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전날 카페는 어떤 모습일까?

#17 우리 동네에 수상한 독서 모임이 있다

by 효롱이

사람은 마지막 아쉬움을 보면 애정의 깊이를 알 수 있다.


폐업 전날 카페는 어떤 모습일까?

똑같은 조명인데 어두워 보이고, 똑같은 건물인데 슬퍼 보이는데 진짜 뭐가 다른지 말해보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이럴 때 보면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보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평소에 눈으로 본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얼마나 마음으로 보고 있던 걸까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한 잔이요."

나는 매일 먹는 달달한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서, 카페에 있는 나무로 된 동그란 시계를 봤다. 가느다란 침들이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도 참......

보통 3시에 모임을 했지만 그래도 손님들을 맞는 기분으로 30분 정도 일찍 가서 준비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나 보다.


다음 달은 당장 어디서 모임을 해야 하나?

오늘 같이 혼자 온다면 계속 모임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괜히 빨대를 벗긴 종이 껍데기를 두 손가락으로 구긴다. 주름살같이 쭈글 해진 식물성 섬유가 본래 부피보다 훨씬 작아졌다.


조금만 나가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데 이곳에 앉은 나는 혼자 섬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바람맞은 남자도 아니고, 효롱아 뭐 하니."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가지고 온 모임 책을 펼쳐 다시 봤다. 머리가 인식을 못 하고 답을 모르는 수학 문제를 보듯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뭐 하세요."

깜짝이야. 뒤를 돌아보니 화장실 쪽에서 남자가 걸어 나오며 웃으며 말했다.


"반초 님?"

"네. 접니다.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었나 봐요. 못 알아보겠어요?"

역시나 반초 님이다. 초등학생 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짓궂게 말했다.


"뭡니까. 안 그래도 이상하게 이번에 반초 님이 출석을 안 눌렀다 생각했잖아요."

"그거 있잖아요. 서프라이즈 파티요. 오늘은 정든 카페에서 마지막 모임이니까, 이벤트를 제가 준비한 겁니다. 마음에 드셨나요?"

"그러다 아무도 없다고 제가 안 나오면 어쩌시려고요."


그는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오셨잖아요. 하하"


"그런데 반포님. 혹시 1 퍼센트님 2차 시험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계시나요? 제가 물어보기는 좀 그래서요. 궁금하네요."

내가 묻자 해맑던 반초 님이 당황했다.


"아..... 2차 시험이오?"

그는 말을 길게 늘이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훔. 호롱님. 결과가 중요하지만 전 그래도 아름다운 노력이 더욱 대단하다 생각해요. 마라톤에서 1등 한 선수에게 열광하지만, 전 마지막에 들어오는 선수가 멋져 보이더라고요."


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 역시 시험에 최선을 다했을 때 후회가 없더라고요."

나는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말하고, 둘은 말없이 음료를 마셨다.


딸랑-

덩치가 큰 남자와 아담한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그들을 보고 나는 놀라 말했다. "1 퍼센트님? 둥둥이 님?"

나는 구멍 뚫린 풍선 같은 목소리를 냈다.


"효롱님 죄송합니다. 시험에 합격하니 그간 못 뵈었던 어머니께서 얼마나 찾으시는지...... 친척들에게 정신없이 인사시켜 그간 말도 못 하고 이제야 오는 길입니다."

나는 크기 뜬 눈으로 반초 님을 바라보니, 그는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웃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나는 힐끗 둥둥이 님을 보니, 그녀도 내가 뭐가 궁금한지 아는지 말했다.


"전 그런 건 아니지만요. 혼자 여행을 갔다 왔어요.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 좀 하려고요. 결정은 순간이네요. 어제 막 사표를 쓰고 오늘 나온 거예요."

그녀는 얼굴은 하얀 피부가 타서 불그스름해졌지만 눈빛은 더욱 맑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간사한 사람인 건가. 이 셋이 모이자 이번에는 카페가 졸업식같이 느껴졌다. 마지막이라는 슬픔은 있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을 안고 축하하는 장소 말이다.


그래도 뭔가 아쉽긴 하다.

무엇이 아쉬운 것일까?

이제 볼 수 없는 정든 공간을 떠나야 하는 섭섭함인 걸까?

아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것보다 좀 더 짙은 냄새가 난다.

그건.....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분홍...... 방장인 그녀가 있었다면 어떤 방향으로라도 답을 말해줬을 텐데.

우유부단한 나에게는 없는 것이 꽉 찬 그녀가 떠올랐다.


딸랑-

"뭐예요. 효롱님 설마 혼자 나와서 청승 떨고 있던 것은 아니죠?

어. 오늘 어떻게......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의 연속에 얼이 빠져 그녀를 쳐다봤다

다시 반초 님을 보니 1퍼센트, 둥둥이와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나 빼고 다들 짰구나. 어쩐지..... 그래도 기분이 좋다. 피식


나는 헛웃음 소리를 내고 물어봤다.

"분홍 님..... 잠시 들리신 건가요?"

그녀는 우리 좌석까지 걸어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니요. 제주도가 기대보다 더 현묘한 섬이더군요. 몇 개월 만에 졸업하고 하산했습니다. 힘이 생겼어요. 저는 개원하려고요."

"와 축하해요 분홍님. 잘 되실 겁니다." 나는 이전보다 단단해진 그녀를 보며 기뻤고 어릴 적 기다리던 어머니가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단무지 하나만 있던 김밥 같던 모임이 다시 참기름 냄새 솔솔 풍기는 꽉 찬 김밥이 되었다.


나는 왜 독서모임을 좋아할까?

처음에는 책이 좋아서라고 만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책은 내게 소중한 존재지만

그 자체로 빛나고 있던 게 아니었다.


책은 홀로 읽는 것이지만 우리를 연결한다.

독서모임은 책을 읽지만 우리를 이해하게 된다.


책이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었던 인연들.

책은 세상의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 귀중한 사람들을 내게 닿게 했다.


나는 책이 좋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과의 대화가 즐거워졌고,

그들과의 인연이 소중해졌다.


사실은 책이란 생각보다 거창한 물건은 아니다.

생각을 종이에 적은 하얀 묶음일 뿐이고,

우리 모임도 심오한 현자의 대화가 아니라

웃고 떠드는 보통사람 잡담일 뿐이다.


그렇다 해

내가 정말 행복해지는 순간에는

빛나는 황금사과보다 책과 사람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하는 이 순간

난 마지막 한마디만 놓고 가겠다.


감사(感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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