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누웠다. 펜이 사실 어디 있는지 찾지도 않았다. 그냥 홀린 듯 누워서 초점 없는 눈으로 오늘 일을 되새겨 봤다.
글이란 무엇일까?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아서 자리에 앉았다. 스탠드를 켜고 썼던 글들을 읽어봤다. 지금까지 적은 것들을 보니, 생각이 떠올랐다.
내게 글은 딱풀이었다.
외로울 때, 글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이어주는 딱풀이었고,
답답한 일들이 있을 때, 글은 마음을 적어 세상이란 벽에 시원하게 붙여버릴 수 있는 딱풀이었다.
나는 누군가와 이어주는 그 끈적함을 좋아했고, 비록 나는 방에 있지만 글은 비둘기처럼 날아서 세상에 철썩 붙어 버리는 하얀 자유로움이 좋았다.
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지 못하고..... 포기..... 그래 포기해 버린 것일까?
사람들의 시선? 세상의 제약? 부족함? 허무함?
이런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본질이 아니다.
나는 펜을 찾았다. 얼굴을 바닥에 붙이고 침대를 보니 굴러다니다가 먼지가 수북이 쌓인 펜이 보였다.
나는 낡은 플라스틱 빗자루를 들고 침대 밑으로 팔을 넣어 펜을 쳤다. 펜이 어두운 그림자에서 반가운 강아지처럼 또르르 굴러 나왔다
물티슈를 꺼내 꼼꼼하게 닦고 책상 위에 펜을 올려놓고, 언제 사놓았는지 기억이 안 나는 꽃무늬가 있는 편지지를 꺼내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옛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는 어린 형과 나를 데리고 서문시장을 돌면서 가게에서 쓸 물건을 양손에 한가득 들었다. 어린 내게는 어머니는 힘이 무척 센 다른 무언가로 보였지만, 생각해 보면 엄청 많은 나이도 아니고, 딱 나 정도였을 때다.
그러니 지금 어머니 입장에서는 내가 얼마나 애처럼 보일까. 아버지께서 실수로 재산을 날려 버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집을 지키기 위해 전구 하나 의지해 바느질을 하셨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바늘구멍을 못 찾겠다 하시지만 그건 젊은 날 고되게 새신 밤의 흔적일 터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니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난 그렇게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딱풀로 봉해 보냈다.
며칠 후 하얀 봉투에 감싸진 어머니 답장이 왔다. 어머니께서는 특히 이 부분에서 느낀 것이 많다고 하셨다.
"..... 중략..... 어머니 시절의 바다는 지금보다 거칠었겠죠. 이해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지금 그 바다를 걸어 나와 해변에 앉아 계십니다. 형과 나는, 어머니께서 힘들게 헤쳐나가던 그 바다 한복판에 있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고 휩쓸려 다니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날의 바람과 또 다른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지금 어머니께서는 해변에 앉아 나를 보고 힘들다, 와달라, 이렇게 하라고 외치십니다. 그건 파도에 귀가 막히고 숨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건 어머니를 미워하고 이해 못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있는 곳이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차이를 서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건 어머니에게는 답답함이 될 수 있음을 압니다만 예전 그 거친 바다를 생각하면 어머니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서로 생각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힘들지만 계속 서로를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저도 어머니의 말씀을 항상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 중략."
편지를 읽으며, 자신도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다 보니 차이점을 느끼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건 우리가 자연스럽게 자라는 머리카락을 인식하지 못하듯 당연한 일이다. 어머니는 글을 통해 거울에 머리를 비추어 보듯 되돌아볼 수 있게 되어 느끼는 게 많다고 하셨다.
글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잊혔던 글의 소중함을 느꼈다. 말도 좋지만 생각을 정리한 글은 훨씬 깊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글이 좋아져 끊겼던 글들을 그날 밤 다시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올리게 되었다. 계속 올리다 보니 시간이 글에 밀려난 것처럼 여름이 가고 벌써 가을이 속눈썹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글보다 세상이 더 어려워, 그동안 해운대 독서 살롱 회원들은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다시 우리 넷만 남았다. 분홍님이 돌아온 날 자랑처럼 잘 지켰다 말하고 싶었는데......
내일은 힘들게 찾았던 익숙한 공간에서 마지막 독서모임이다.
마지막. 이 단어에서 나오는 울림이 아련하게
슬프게 만든다. 해운대에서 모임을 할 카페를 찾는다고 분홍님이랑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아직도 생각하면 다리가 아플 지경이다. 전화도 해보고 부탁도 해보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힘들게 찾았고 그만큼 정든 카페가 문을 닫는다 마..... 앞으로 어떻게 모임을 진행할지는 둘째 치더라도 다니던 모교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마지막 모임 공지를 올렸는데 참석자가 나 말고 아무도 없다.
1 퍼센트님은 시험일이 지나고 조용하시다. 우리는 시험을 친 사람에게 결과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알기에 모두들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둥둥이 님도 혼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말한 이후로 역시나 소식이 없다. 그나마 반초 님이 저번 달 모임에 나와서, 둘이 모임을 했지만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참석을 누르시지 않았다.
내일 모임을 취소해야 하나? 아니지. 아니 나 하나뿐인 해운대 독서 살롱 모임이 의미는 없겠지만 공지에 올린 대로 나가야겠다.
분홍님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 혼자라도 해운대 독서 살롱을 지켜야지. 그래야 최소한 변명이라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라도 있어야 해운대 독서 살롱도 조금은 덜 외롭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