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신가요?
나는 입학할 때 국민학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1학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라는 질문 이었다. 이순신 장군부터 세종대왕까지 친구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인물들을 이야기 하면서 본인도 그와같이 멋진 사람이 될거라고 했다.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아빠를 제일 존경해요." 배싹 마른몸에 큰 키, 까맣고 또렷한 이목구비. 애정표현이란건 없고 무뚝뚝한 성격에 티비와 라디오 커다란 전축을 고치는 멋진 기술자.
어린 나이였지만 무언가 조금 슬퍼보이는 눈에 이유가 있는것 같았고, 가게에 딸려있는 단칸방에 살 때라서 항상 납땜을 하며 일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살갑게 말을 하는 적이 없었지만 거짓말하는걸 본 적이 없었고,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빠를 두고 하는 이야기하고 생각했다.
친가 식구들이 아빠는 공부를 꽤 잘했다고 했다. 근데 막내 아들로 태어나서 할머니가 공부를 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때는 장남만 공부를 시키던 시절이니 할머니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아빠 재능이 안깝다라는 생각을 했다. 1등도 했다고 들었는데 그 꿈많았을 10대 아이가 원하는 공부를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해 야간으로 전기를 배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시골에서 혼자 올라와 전기를 배우며 떠돌다 이곳에서 중매로 엄마를 만나면서 자리를 잡았다. 아빠는 어릴 때 할아버지가 안계셨다고 했다. 엄마도 할아버지를 뵌적이 없다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집을 떠났고 이곳저곳으로 흘러 다니며 사신 것 같았다. 남편도 없이 애 일곱을 키우려니 아빠를 공부 못시킨 할머니 입장도 이해가 간다.
나는 분명히 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를 아들처럼 바라봤던거 같다.
어딘가 짠하고, 뭐라도 더 해주고싶고.
먹고싶은거 갖고 싶은거 하고싶은게 너무 많았지만.
그걸 못해주는 아빠 마음은 더 슬플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나만 아는 아빠 이야기가 있다.
내가 7살이 되던 해.
아빠는 나를 가게 문지방에 앉혀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만약에 아빠가 없으면 니가 엄마를 지켜줘야해. 니가 맏이고 언니잖아. 세상에 엄마를 챙겨주고 집을 돌볼 수 있는건 너 밖에 없어. 그러니까 혹시라도 아빠가 없어도 엄마를 잘 챙겨서 집안을 잘 돌봐야 해."
나는 아빠에게 슬픈 이야기 하지 말라며, 아빠가 왜 없냐고 그런이야기 하지 말라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같은면 부모가 금쪽이에 나올 가스라이팅이었지만, 항상 몸이 약해서 자주 아픈 아빠가 엄마와 우리를 많이 사랑해서 그랬다고 생각을 했다.
아빠가 39살이 되던 해.
아빠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알콜중독이었다.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었고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옛날에 어떤 용한 무당이 아빠한테 그랬단다.
'넌 39살에 죽을 팔자라고.'
아빠는 그 전까지는 정신을 어떻게든 부여 잡고 사는 듯 했지만 39살이 되던해에 자기의 인생이 진짜 끝난것 처럼 술을 마시고 살면서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숨막혔던 현실들에 대한 화풀이를 가족들에게 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툭하면 공구를 뾰족하게 갈면서 우리는 다 죽인다고 했고
가게에 석유를 뿌리기도 했다.
아마 세상에서 모든 육두문자는 다 들었던 것 같다.
아빠의 칼부림에 집을 뛰쳐 나오기 일쑤였고, 밝고 흥많던 나는 점점 마음의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험 전날 아빠가 난리를 피우는 통에 교복하고 책만 간신히 가지고 나온 나는 친구집에 새벽에 들어가 울면서 공부를 했고 첫차를 타고 학교에 나왔다.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빠의 욕설과 협박에 나는 168에 42킬로까지 살이 빠져서 의자에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건강을 되찾아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소화를 제대로 시킬수가 없었고 신경계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날은 저녁 7시에 회계원리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걸음을 재촉해 시험을 보러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빠였다. 심장이 요동쳤다.
내가 전화를 안받으면 엄마를 더 괴롭힐 것 같아 전화를 받았다.
"야 너도 아파보니까 어떠냐? xx년아. 넌 더 아파야 해. 그래야지 내 고통을 알지."
나는 그 사람많던 거리에서 한참을 서서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그리고 살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더 이상은 안되겠어. 난 이제 아빠랑은 만나지 않을래.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절대 안된다고 아빠를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하던 엄마는
내가 뼛가죽만 남은 꼴을 본 뒤여서 그런지
"알았어. 그렇게 해." 라고 짧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10년뒤.
나는 아빠를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돌아가시고 나서 나 혼자 산소에 선뜻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사람에 치이고 일이 마음대로 안되는 날 그래 아빠도 힘들었겠다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몇개 되지 않았지만 아주 어렸을 때 나에게 만들어 준 그 찰나의 시간들은 내 맘속에 욕설보다 오래 그리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더라.
올해 아빠 생신날. 처음으로 혼자 소주 한병을 들고 산소에 갔다.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게요. 아빠도 거기서 아프지 말아요."
너무 오래전 기억이지만.
아빠는 나에게 닿을 수 없는 짝사랑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늦었지만 내가 아빠 당신을 얼마나 태산처럼 여겼는지, 얼마나 존경했는지는 말씀 드리고 싶다.
"잘 지내시죠? 그 곳에서는 건강히 아프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