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우울증으로 입원했던 한 환자가 있었습니다. 우울, 허무감, 살고 싶지 않다는 감정으로 나락에 내몰려 있는 환자였습니다. 그날도 자신의 끝없는 우울감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우울감을 겪으면서 이미 본인의 감정에 대해 파고들고 고심하여 정교하게 다듬어진 말로 내뱉어지고 있었습니다. 변화무쌍하고 형태를 알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것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아파했을까, 그 이후엔 또 얼마나 많은 심리상담가나 정신과 의료진을 만나서 본인의 이야기를 반복했을까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 환자와 나눈 많은 대화 중에서 한 문장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잖아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나면 빛이 보일 것이다. 터널은 지나갈 것이라고. 그래서 꾹 참고 걸었어요. 그런데 여긴 터널이 아니라 동굴이었어요.”
오랜 우울감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아마 깊이 공감되는 말일 것입니다. 몇 달 지나면 나아지겠지, 지금보다는 낫겠지, 작게나마 희망해 보았다가 그 작은 기대마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앞으로도 조금도 아니 절대로 나아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미 떨어진 구렁텅이가 너무 깊어서 남은 평생을 올라가 본데도 남들이 그저 쉽게 서 있는 그 땅조차 밟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다만, 진짜 ‘나올 수 없는 곳이기에’ 나올 수 없을 것이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나올 수 없을 것이라 느껴지는 것’ 이 지금 상태에서 당연하다는 것은 알고 계셔야 합니다.
‘나는 못 나을 거야, 나는 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라고 느껴지는 것이
수많은 우울증 환자분들이 똑같이 느꼈던 ‘증상’이라는 것을요.
(앞서 나왔던 이야기들이 내 얘기인 것처럼 공감이 간다면, 그만큼 저에게 이러한 감정을 표현한 분들이 매우 많았다는 것 또한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그저 함께 있으며
그 옆에서 같이 걸었습니다.
그곳이 터널이든 동굴이든 구렁텅이든 상관없습니다.
여기가 동굴인지, 생각보다 긴 터널인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나와보기 전까지는요.
구렁텅이를 확 벗어날 만한 능력이 갑자기 한 번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이런 식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