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일, 사랑하는 일, 사랑하는 이. 모두를 담는 순간
동생이 그토록 바랬던 삶
생각하는 일, 사랑하는 일, 사랑하는 이. 모두를 담는 순간
두 조카가 있다. 내겐 누구보다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들이다. 나와 얼마 터울 지지 않는 동생이 어느덧 두 아이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녀가 나는 하루하루 어른으로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너무도 다른 나라에 사는 이방인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많이 아팠다. 몸살이 오듯이 덜덜 떨며 고름이 차서 고통스러워하던 그녀는 유선염으로 산후풍으로 많이 아팠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듯 각기 다른 식으로 자신의 약한 부위가 다치고 약해져 약으로 버티며 아이를 지켜낸다. 그래서 존경을 넘어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내 몸하나 건사하고 관리하기도 버거운 삶이니 말이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나는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삶, 누군가는 이토록 바라는 삶일진대 그들은 그들의 고충과 고통으로 행복을 만끽할 여력조차 없겠지. 타인과 비교하는 삶이란 이런 것 같다. 모든 게 다 자신만의 때와 시계가 있는데 내가 원하는 인생의 흐름이 내 시계와 맞지 않을 때, 우리는 질투를 하기도 하고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부러운 마음이 들 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에게 지금의 나의 상황은 또한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겠구나. 그럼 내 상황과 시계가 이렇게 흘러감에 만족하는 게 내 삶에 대한 최선의 마음가짐이겠구나.
아프고 힘들게 혼자서 길러낸 첫아이가 기관에 드디어 다니게 되어 자신의 시간을 잠시나마 즐기던 동생은 혼자서 훌쩍 서울의 곳곳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가장 하고 싶었던 자유롭게 공원에서 보드를 타는 자신을 그렸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만큼 아문 몸과 체력. 그리고 시간. 그 모든 게 맞물렸을 즈음 둘째 조카가 생겼다. 그래도 동생은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려 꿋꿋이 하루하루 버텨낸다. 그런 그녀가 나는 사람으로서 존경스럽다. 내가 훗날 나의 아이를 갖는다면 '그런 엄마'가 되어야지 하고는 되새긴다.
사람과 함께 현재와 미래 과거를 나누며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끊임없이 주고받는 대화와 교류 속에서 공감하기도 비교하게 되기도 하는 시간의 연속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 너무 상대적 박탈감에 슬퍼하거나 주저앉지 말자. 우리는 우리의 시간표대로 잘 살아왔고, 잘 살아갈 것이며, 잘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