과도 같았다. “엄마, 나 퇴근해.” 나의 이 한마디를,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처럼 기다리셨다. 저녁 반찬은 무엇을 할 건지, 텔레비전에서 어떤 재미있는 것을 보았는지, 내가 전화를 하면 들려주기 위해 하루의 소소한 일들을 머릿속에 준비해 두셨던 것 같았다.
그날도 나는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여느 때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내일 또 통화하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제까지도 생생하게 목소리를 들었던 엄마가, 오늘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장례식장에는 하얀 국화와 향 냄새가 가득했고, 나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때, 잠시 조문객이 뜸한 틈을 타 무심코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 순간, 내 휴대폰 화면 위로 짧고 차가운 문장 하나가 날아와 박혔다.
“귀하의 게시물에 대해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나는 그 의미를 한참 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공간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문장을 마주했다. 신고라니. 누가, 왜, 무엇을?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이미 하얗게 비어버린 머릿속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었고, 특정 제품을 홍보하거나 그 효능을 단정적으로 말한 적도 없었다. 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왜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엄마의 장례를 모두 치르고 텅 빈 집에 돌아와서야, 나는 비로소 그 차가운 문장의 의미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혼란 속에서 이유를 찾던 끝에, 나는 거대한 벽과 마주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글이 ‘의료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순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체험할 기회를 줄 때,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규칙에 대해 미리 한마디만 알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들에게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것이 세상의 ‘법’이었다. 나의 순수한 열정은, 법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벽이 있는 줄도 모르고, 좋은 마음만 믿고 신나게 달려가 정면으로 부딪힌 어린아이 같았다.
아팠고, 억울했고, 무엇보다 나의 무지함이 사무치게 부끄러웠다. 진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상의 규칙을 먼저 배우지 않으면, 세상을 향해 열었던 내 창문은 언제든 깨져버릴 수 있는 위태로운 유리창에 불과했다. 나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 서글픈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는 그 글 하나에서 끝나지 않았다. 하나의 신고는 무서운 연쇄 파동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100개가 넘는 내 글들이 제재를 받았다. 건강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글은 모조리 빗장이 걸렸다. 나의 기쁨이자 위로의 원천이었던 모든 기록이 한순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웠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오늘은 또 어떤 글에 제재 알림이 도착했을까, 확인하는 순간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의 분신 같았던 글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모습을, 나는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에는 나와 비슷한 수많은 다이어트 후기 글들이 넘쳐나는데, 왜 하필 나였을까. 억울한 마음에 밤새워 관련 법규를 찾아보았다. ‘10kg 감량 성공!’ 같은 표현이 의료 효과를 보장하는 과장 광고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는 것과, 의학적 효과를 단정 짓는 말 사이에는 아주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있었다.
나는 그 경계선을 몰랐던 것이다. 몰랐다는 말이, 결코 변명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아픈 경험을 통해, 나는 내 글에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