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라앉기와 떠오르기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나면, 계속해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거창하게가 아니라, 게임을 한 판 두 판 깨 나가듯이. 자잘한 목표나 취미, 관심을 쏟을 만한 사람, 눈앞의 일, 무엇이든. 끊임없이 이 지루함과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불안함과 싸워야 한다. 의미없다 부질없다 속삭이는 목소리를 더 큰 소음으로 파묻어 버려야 한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잠시만 방심하면 삶은 금세 시들하고 지긋지긋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들이고 가족을 만들게 되는 걸까. 이 끝없는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서, 내 안으로만 침잠하는 생각들을 부수고 어떤 디테일을 만들기 위해서. 으레 사람들이 거쳐가는 생의 과정이란 건 이러나저러나 이유가 있는 것이었나.
고요한 일상의 틈을 비집고 우울은 느닷없이 온다. 이런 잦은 방문을 보면, 내 우울은 엿처럼 찐득하고 눅진한 게 아니라 홀씨만큼 가볍고 유연한 생물인 것 같다.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기습적으로 내려앉는 것과 오래 녹고 들러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지만 떼어내면 그만인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지는 모르겠다.
침잠은 표면적인 것과 멀어지므로 필연적으로 깊이를 얻는다. 그런데 동시에 무게도 얻는다. 내가 무게를 느낄 때를 곰곰이 따져보면, 거기에는 늘 지나친 자애와 자만이 숨어 있었다. 나를 크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우울해지는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나의 느낌이나 존재를 스스로 부풀리고 싶어 하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체스터튼은 <정통>에서 그러한 무게의 해악을 설명하며, “자신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라앉지” 말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쾌활함 쪽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함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 (중략) 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여기에서 방점은 ‘기꺼이’라는 말 위에 찍혀야 할 것이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무게에 지지 않은 채 깊이를 획득하는 일은 그렇게 해서 가능해지지 않을까. - 한정원 <시와 산책 - 회색의 힘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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