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으면 안 돼요?

가장 많이 들은 질문

by 이름다움
한 지인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부고를 듣게 되었다.
그 부고 문자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부럽다’였다.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면서 ‘부럽기만 한데 그래도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야겠지?’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역시 고장 난 걸까?


차에 치였으면.

사고가 났으면.

내일 아침에 눈이 안 떠졌으면.

그냥 나란 존재가 사라졌으면.

지구가 멸망했으면.

애초에 살고 싶은 사람이 있나? 못 죽어서 사는 거 아닌가?

어떻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있지?

옥상에서 떨어지면 많이 고통스러울까?

약을 얼마만큼 먹어야 죽을까?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누군가는 ‘내 머릿속의 생각이랑 너무 똑같은데?’라고 놀라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잉? 평소에 이렇게 생각한다고?’라며 놀라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그냥 오늘 시험 치기 싫어서,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이자 갚는 게 힘들어서 습관적으로 나오는 “아~ 죽고 싶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차에 치이든 무슨 사고가 나든 연기처럼 사라지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살사고’로 명명지은 ‘증상’입니다.


“왜 죽으면 안 돼요?”

제가 정신과 병동에서 근무하며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입니다.

자살하면 안 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윤리적으로 다 안된다고들 합니다. 신이 주신 생명을 내 마음대로 거두면 안 된다거나, 가족이나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 때문에 안된다거나, 그냥 당연히 자살은 안된다거나...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답변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삶을 끝내겠다는데 왜 다들 말리기만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왜 죽으면 안 돼요?”라는 질문을 하는 환자들에게 앞서 언급된 이유들은 ‘내가 죽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죽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많이 고심해 보았겠지만, 또 정반대로 그만큼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어떤 종교적, 윤리적, 철학적 말들도 그들의 논리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자살하면 안 되는’ 수만 가지 이유를 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고 싶은 것’입니다. ‘그 많은 이유를 내가 감수하겠다잖아. 신에게 미안하고 가족에게 미안한데 근데 난 죽어야겠다잖아.’ 그들의 표정은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모두 다 감수하겠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죽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답변을,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제가 감히 할 수는 없습니다. 죽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만한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있고, 남겨질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이 죽으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슬퍼할까 봐 조금 걱정될지언정, 그래도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입니다. 혹은 남겨질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생각 자체를 못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만 몰입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혹은 너무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낸 후 남아있는 우울과 절망으로 이제는 살고 싶지가 않아서, 혹은 그냥 없어지고 싶어서.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아프지 않다면, 그렇게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은 덜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삶에 그래도 잔잔한 행복들이 있었다면,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 않았을까.

결국 원하는 건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고통이 끝나는 것이지 않을까.

이 삶에서 고통을 끝내는 법을 몰라 삶 자체를 끝내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나를 괴롭혔던 과거의 고통이 없어졌을지라도 남아있을 후유증과 앞으로 또 아프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삶을 더 이상은 끌고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 않을까.

삶은 고통의 반복이라 다시 또 올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이미 지친 몸과 마음으로 무기력과 좌절감으로 범벅되어 있는 상태로 다가올 삶을 마주할 자신이 없는 것이지 않을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더 이상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은 것.

하지만 그 바람이 꺾이고 꺾여 이제는 작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도 느껴지지 않고, 혹은 희망이 있다고 해도 붙잡을 힘이 없어서 그래서 그저 죽고 싶은 거라고. 싸우기는커녕 버틸 힘도, 의지도 의욕마저도 없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 살아남아 주셔서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용기 내어 도움을 요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죽음이 아닌 ‘치료’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자살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살은 절대 ‘나의 선택’이 아니며, ‘극단적인 선택’도 아닙니다.


자살은 질병에 의한 죽음입니다.

‘자살사고’라는 증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예후가 죽음인 것입니다.


마치 심한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호흡곤란 증상이 생길 수 있고

호흡곤란을 바로 치료하지 못하면 사망에 이르게 될 수 있는 것처럼요.

그러니


자살사고를 가지고 있으신 분들도,

실제 자살시도를 하셨던 분들도


지금 살아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왜 죽으면 안 돼요?”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입니다.

keyword
이전 04화여기는 터널이 아니라 동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