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 귀까지 새빨개진 날

#15 우리 동네에 수상한 독서 모임이 있다

by 효롱이

"저기가 병원 입구인가 봐요."

유리로 된 큰 회전문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반초님이 말했다.


"저번 감기처럼 가벼운 일이라면 좋을 텐데......"

나는 말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경한 증상이라면 1퍼센트님 성격상 이렇게 큰 병원을 찾아오지는 않는다. 저번 소풍 때 합격하고 나서 불그스레 웃으시던 그가 생각나면서 한층 더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세상살이가 만만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예상치 못한 일이 갑자기 일상이란 방문을 열어젖히니 놀라지 않을 수 있나.


"저기 에스컬레이터로 가면 되는가 봐요."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져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둥둥이 님도 놀라 나오셨다. 우리 셋은 순식간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병동을 뛰어다녔다.


"저깁니다."

반초님은 안 가르쳐준다던 1퍼센트님을 달래서 받은 호실 번호를 확인하며 말했다. 우리가 들어가니 1퍼센트님은 좁은 침상에 놓인 커다란 봉제인형처럼 누워있다. 얼굴은 아파서인지, 놀라서인지, 핏기 없는 모습이며, 누운 상태로 고개를 힘들게 돌려 우리를 쳐다봤다.


"반초님도 참...... 오시지 말라니까요.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해서 오히려 걱정하실까 봐서 연락드린 건데......"

그는 되려 미안한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다들 오늘 시간이 남아서 왔을 뿐입니다. 많이 안 좋아요?"

그는 조심스레 1퍼센트님을 살피며 말했다.

몸은 최근 봤을 때보다 육안으로도 구분이 갈 정도로 말라있었고, 전체적으로 힘이 없어 보였는데 특히 오른쪽 팔이 침대 바닥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아..... 예..... 조금......"

차마 좋다는 말은 못 하고 1퍼센트님은 조금이라는 말을 했다.


"말해보세요. 안 그러면 우리 안 나가고 여기서 자고 갑니다."

반초님이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 이유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스트레스가 때문일 가능성은 가장 크다고 하지만요. 갑자기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힘이 안 들어간다 생각되더니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어요."

"네? 그럼 오른팔을 지금 쓰지 못하시는 건가요."

둥둥이 님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1퍼센트님은 누운 자세로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아래위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윙윙

알 수 없는 병원의 기계음만이 우리 사이의 공간을 채웠다. 역시나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반초님이 물었다.


"감평사 2차 시험은 언제라고 했죠?"

"8월이요."

"음. 그럼 3달도 안 남았네요.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빨리 수술을 해보긴 하는데...... 아마 신경 쪽 문제라서 당분간은 손을 쓰기 힘들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뒤에서 듣고 있던 둥둥이 님이 놀라 소리치듯 말했다. "2차는 주관식 필기라도 하지 않았나요?"


"네...... 맞아요." 1퍼센트님은 살짝 눈을 감으며 말했다.

우리가 말을 못 하자 1퍼센트님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그래도 끝까지 해볼 겁니다. 오른손이 안되면 왼손으로 써서라도 시험을 치를 생각입니다."

그는 말한 후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마치 전쟁을 앞둔 장수와 같은 눈빛이었으며, 난 그 속에서 타오르는 붉은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1퍼센트님 해낼 수 있습니다. 수술에 먼저 집중하고 잘 마치고 나머지 시험도 한방에 해치웁시다."

난 이런 반초보님의 무작정 긍정이 좋았다. 나는 따져보고 걱정하고 나서야 긍정적인 측면을 찾는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반초보님은 긍정하고 나서 생각해 본다. 나도 저런 말속에서 힘을 얻을 때도 많다. 그가 이런 말을 할 때면 정말 근거 없이 모든 게 이루어질 것 같은 신비함을 느끼기도 한다.


1퍼센트님도 그의 말을 듣더니 처음으로 싱긋 웃었다. 예전에 흔히 듣던 긍정의 힘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한 마디의 말이 그렇게나 무겁던 공기를 한꺼번에 구름 위로 올려버린 듯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봤다.


얼마간 이야기를 나눈 후 반초보님부터 나가시고 둥둥이 님이 뒤따라 갔다. 나도 줄을 맞춰 나가려는 찰나 1퍼센트 님이 나를 불렀다.


"효롱님"

나는 잠시 서서 그를 봤다.


"소풍 때 말씀드릴까 했는데......."

난 그때가 생각났다. 그는 뭔가 이야기하려다가 끝내 말하지 못했었다.


"괜찮아요. 걱정 말고 뭐든지 말해보세요."

"음......."

그는 무거워진 입술을 힘들게 열었다.


"효롱님 왜 요즘 글 안 올려요?"

멈칫

난 순간 시간이 멈춰 고정된 느낌이었다. 몰래 쓰던 짝사랑에 대한 일기를 그녀에게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과 당황함에 얼굴이 순식간에 귀까지 새빨게 졌다.

"읽고..... 있으셨어요?"


처음에 글을 쓸 때 몇 번 쓴다고 말은 했지만, 너무 자주 올리니 피로감이 일까 봐 굳이 한다고 말하지 않았었는데......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형광등에 비쳐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 수상한 독서모임이 있다.

제목이 재미있어요. 그거 우리 이야기잖아요."

"그..... 렇죠..... 재미있게 적고 싶은데 잘 안 돼서요. 괜히 저만 신나서 쓰고 있었어요."

"아니에요. 말하면 부담스러울 까봐 얘기는 안 했지만 매일 공부하기 전에 봐요. 보다 보면 그 속에 밝은 우리가 보여 힘내서 공부해요......

혹시 글쓰기가 싫어지신 게 아니면....."


"아니면?" 나는 놀라 따라 하는 앵무새 인형처럼 말했다.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아. 난 정말 약한 놈이구나. 아픈 사람 앞에서 오히려 격려를 받고 있는 사람이구나. 난 그 조용히 격렬한 눈빛을 무시하지 못해,고개만 짧게 끄덕이고 기다리는 일행에게 갔다. .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의 말이 위성처럼 나를 맴돌며 자꾸 떠올랐다.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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