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지순

세상에 이 단어를 느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by 솜사탕수박라떼

나는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어렸을 때 부터 팍팍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면서 내가 깨달은 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신기할만큼 나는 이날 이때까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을 만난적이 없다.

나의 가시같은 민낯을 묵묵히 지켜주는 건 보살같은 친구들 뿐이었다.

아르바이트 한 돈을 안주려고 작정하는 덤비는 원장도 만나봤고,

나를 바보취급하면서 쥐고 흔들려는 중소기업 사장도 만나봤다.

이상하게 다른 도시에 터미널에 내리면 꼭 터미널 앞 횡단보도에서 도를 아시냐고 묻는 사람을 만난다.


어쩌면 다행이고 어쩌면 불행이건

나에게 이유없이 베푸는 호의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들에게 호구가 되지 않았다. 이런 기억이 하나둘씩 쌓일수록 마음이 씁쓸하다. 티브이에서는 '세상 아직 살만하다'는데 난 꼭 동화 속 이야기 같다.


퇴원을 했던 솜이는 다시 응급 처치실로 들어갔고 수혈까지 받으면서 생사를 넘나 들었다. 매일 가족들과 면회를 가서 얼굴을보고 마음속에 남겨두었던 말들을 했다.

그러다 하루 식구들 모두 일이 생겨서 혼자 면회를 간날이 있었다.

수치는 왔다갔다하고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위장간 출혈이 생겨 혈변이 나온다고 했다. 하나의 수치가 좋아지면 또 하나의 수치가 나빠졌다. 무거운 마음으로 짧게 의사와 면담을 하고 나와서 솜이 면회를 했다.


솜이는 넥카라가 불편해 병실에서 물을 못마셔 갈증이 많이 났는지 내가 주는 물을 허겁지겁 마시고 난 뒤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한참을 솜이를 안고 솜이 눈을 바라보았다. 솜이의 까만 눈 속에 내가 어려있었다. 솜이의 눈을 바라보니 우리의 처음 만난 날부터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나를 반겨주었고, 안겨 주었고 이 방에 가도 쫄레쫄레, 화장실 가도 쫄레쫄레, 산책가면 나를 향해 뚱땅뚱땅 달려오는 아이를 보며 세상 더 없이 맑은 사랑을 느꼈다. 태양를 바라보는 해바라기 처럼 더없이 순수한 마음을 무엇에 비유해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지고지순한 사랑을 사람에게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솜이 사탕이, 수박이, 라떼는 항상 나에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사랑을 주고 있다.

인간의 사랑이 이 아이들의 사랑만큼 순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참 나를 바라보던 솜이는 고단했는지 품에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솜이를 토닥이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귀중한 마음을 받았는데, 나도 너희에게 이 마음을 전달 할 수 있는걸까? 사람이 어떻게 해야 지고지순한건지 보고 듣고 배우지 못한 내가, 너희들에게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단 한순간이라도 너희에게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방법을 배울 때까지 내 옆에 함께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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