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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란서 여행가 Jan 16. 2024

오늘도 시 한 편 두고 갑니다.

산림욕

산림욕

숲속을 걷는다
서늘한 바람이 나무 사이를 핥고
나를 훑어 간다

초록 내음과 갈색 내음이
찌든 폐부를 간질이고
내 몸을 쓰다듬는다

다양한 목소리로 짹짹대는 산새들
흐벅지게 내려앉은 풀꽃 씨앗들,

서점을 걷는다
에어컨 바람이 서가 사이를 핥고
나를 훑어 간다

향수 내음과 종이 내음이
질린 머리를 환기하고
내 몸을 가다듬는다

다양한 가락으로 연주되는 악기들
흐벅지게 내려앉은 서재 먼지들,

책은 이전에 종이였다
종이는 이전에 나무였다
나무가 살아온 곳은 숲이다
인간이 살아온 곳도 숲이다

과거에는 숲에서 지혜를 깨치고
이제는 서점에서 지혜를 배운다
자연인이 도시인 되었듯
숲은 서점 되었다
도시인이 서점을 거니는 것은
일종의 산림욕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정신없는 나날에도
서점에 잠시 몸을 맡길 때면
마음은 여유를 찾는다

시간이 늦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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