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텐조 Oct 26. 2023

위험한 초대장 불태우기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69

벽돌시리즈 육십 구 번째

나 또한 극복의 과정으로 글을 써본다. 흔히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단순 감기가 아니라 코로나 그 이상급이다. 마음의 인플루엔자 아니면 에볼라가 아닐까 싶다. 생각보다 치명적인 질병이다. 한 번쯤은 누구나 멜랑콜리하거나 우울하다거나 삶이 무기력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이 글을 보는 경험자들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우울과 우울증은 글자 한 끗 차이로 표현하기에는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몇몇 글이나 칼럼에서는 우울증이란 단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끄덕일만하다. 아직은 내가 전문가는 아니기에 개인적 체험담 내지는 주장이라 생각하시고 필터링하시며 받아주시면 좋겠다.


오늘의 글은 누군가에게는 일말의 도움이 됐으면 하며 혹은 주변 누군가 아니면 내가 될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의 경각심을 깨우고, 우울증이 개인적 차원에서 왜 그토록 어려운지 예방차원에서라도 알려보고자 한다. 상담현장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직접 경험해 보고 배우고 이론상으로도 아니면 책 속 상담사례를 접하며 허심탄회하게 털어보고자 한다. 재고정리하듯 이야기곳간에서 한번 털어본다.


우울증은 물질의 풍요와 그에 반비례한 정신적 빈곤들 그리고 사회적인 요소의 콜라보로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한다. 재난, PTSD나 인간관계, 개인적으로 받아 드리기 힘든 사건, 가정환경, 경제적 환경 등등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런 요인들이 상처에 힘을 더하면 더했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끝이 없는 터널 속에 우울증은 우리에게 위험한 초대를 한다.


터널에 들어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나 아니면 극히 일부 앞만 보이듯,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판단이 모든 것이다. 그러기에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현 상황 그리고 미래를 판단한다. 인지치료 창시자인 아론 벡은 치료를 창시하기 전 우울증 환자들의 독특한 사고패턴을 알아낸다. 인지치료에서 인지삼제라 불리는 그것으로 흔히 자기 자신, 미래,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판단, 자기 자신의 절망적인 미래, 타인과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 3가지의 큰 측면에서 자기 자신의 목을 졸라 온다. 상담이나 치료과정에서 아니면 자연스레 환경적인 개선이 이루어져도 이 3가지를 완화시키지 못하면 다시 한쪽에서 봇물 터지듯이 밀려들어온다. 그러면 논이 물에 잠겨버리듯 오히려 더 악화가 되어 일말의 개선의지가 꺾이고 심지어 상담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예전에 자살예방의 날로써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고자 그리고 힘드신 분들을 위해 부족한 글을 써봤지만, 개인이 이겨내기에 그냥 비유적으로 인지삼제를 보아 3대 1의 상황이라 생각하면 개인이 극복하기에는 참으로 힘든 게 사실이다. 성격적 기질적 측면에서 우울증에 취약한 사람도 있으며, 유전적으로도 취약할 수 있다. 물론 누구나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게 아니지만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그냥 넘길 수 있는 상황에도 끙끙 앓을 수도 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치료가 됐으면 우울증은 애초에 질병으로 구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생각을 바꾸고 그것을 연습하고 논증하고 내담자가 납득이 가게끔 만들어주고 일상에서 개선된 생각을 강화하고 생활하는 데는 여러 방면으로 시간과 집중이 또 필요하기에 가끔 피상적인 위로서적이나 콘텐츠들이 "생각만 바꾸면, 의지만 있으면 당신은 이겨낼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과연 우울증 환자들 모두가 동의할지 의구심이 든다. 일단 나는 반대.


우울감을 이겨내는데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이를 행동활성화기법이라고 부른다(Behavioral Activation). 한가지 꿀팁을 드리자면, 기분이나 의욕이 안 난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거나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고 뭔가 스스로 의욕이나 동기부여가 있어야 행동이 생긴다고 착각하는데, 나도 최근 몇 년 전에만 해도 그렇게 믿어왔던 사람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인지치료에서 주장하는 생각을 바꾸는 작업도 중요하긴 하지만 정말 만성적인 무기력 우울증 환자들을 위해 아예 행동부터 이끌고 나서 치료를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생각, 행동, 감정은 누가 갑이냐 을이냐의 관계가 아니라 트라이앵글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작업하게 되면 벌써 최종보스 장벽을 만나 힘들 수도 있기에 간단한 작업부터 들어가 의욕을 돋아주는 것이다. 마치 여름날 팔도비빔면 하나 끓여 먹듯이.


상담과정에서 우울증 환자들로 하여금 정말 사소한 행동도 계획하고 달성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 힘쓴다. 예를 들어 일어나 양치하기, 아니면 세수하기, 하루에 한 번 산책하기 등과 같이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지렛대처럼 어느 순간 몸이 깨워지는 느낌이 난다. 그래서 행동을 촉진하기 위해 아예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행동하고 생각하는 어찌 보면 단순무식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치료현장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먹힌다. 오히려 그동안 나처럼 좁게 생각을 해서 뭔가 생각이 갖춰지고 태도가 갖춰지고 아니면 동기부여가 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여겼지만 반대의 경우도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비단 우울증 환자들을 위한 글이 아니다. 일상에서 무기력을 느끼거나 본인이 정신적으로 탈진했거나 피로하다고 여겨진다면 지극히 사소한 것이라도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면 의외로 탄력을 받는다. 사소한 것일수 있고 또 교육적 차원에서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할수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정도까지 해야하나 싶을수도 있어서 많이들 착각한다.여러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과 거기서 말한 점과 동일하듯 해보기 전까지는 그 느낌이 뭔지 모른다. 그래서 해봤자 본전이란 생각도 좋으니 본인이 지금까지 낮게 여겼거나 사소하게 생각했던 그 활동을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스팸처럼 수신차단하면 좋겠지만 우울증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매번 혹은 가끔 찾아오는 절망의 초대장을 우리는 기꺼이 두눈 앞에 불태워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이전 03화 내가 31도 아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