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멈춰있다. 세상은 그대로 돌아간다. 개미 발걸음 하나까지 똑같다. 난 그저 세상에 혼자 의미 없던 메아리를 종이에 외치고 있던 것이 실감 났다.
형은 이따금 어머니께 가보라고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안다, 가족의 소중함을.
너무 오래 안 보면 안 되겠다 싶어 몇 안 되는 지인과의 약속도 취소하고 어머니께 전화했다.
연락을 오랜만에 해보니 어머니도 반가워하신다. 그러시고는 보고 싶다며 이번 주말이 쉬니까 고향에 한번 오라고 하셨다.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어플로 예약을 했다. 어차피 가기로 생각했으니 준비는 미리 하는 게 낫다. 내가 사는 곳과 어머니 계신 곳은 퍽 멀다. 지하철로 1시간, 고속버스로 2시간 30분, 마을버스로 30분 총 4시간을 걸려 고향에 가야 한다. 지금 시대에 대중교통으로 이 정도 시간이 걸리는 거리가 마치 어머니와 나의 간극같이 느껴졌다.
교대 근무로 밤을 새우고 바로 버스를 탔더니 가는 내내 고개가 실 끊긴 인형처럼 차의 흐름에 맞춰 춤추듯 비틀거렸다. 눈을 떠보니 금방 온 것은 좋지만 오히려 삭신이 아프다. 항상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쉬운 길은 아니다. 한번 오려면 큰마음 먹고 하루는 봉사한다 생각해야 한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이 지났다. 퇴근하고 일찍 준비하고 온 것이지만 이동시간이 많이 걸리니 어쩔 수 없다.
버스에서 내린다. 어두운 버스에 있다가 갑자기 밝아지니 눈이 부셨다. 눈을 깜빡이며 터미널에 있는 편의점 파란색 차광막으로 가서 스마트폰을 봤다. 잔다고 놓친 카카오톡 메시지가 있나 하고 궁금했다. 어머니께서 방금 보낸 카톡이 있다.
"효롱아. 미안한데 엄마 급하게 동네 모임에서 나오라 해서 가야 한다. 늦게 들어올 테니 기다리지 말고 냉장고에서 찬 꺼내 먹어라."
하. 또다.
"어머니 그럼 언제 밥같이 먹는 건가요? 내일 점심때도 약속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 그럼 오전에 바로 집으로 가는 건데요."
"아침을 같이 맛나게 먹고 가면 되지. 나도 안 가려고 하는데 부득이 오라네."
입장 차이란 게 이렇다. 한편으로는 저 나이에도 활기차게 사람과 어울려서 고맙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 힘들게 오면 같이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는 게 내게는 당연한데 어머니의 생각은 다르시다. 서로가 같은 그림을 그리는데도 이렇게 다른 모양이다.
난 한 마디 더 하려다가 그러면 또 싸울 것 같아 알았다 말했다.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서 불을 켜고 냉장고에서 멸치볶음과 콩 조림을 꺼내고 김치찌개를 데웠다. 작은 상을 펴고 밥을 먹고 있으니 왜 약속도 취소하고 이렇게 와있는지 허망했다. 아니 최소한 조금이라도 일찍 이야기해줬으면 지인과 시간을 보내고 내일 아침에 왔으면 되었을 건데.......
시간은 또 늦어져 작은방에 가서 이불을 펴고 누웠다. 모든 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것이 세상인 건가? 그래서 세상인 건가?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어머니는 어젯밤 못다 한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아침부터 깨우셨다. 나는 일어나서 믹스커피를 한잔 마시며 말했다.
"어머니 오랜만에 보는 시간이니까 이번에는 즐거운 이야기만 하다 가요."
"알았다. 엄마가 무슨 네 애만 먹이는 사람이니? 너만 좋은 사람이야?"
"그게 아니고요. 웃으며 이야기하다 가고 싶어서요."
"그래 엄마도 그렇다."
어머니는 꽃무늬가 있는 예쁜 컵을 바닥에 놓으며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등 뒤로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활짝 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의도대로 나는 어머니의 건강을 묻고, 어머니는 나의 직장생활에 힘든 점은 없는지 물어봤다. 서로 잘 지낸다는 이야기에 감사하며 시작된다.
"그래 네 예전 슈퍼마켓 똘이 아주머니 기억하지?"
"네 아직 잘 계시죠?"
어머니는 옳다고나 하시며 바짝 붙어서 말씀하셨다.
"그래 그 아주머니 아들이 이번에 손자를 놓았는데 춤을 추고 아주 난리 블루스야."
나는 남은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으며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역시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손주 하나 없이 이러는지 모르겠다"
"어머니 마음은 이해해요. 죄송해요. 그래도 오늘은 기분 좋은 이야기만 하기로 하셨잖아요."
"내가 뭐랬나. 이웃집이 손자 낳았다는 좋은 이야기했잖아. 너는 애는 착한데 어릴 때부터 너무 예민해서 문제야. 그건 고쳐야 돼."
나는 짧은 만남을 가지고 다시 먼 길에 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만나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잘 안된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도 돌아갈 때는 굵은 자갈을 삼킨 듯 속이 거북하다. 어머니를 이해한다. 나 또한 어머니의 반응을 당연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포기란 것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권할 때 힘들다. 나 혼자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탓하지 않는다.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힘들 뿐이다.
카톡이 왔다.
"저 축하해주세요. 감평사 시험 1차 합격했어요."
1퍼센트님의 메시지다. 개인 연락은 잘 안 하는데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다. 버스에 앉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답했다.
"정말 축하합니다. 역시나 개구리가 이제야 힘을 내는가 봅니다. 이대로 2차까지 이단 점프로 한 번에 뛰어넘어 봅시다."
흔들리는 버스와 마음처럼 어지러운 일상 속에 간만에 따뜻한 소식에 반가웠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의 평온과 그의 합격을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