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어색한 나에게
10대부터 20대까지 나는 매우 날카로웠다.
마음 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수능이 끝나면서 부터는 닥치는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종종 고등학교 친구들과 서울에서 한번씩 만남이 있었지만 나는 주말 알바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그 때는 싸이월드가 한창인 때라 친구들이 만나서 뭘했는지 올려놓은 사진을 뒤 늦게 보면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과 주말에 쉴수 있는 친구들의 주말이 부러웠다.
아빠에게 모진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라서 인지 나는 눈치를 많이 봤다. 눈치를 많이 보니 눈치가 빠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20대에 만든 친구가 거의 없다. 머리가 다 커서 만나는 인간관계는 정말 쉽지 않았다. 주변에 순수한 사람이 없더라. 나한테 잘해주면 다 뭔가 이유가 있거나 목적이 있는거 였고,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더 많았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 인사 하는것,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
그 모든 것이 어려웠다.
사람을 믿고 편하게 이야기 할 수 가 없었다고나 할까?
나는 당시에 술도 마시지 않았고 이렇게 속이 뻔하게 들여다 보이는 인간관계에 신물이나서 정말 내가 해야되는 일에만 신경썼다. 그리고 어쩌다 참여한 활동에서 이건 아니다 싶은 상황이 있으면 돌려 이야기 하지 않았다. 욕이 섞인 상스러운 말들이 아니라 지금 생각하면 팩폭이라고 해야하나? 그래서 우리과에서 내 별명은 독설가였다.
나이가 많고 적고 뭐 그런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관계와 소통에 크게 연연하지 않다보니 괜히 힘약한 여자후배들에게 화풀이하는 남자선배들에게도 엄한데다가 화풀이 하지말라고 조근조근 말로 씹어주었다. 3년간의 회사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고향으로 내려오면서도 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낯선사람하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건 나에게 엄청난 도전이었고, 그 어색함을 견뎌내는 방법도 몰랐고, 굳이 어색함을 깨기위해 노력할 생각도 없었다.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가 나한테 원하고 바라는게 있으면 먼저 움직인다는게 나의 진리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까맣고 맑은 눈의 솜이를 만났다.
처음 같이 집에 와서 너무 작고 예뻐서 만지기도 겁이났다.
당장이라도 같이 나가 산책을 하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백신 접종이 다 끝나는 3개월 이후에 산책을 시작하라고 하였다. 그 사이 솜이는 집을 똥파티로 만들어 놓고 깨발랄하게 누워 있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조금씩 배변패드에 배변을 시작하고 내 손가락을 슬쩍슬쩍 깨물며 이가 간지럽다고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드디어 백신 접종이 끝난 며칠 후
날씨가 아주 좋은 일요일 낮에 솜이와 첫 산책을 시작하였다.
내가 사는 곳 가까운곳에 강변공원이 있는데 품에 꼭 안고가다가 솜이를 산책로에 내려 놓았다.
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보고 갸우뚱 거리다가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중에 하나다.
노란색 하네스를 가장 작게 줄였는데도 아가가 엄마옷을 입은듯 조금 컸고,
하얀털이 보송보송해서 검은 눈과 코가 더 빛이났다.
지나가는 아저씨들이 고개를 돌려 솜이를 바라보며
"아이고, 증말 이뿌게 생겼네."
자연스럽게 어깨가 올라갔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 산책하는 날이에요."
"아이구 꼬맹이한테 아주 의미있는 날이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처음 본 아저씨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하교 해야 나는 수업이 가능 했기에
출근전에 매일 솜이와 산책을 했다.
어디가 산책하기 좋은가 보다보니.
반려견들이 많이 모이는 산책 맛집 공원을 알게 되었고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솜이는 호기심이 많았고 다른 친구들을 만나면 폴짝거리면서 뛰어가서 냄새를 맡았다.
신난 솜이를 따라가며 처음에는 인사를 하는 멍멍이 가족과 멋쩍고 어색하게 서있었지만
하루, 이틀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니
이름도 알게 되고, 나이도 알게 되고, 간식도 같이 나누어 먹게 되었다.
사람을 대하는게 가장 숙제였던 나였지만
그 곳에서는 어색함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사모예드 모찌는 매일 헉헉대서 "아이고 넌 참 덥겠다. 어떻게 여름을 나니. 물 좀 마셔"
어떤 건물에서 기르던 곰탱이는 성격이 좋아서 덩치가 한참 작은 솜이가 멍멍 짓어도 가만히 기다려 주었고
"곰탱이는 성격이 진짜 좋네요. 아무래도 전생에 선비 였던거 같아요."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니
이 친구 가족들의 표정을 읽게 되고 아이의 감정도 와 닿았다.
그래서 처음 만나도 낯설지 않았고
쉽게 웃으면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나이가 들었나? 가끔 내가 이렇게 붙임성이 좋았나? 싶었지만
내 삶의 중심축이 생기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니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때 알았던 것 같다.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면 수다 쟁이가 되고,
사랑하는 존재가 같으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겉돌 수 밖에 없던 것은 공통된 애정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의 아빠도 날 욕하는데 누가 날 좋아 하겠어.
좋은 학교도 못갔는데 누가 날 거들떠 보겠어.
돈도 없는데 누가 날 반기겠어.
애정과 정에 굶주렸던 나에게 솜이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고,
나를 충분히 괜찮은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아이는 나를 통해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내 이름은 솜이누나, 솜솜.
이젠 솜이 없는 삶을 상상 할 수가 없다.
너를 통해 나의 세상을 다시 밝게 칠한 것 처럼 나도 너의 우주에 행복만 가득 심어주고 싶다.
아프지마. 난 아직 너와 하고 싶은게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