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의 책장 지기입니다. 내일이 3월의 시작입니다. 강남 갔던 제비가 오는 음력 3월 3일 삼짇날은 아직 멀었지만, 따뜻한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시작을 앞두고, 어느덧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의 마지막 장을 맞이했습니다. 처음 연재 브런치를 기획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글을 발행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워 머뭇거렸습니다. 머뭇거림 앞에 마크 트웨인의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어느 날 당신이 시작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지요. 11월 9일 첫 글을 발행하고, 어느덧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어 마지막 장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으로 시작한 글의 마지막은 찬란하게 빛나는 ‘우리’로 정했습니다. 마지막 글이어서 그럴까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집니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 헤이즐럿 라테를 준비해서 한 모금 마십니다. 달달한 당분이 들어가니 충전이 되었습니다. 충전된 몸과 마음으로 책장의 마지막 장을 펼치겠습니다.
순지(純紙) 같은 사람을 생각한다.
구수하게 푸짐한 인간성
그런 사람이 쉽사리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어리숙한 나무를 생각한다.
나무는 다 어리숙하지만
하다 못해 넉넉한 신발을 생각한다.
발이 죄이지 않는
편안한 신발도 쉽지 않지만
큼직한 그릇을 생각한다.
아무렇게나 주물러
소박하게 구워낸
그런 그릇은 쓸모없지만
순지를 생각한다.
순지로
안을 바른
은근하게 내명(內明)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쉽지 않지만
말오줌 냄새 찌릿한
투박하고 푸짐한
한국의 순지.
-박목월, ‘순지’
구수하게 푸짐한 인간성, 큼직한 그릇, 은근하게 안이 밝은 사람. 바로 우리입니다. 책장 지기는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는 것이 싫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바뀐 나이를 적용하고, 생일을 따지면서 한 살이라도 줄이려고 안달입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서, 지금 이 나이여서 좋은 것도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힘든 인간관계로 스스로 초라함을 수도 없이 많이 느꼈습니다. 그 초라함 앞에서 스스로를 얼마나 책망했는지 모릅니다. 초라함을 감추고자 진한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으로 치장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당신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다른 이의 삶을 살면서 낭비하지 말라.’라는 말을 철저히 무시하면서 타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조금은 ‘나’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오늘을 살아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덜 하고 있습니다. 50살이 괜히 지천명(地天命)이 아닌가 봅니다. 아직 하늘의 뜻을 안다고 말하기에는 섣부르지만, 그래도 조금은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지금의 나이가 좋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지요? 책장 지기의 욕심도 한이 없습니다. 앞으로 계속 나이를 먹어 이순(耳順), 종심(從心), 산수(傘壽)가 될지언정 육체는 더 이상 늙지 않기를 소망하니 말이지요. 저는 진시황처럼 불멸의 삶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육체는 더 이상 늙지 않고, 수명이 다하는 그날 편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미래를 소망합니다. 이과형 독자가 읽으시면 한도 없이 비웃겠지만 말이지요.
‘나이’ 얘기를 하다 보니 김혜자 배우님이 생각납니다. 김혜자 배우님이 순지 같은 사람일까요? 김혜자 배우님은 참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장 지기는 ‘눈이 부시게’ 드라마를 깔깔 웃으면서 보다 마지막 부분에서 펑펑 울면서 보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이 너무 아려 한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런 김혜자 배우님이 백상에서 TV부문 대상을 수상하셨지요. 그때 드라마 대사를 인용한 수상 소감은 그분의 아름다운 삶을 투영한 진심이어서 더욱 큰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내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콤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백상, 김혜자 수상 소감
우리의 삶이 때론 불행하고 힘들 수 있습니다. 때론 행복감에 들뜰 때도 있겠지요. 그 모든 순간에 여러분께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시길 저도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그동안 ‘시가 흐르는 철학 카페’ 브런치북에 ‘like it’ 해주시고, 책장 지기 글에 ‘like it’을 눌러주신 수많은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러분의 인생이 앞으로도 한없이 찬란하게 빛나시길 바라면서 마지막 책장을 닫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