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서 모임의 첫 봄소풍

#13 우리 동네에 수상한 독서 모임이 있다

by 효롱이

조금 작아지고 어두워진 해운대 독서 살롱에 1퍼센트님의 합격 소식은 전기 없는 시골집에 켜 놓은 촛불과 같았다. 따뜻한 기분을 느끼며 다들 축하한다.

"꽃 피는 봄날에 1퍼센트님 축하파티 겸 분홍님 이별 파티 안 하면 죄짓는 겁니다."

날이 좋아 안 그래도 소풍을 가자 던 반초님은 오픈톡에서 힘주어 말했다.

"저는 이별이 아닙니다만." 분홍이 말했다.

"압니다. 그래도 먼 길 가는데 우리가 챙겨줘야죠." 반초님은 답했다.


다들 이리저리 핑계를 대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지인들과 밖으로 나갈 일이 없으니 함께 숲에서 책도 같이 읽고 싶은 마음이다.


어릴 때는 수동적이어도 삶이 내게로 다가오지만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인생이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능동적인 형태로 변해야 하는 것이다.


바닥을 이불 삼아 눕던 시절에는 울기만 해도 입에 우유를 주고,


한두 살 더 먹고 강아지처럼 졸졸 기어 다닐 땐 넘어져도 누군가 와서 일으켜 주고,


나이가 갓 두 자릿수가 되던 시절에는 가만히 있어도 내게 맞는 옷과 가방을 사줬다.


학창 시절의 친구와 수학여행도 사실 배정과 계획이란 이름으로 주어진 것들이다. 난 그중 좀 더 내게 맞는 아이들을 단지 선택하고 살아간 것이다.


나이 먹음은 이제 내가 나서 찾아가야 하는 시절이 온다는 것이다. 힘들여 찾고, 내가 계획하고 하려는 결단을 내려야 일이 진행된다. 더욱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져야 하는 부분도 많은 것이다.

좋은 날 방에 있다고 학창 시절처럼 부모님과 학교에서 짜인 일정으로 나를 던져주지 않는다.


분홍님도 내가 알기로 집에 앉아 봄날을 맞이하였다. 바쁘다. 피곤하다. 이런 많은 말들이 먹구름처럼 봄 햇살을 막고 서서 흙길 한번 밟아보지 못하게 했다.


"네. 그럼 어디가 좋을까요? 그래도 독서 모임이니 책을 읽고 책 이야기와 같이 했으면 합니다."

그녀의 결정은 사실 모임의 방향을 결정한다. 반장이란 원래 선장과 같다. 수고도 있고 결정을 내리는 힘든 자리다. 하지만 그녀는 신중하기도 하고, 한번 결정을 내리면 쭉 밀고 나가는 강단이 있는 사람이다. 결정만 내려지면 일은 고속도로로 나간 스포츠카처럼 시원하게 진행된다.

기다렸다는 듯 반초님이 우리가 야외 소풍 모임 할 장소를 추천해 줬다. 멀지 않은 곳에 있고 나무가 푸른 캠핑장 같았는데, 간소하게나마 실내 공간을 만들어 놓아서 조용히 모임을 진행할 수 있는 곳이다.


며칠간 계획을 세웠다. 생각해보니 모임에서 이렇게 멀리 나가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생각보다 과정을 즐겼다.

분홍님은 시간을 짜고 경비를 생각하며 흥이 나셨고, 반초님은 생새우를 구하신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셨다. 둥둥이 님은 역시나 야무지게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세세한 부분까지 준비했다. 1퍼센트님도 반초님을 도와가며 준비하는 모습이 퍽 즐거워 보였다.


나는 모임 진행을 맡았는데, 적당히 발제를 뽑고, 언제 밥을 먹고 책 이야기를 할지 생각했다. 이럴 때 보면 사람은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것인지 싶다. 학창 시절에 오락부장이나 노는 것에 진심 어울린 적이 없으니 무엇을 하며 놀지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다들 아는 분들이고 워낙 긍정적인 분들이라 부담 없이 짜긴 했지만 스스로 아쉬움이 남았다. 낯선 이런 일을 맡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해야지 는다고 이제는 피하지 않고 좋은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며 해보고 있다.


당일, 나는 차가 없어서 시간이 분홍님과 맞아서 차를 빌려 타고 가기로 했고, 다른 분들은 셋이 선발대로 마트를 먼저 가서 준비물을 챙기겠다고 했다.

난 분홍님에게 가려고 지하철을 탔는데, 해운대 독서 살롱 오픈톡에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이것저것 사고 있는 반초님과 1퍼센트님의 모습이었는데,

과자 진열대를 바라보며 유심히 고르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난 지하철에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보기 좋았다.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 같이 소풍도 하고 그런 모임이 될지는 몰랐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진 사람들이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것은 누구에 대한 감사이기보다는 이렇게 이끌어준 모든 것에 대한 감은(感恩)이었다. 나 한 사람이라면 이런 뿌듯함은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니 난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이라도 힘내서 모임 한두 개는 해 보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차는 어느덧 외곽으로 들어서서 경사가 꽤 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역시 날이 좋아서 그런지 주차장이 거의 만석이다. 분홍님은 이리저리 좁은 산길을 헤매다가 겨우 한자리를 발견하고 차를 주차했다. 포장되지 않은 곳이라 여기저기 타이어 자국이 바닥에 있었다. 난 그것을 보며 오히려 아스팔트를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왔음을 느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난 숲길을 따가라니 넓은 공터가 나왔다. 왼편으로는 가건물이 있었는데 화장실과 각종 편의시설을 빌려주고 파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그 건물 맞은편 길을 따라갔는데, 안쪽에 적당한 크기의 예약한 자리가 나왔다. 모임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곳인지라 건너편에서는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들고 온 휴대용 스피커를 나무 선반 위에 두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을 틀었다. 맑은 공기를 울리며 부드러운 선율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좋구나.


곧 저 멀리 낑낑대며 큰 봉지를 들고 남은 세 회원이 왔다. 출발은 훨씬 일찍 했지만 준비한다고 도착은 살짝 우리보다 늦은 것이다.

우리는 분홍님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책 이야기를 한 후 1퍼센트님 합격에 대한 축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창 즐겁게 이야기 나누던 1퍼센트님은 갑자기 얼굴이 진지해졌다. 말이 많지는 않은 1퍼센트님이 저럴 때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다. 그는 내게로 다가와서 천천히 말했다.

"효롱님. 그런데요."

"네? 부담스럽게 왜 그러세요. 저 돈 없어요. 빌려달라고 해도 안됩니다."

나는 그에게 농담을 던지며 귀를 기울였다.

1 퍼센트님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생각을 하다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구워진 새우를 건네줬다.

나는 피식 웃고는 감사하다며 맛있게 먹었다.

그가 얘기하려던 말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억지로 누구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오늘은 자연에 집중해서 힐링을 즐겼다.

뭔가 아쉬움 속에서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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