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 상태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어요."
항상 의료진의 말을 조용히 듣고만 계시던 베니의 어머님께서 처음으로 입을 여셨다.
아주 나지막이,
"수술 전에는 건강했었는데... 수술을 너무 빨리 해버린 것은 아닌지..."
어머니는 중환자실 침대 옆에 있는 의자 등받이를 불안하게 만지작 거리며 문장의 끝을 흐리셨다.
차트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의사는 고개를 살짝 들어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너무 빨리 한 게 아니라, 너무 늦게 한 거죠."
잘못될 가능성이 3% 이하라면서요?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이게 뭔가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베니가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는 와중에 의사에게 고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신경 손상으로 왼쪽 안면 근육들이 움직이지 않는 탓에, 그의 미소가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이렇게 건강했던 사람을, 예쁜 베니 얼굴을 왜 이렇게 망쳐놓은 건데요?
하지만 나는 울분을 토하는 대신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았지만 고맙다고 했다.
왜 고맙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속상함을 꾹꾹 눌러 담고 고맙다고 했다.
베니가 고맙다면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괜히 화를 내어서 베니 상태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면 안 되었다. 그리고 내가 화를 내어 의료진에 혹여나 미움을 사서 중환자실에 있는 베니가 치료받는데 지장이 생길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는 이곳에서 철저한 을이다.
일주일 넘게 무섭도록 조용했던 베니와의 카카오톡 대화창에 메시지가 왔다는 알람이 떴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카카오톡 창을 열었다. 카카오톡 캐릭터 라이언이 바구니에서 하트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어서 눈에 하트를 달고 있는 라이언의 이모티콘 등 애교 가득한 이모티콘이 연달아 왔다. 베니 스타일이다. 이모티콘 폭탄 애교.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일주일이 조금 넘게 중환자실에 있던 베니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베니가 대소변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화장실에 오래 있는다고 잔소리를 하곤 했는데, 생리현상이 돌아왔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 될지 정말 몰랐다.
주변 사람들은 분명 수술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이니 고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원망스러운 마음이 나날이 커졌다. 그리고 결국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베니 부모님께 울분을 토했다.
이건 수술이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 3% 미만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렇게 어려운 수술이었다면 진작에 말을 해줬어야 했다고. 고소를 해야 한다고.
베니 어머님께서 차분히 듣고 있다가 입을 여셨다.
"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말이야... 만일 고소를 하고 그 사람이 수술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는 것을 밝히게 된다면? 그러면 네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니?"
대답을 못하고 있는 나를 따스한 눈으로 보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원한다면, 너와 베니가 고소를 하고 싶다면 해야지. 그런데, 너의 에너지를 다 써서 힘들게 싸운 후 실수를 했다는 것을 밝혀졌다고 치자. 그러면 그 후에는? 뭐가 달라질까? 보상금? 네가 그런 거 필요해서 고소하겠다는 건 아닐 테고... 그러면 마음? 마음은 과연 좋아질까? 실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그 의사는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람이 너무 힘들면 원망할 곳을 찾고는 한단다. 그런데, 우리 한 번 잘 생각해 보자. 선택은 우리가 한 거였지. 수술을 하기로 우리가 선택했고, 이 병원 그리고 이 의사를 선택했어. 우리는 분명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랬다고 믿었어. 그 사람도 분명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수술을 했을 거야."
정말 나는 원망할 곳을 찾은 것일까...?
만일 수술이 잘 되었다면, 나는 얼마나 그 사람에게 감사했을까?
수술이 막 끝나고 나서 세상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감사하고 존경스럽지 않았던가?
3%가 아닌 97% 가능성의 수술 결과를 받은 사람들에게 이 의사는 참으로 감사한 존재일 것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면서 밤낮으로 수술을 하는 이 의사는 지금까지 분명 정말 많은 사람을 살려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단지 내 남편의 수술이 잘 안 되었다는 이유로 고소를 한다면, 그래서 이 사람의 인생까지 망친다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
이 사람으로 인해 앞으로도 몇십, 몇 백명의 환자들이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을 텐데 나는 과연 이 의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건가?
우리도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의사도 최선의 방법으로 수술을 했다고 믿기로 했다.
설령 그게 아닐지라도, 용서하기로 했다.
4개월의 재활병원 입원
염증으로 인한 한 차례의 재수술
세상에는 아무것도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침을 삼키고, 음식을 먹는 것도
웃고 화를 내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것도
두 눈을 동시에 깜빡일 수 있는 것도
말을 하고 듣고 걸을 수 있는 것도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신경과 연결되어 있는지.
재활 훈련 끝에 베니는 왼쪽 눈꺼풀을 조금 감을 수 있게 되었고, 휠체어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신경은 마비되었으나, 재활 훈련 덕분에 조금씩 나오게 된 목소리가 꼭 미키마우스 같다고 베니는 속상해했다. 그의 말대로 목소리가 예전과 달리 얇고 여성스러워졌다. 문득 베니의 예전 목소리가 생각났다. 그때는 몰랐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목소리. 간혹 베니가 내 옆에서 조잘조잘 말을 할 때 '쓸데없이 왜 이리 말이 많을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던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적도 많다. 미키마우스 같아도 괜찮으니 그가 목소리를 내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그저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재활병원에 입원한 첫날 젊은 외국인 의사가 말했다.
"얼마나 신경이 손상되었고 회복될 수 있는지는 'GOD - 신' 만이 아는 거예요.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재활에 집중해 봅시다."
의사는 "GOD"에 강조를 두며 말했다.
조금 어이가 없었다.
수술 전까지는 이 모든 것이 의사의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신의 능력에 달려있다니.
하지만 잘못될 가능성이 3%라는 대학 병원 의사의 말이 완벽하게 빗나간 것처럼, 원상태로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말도 보기 좋게 빗나갈 것이라 믿기로 했다.
주말마다 집에서 대중교통 및 기차를 타고 3시간 거리에 있는 재활병원으로 갔다. 평일에 정신없이 일을 하고, 주말에 베니에게 필요한 옷가지며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싸가지고 갔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공원을 가로질러 재활병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래 베니를 보고 싶어서. 어느새 여름이 가고 가을 끝무렵이 되었다. 꽤 쌀쌀한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공원길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쌓여있었다. 공원을 길게 가르는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여름내 내린 비 때문인지 제법 거칠어졌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
빨리 걷고 싶으면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큼직한 보폭으로 빨리 걸어낼 수 있는 나의 두 발, 나의 건강한 신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베니의 왼쪽 신경은 여전히 마비되어 있지만,
한쪽 귀는 안 들리고, 눈을 제대로 감을 수 없고,
예쁘게 미소 지을 수도, 얼굴을 찡그려 볼 수도 없지만,
무엇보다 지금 내 옆에 베니가 있다는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다.
때때로 속상한 마음이 한없이 차오르고,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우울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고소를 하지 않은 우리를 바보 같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원망의 마음을 버리고 감사로 채우기로 했다.
* 이 글은 주관적인 시각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의학적인 내용 등에 있어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거나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