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초조와 불안 그리고 두려움을 직접 만지듯 느낄 수 있었다. 답답하고 더러운 지하 피시방에서 전화를 받은 내 손에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엉성하게 만든 흡연실에서 욕지거리와 함께 담배 연기가 새어 나왔다. 나는 그 탁한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안 된 것 같아요."
같아요라..... 사실은 안다. 그런 추측성 술어는 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사법고시에 실패한 것이다. 그것은 땀 밴 6년의 시간이 낭비로 돌아서는 순간이었고 미뤄둔 군대를 장교로 가라는 신호탄이었다. 입대는 선택이라기보다 세월의 딱딱한 손길에 밀려 넘어간 것과 같았고 보통 병사보다 긴 군생활을 마치면 딱히 할 것이 없음을 알면서 군대에 갔다. 그렇지만 다행하게도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전부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책과 글쓰기. 눈물과 피로 얼룩진 군대 시간의 마디 사이에서 1년에 백 권의 책 읽기를 목표로 3년 동안 근 300권을 책을 탐닉했다. 그리곤 제대가 얼마 안 남은 29살 봄. 투고가 잘되어 출판을 하게 되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첫 출판은 인생의 액자에 담아 소중한 순간이지만 그게 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김주임 퇴근 준비 안 하고 뭐를 그렇게 적고 있나?"
팀장님은 이미 검은색 가방을 들고, 오후부터 책상 밑으로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구두로 갈아 신으며 말했다.
"아. 네. 이제 갑니다. 잠시 옛날이야기 좀 적고 있었어요." 난 답했다
팀장님은 가던 길을 멈추고 내가 들고 있는 노란 메모장을 힐끗 쳐다보셨다.
"그렇군. 효롱씨는 공무원 시험을 늦게 봤지? 아깝긴 아까워. 그래도 서울에서 법학 공부한 사람인데 변호사도 아니고......"
팀장님은 차마 9급이라 말 못 하는 것이었다. 사실 공무원 시험도 어렵다. 안다. 내가 공부했기에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4당 5 락의 정신으로 달렸던 사람에게는 결승선이 초라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팀장님 좋습니다. 열심히 봉사만 하면 국가가 걱정 없이 월급을 챙겨주지 않습니까?"
"그래 난 효롱씨의 그런 자세가 참 좋단 말이야. 요즘에는 다들 공무원 월급이 적다, 문화가 너무 경직되었다, 불만만 가득하니까. 나 때는 말이야....."
팀장님은 본격적으로 말하려다 챙겨보시는 뉴스에서 라떼로 시작되는 말들에 대한 세간의 조롱이 떠오른 듯 입을 닫고 손을 흔들며 사무실 문으로 걸어가 나갔다.
"말단 공무원의 생활이라......."
나는 아직 손에 익지 않은 두꺼운 매뉴얼들을 서랍에 넣으며 생각해 본다. 사실 모든 직업이 그렇듯 개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지만 여려 면에서 MZ세대의 삶의 양식과 맞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봉급과 수직적인 문화는 둘째 치더라도 내가 안 잘려서 좋지만 저놈도 안 잘린다는 진리는 가끔 피할 수 없는 코너에 몰린 복서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대기업보다야 압박이 없어 이렇게 틈틈이 내가 사랑하는 글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생각해보면 난 사법고시 종말의 시대를 살았던 마지막 고시낭인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 치열했던 신림동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마지막 겨울을 보냈으니 어찌 보면 그 많던 고시낭인들은 무엇을 하며 살까에 대한 질문에 내 삶 자체가 답변인 것이다.
아까 말한 출판 후 작가의 삶이나 고시낭인의 공무원에 대한 생각 등 할 말은 많지만 일단 지금은 출발해야겠다. 오늘은 내가 유일하게 하는 사회적인 취미생활인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해운대 독서살롱이라는
오픈톡 방에 들어갔다. 근무 중에는 바빠서 보지 못했던 글들이 67이란 숫자로 쌓여 있었다.
"효롱씨 어디예요."
단체톡에서 내가 반응이 없자 방장인 분홍이 개인톡으로 연락이 왔다.
"분홍님 저 지금 막 나왔습니다. 새로 인수인계받은 것들이 있어서 일찍 나오진 못했네요."
"모임 시간 전까지는 오실 수 있죠?"
나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을 열어 확인한 후 말했다.
"네 한 10분 전쯤에는 도착합니다."
"알았어요.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분홍은 의사다. 오늘도 진료가 힘들었는지 퇴근 직후의 그녀는 뭔가 긴장되어 있다. 의료인이라는 것이 보기에는 존경을 많이 받는 직업이지만 당사자는 항상 정신을 또렷이 차리고 살아야 하기에 정신이 심히 소모되어 있는 날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