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의 기로에서

존재 자체의 소중함.

by 솜사탕수박라떼

며칠동안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혈뇨가 나오고 도통 못먹는 솜이를 안고 동생과 엄마는 24시간 하는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워낙 크게 잔병치레 없고 잘 먹는 솜이라서

방광염이려나 했는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염증수치는 정상에서 20배나 넘고 백혈구 적혈구는 다 깨져 있단다.

솜이 몸속에서 자신의 적혈구를 병원균으로 인식하고 적혈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인 불명의 면역 매개성 용혈성 빈혈.

아무리 들여다 봐도 알 수 없는 문자와 수치들이 화면에 가득했다.

위험하다고 알려주는 빨간색 글씨들이 솜이가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솜이가 건강한 피를 만드는것 보다 적혈구가 파괴되는 속도가 훨씬 빨랐고 염증수치도 쉬이 내려가지 않았다.



다음날.

나와 동생은 면회 가능한 시간에 의사를 만나서 솜이의 상태에 대해서 들으면서

혹시나 솜이가 외롭게 떠날까봐 데려가겠다고 하였다.


"내일 필요하면 수혈까지 해야 할 것 같은데, 내일까지 조금 더 지켜 보시는 건 어떨까요?"

"저희 아이가 버틸 수 있을까요?"

"지금 완전히 정신을 잃거나 한 상태는 아니니까 내일까지는 좀 지켜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조용하고 담담히 이야기해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동생하고 하루만 더 기다려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뒤, 낯선 병원에서 하루를 보낸 솜이를 만날 수 있었다.

기운이 없는채로 하얀팔에 여러 장비를 꽂고있는 솜이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왜그래 왜 벌써가려그래. 누나는 너한테 해준게 아무것도 없는데 니가 벌써 가려고하면 어떻해. 너는 나에게 우주를 다 주었는데 난 아무것도 못해줬잖아. 누나 이 죄 값을 다 어떻게 치르니.'

언젠가는 마주할 일인걸 알았지만, 아직 10살이 안되었기에 조금만 마음의 준비는 미루자 미루자 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상상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희박한 가능성' 이라는 말에 우리는 아무말도 못하고 기력이 없는 솜이만 바라보며 울었다.

짧은 면회 후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낯선 병원이 무서울지, 워낙 예민한 아이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클지

물도 못삼키고 잠도 못잘 솜이 생각을 하면서 온몸에 수분이 마르는 것 같았다.


올해 나를 집어 삼키고 있는 불행들이 꼭 솜이까지 아프게 한 것 같았다.

'내 모든 것을 내려 놓은 것도 모자라서 왜 솜이까지. 정말 하늘이 날 시험하는 걸까.'

작년부터 나의 불행은 휘 몰아치듯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솜이의 원인불명의 병이 내 불행이 전염되어서 걸린 것 같았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솜이와 가족을위해 내가 할 수 있는건 뭘까 고민을 하다가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검색했다. 검색을 해 놓고 사이트를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한번 파보로 반려냥이를 하늘 나라에 보낸적이 있다.

보호소에서 데리고 왔을때, 아이는 이미 파보에 걸려있었고.

며칠뒤에 기력이 없어 병원을 찾았을 때

그 치명적인 병에 대해 듣고 말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편은 "사탕이가 병원가면서도 차에서 열심히 울고 놀았어. 사탕이라면 이겨낼 수 있을거야."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던 남편은 내가 얼마나 속상해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에 내가 병원에 달려갔을 땐.

그 작은 몸이 온기없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미동도 없는 숨소리도 없는 아이를 상자에 담아 나오면서 세상 처음 느껴보는 슬픔을 느꼈다. 딱 4일이었다. 그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근데 우리집에 온 그 순간부터 이 아이는 내 마음에 큰집을 지어 놓았더라.

한여름이라 아이의 몸이 망가질까 가까운 장례식장을 찾아서 장례를 치뤄주었다.


솜이와 가족이 된 것은 3000일 남짓.

내가 내 스스로 만든 첫 가족이었다. 외로운 내 삶에 활력소가 되어주었고 솜이 덕분에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걸 처음 느꼈다. 차에서 똥을 싸도 귀여웠고 내 다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자는게 매력포인트 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잘 보내주는 것 뿐인걸까. 기적을 기대하기에는 요즘 나는 모든일에 끝을 보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기적을 바라면 더 큰 불행이 올것 같았다. 혹시나 새벽에 병원에서 연락이 올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바싹바싹 입술이타고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애가 창백하고 아무것도 안먹는데, 오후에 필요하면 검사하고 수혈해야 한대. 소변 색은 좀 좋아졌대.'

동생의 문자에 속이 상하면서도 긴 밤을 버텨준 솜이가 고마웠다.


그날 오후, 면회시간에 맞춰 면회를 갔고 적혈구 수치는 아직 좋지 않지만 의사는 염증수치가 그래도 많이 떨어졌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아이가 열심히 회복하려고 노력 중인것 같다며 새 피를 만들려고 몸에서 애쓰는게 수치상 보인다고 하였다.

솜이는 어제보다 조금 상태가 나아 보였다. 북어채가 올라간 처방식을 조금 덜어 입 앞에 줬더니 조금씩 먹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열심히 긁어서 목카라에 불편한 솜이 입앞에 열심히 먹을것을 옮겼다. 아이는 우리를 안심 시키려는 듯 한그릇을 다 먹고 트름을 했다. 솜이 입에 먹을거 들어가는거 보는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데 세상 이걸 몰랐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솜이는 함께 집에 오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렇게 숨을 헉헉 대면서도 이름을 불러주니 웃어주었다.


적혈구 수치는 크게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염증수치가 반으로 줄어서 그런지 솜이는 전날보다 기력이 있었다.

'그래 솜아. 느려도 괜찮으니까 조금만 힘내줘.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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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솜이가 저렇게 애쓰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있으면 안돼지. 내가 뭐라도 해야해. 열심히 해야지. 맛있는 간식도 사주고 같이 좋은곳에 산책도 다니려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돼.'

집에 돌아오자마자 무너졌던 마음을 다시 세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정리했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계속된 실패에 며칠 주저 앉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어두운 구덩이에서 나를 꺼낸건 솜이었다.

나는 할일 목록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적어가며 마음을 다 잡았다.


다음날.

"솜이 오늘 퇴원해도 된대!!"

"정말이야?"


기적이 일어났다.

완벽한 수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솜이의 몸이 좀 더 힘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새 빨간 글씨로 수치로 가득했던 화면들이 이제 잠잠한 까만색으로 쓰여 있었다.

물론 완치도 아니고 완벽한 수치도 아니었다. 하지만 몸의 회복속도가 적혈구 파괴속도보다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고 하였다.

"흔하지 않은 일인데 아이가 정말 애쓰고 있나봐요."

의사 선생님께 처방받은 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다시 대기실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솜이의 퇴원을 기다렸다.

그 사이 응급 처치실에서 한 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 박스에 누워있는 채로 나왔다.

보호자의 얼굴을 보니 울컥했다.

우리 아이랑 함께 집에 가게되어 너무 행복했지만 딱 그저께 내 얼굴이었다.

그 생과 사의 기로에서 너무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일상이 행복인 걸.

불행이 다가온 뒤에야 안다.

무엇을 해서 무엇을 가져서가 아니라

너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고 감사라는걸.

생과 사가 갈라지는 그 대기실에서 다시 한번 존재자체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고마워. 같이 집에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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