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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Oct 06. 2024

청록바다: 눈이 부신 모호함이란

초록에서 파랑 그 중간 어디쯤

  사진을 보니 부쩍 나이 든 게 실감 났다. 탄력 없이 들러붙은 피부며 웃음기가 사라진 입꼬리며. 초라했다. 아, 이런 게 늙는다는 거구나.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라는 게 좀 슬펐다. 나의 외형은 새로운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삶은 그렇지 않아서. 나는 여전히 이십 대 초반이나 되는 것처럼 아무 옷이나 입고, 길에서 깔깔대고, 연애는 왜 이렇게 힘드냐며 푸념한다.


  가정을 꾸린 친구들이나 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친구들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새로운 삶의 모습을 찾아야 하는데 여전히 진로, 나아갈 길에 주저하는 나는 모호함 그 자체였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그런. 그러니 날이 아주 화창해서 우울하기도 했다. 나는 모호한데, 하늘은 아주 파랗고 나무는 아주 초록빛이어서 말이다. 너무 예뻐서 너무 슬펐다. 그토록 좋아하던 윤슬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윤슬 반대 방향을 봤는데, 바다가 청록빛이었다. 초록도 파랑도 아닌 청록색. 제주시의 에메랄드 해변도 아니고, 서귀포의 시퍼런 바다도 아닌 그 중간의 청록색.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건 왜 내게 위로가 되는지. 시야가 흐릿하다가 눈가에 파도가 부서지고, 마음껏 청록빛을 마음에 담았다. 눈이 부신 모호함이었다.


  지금 내 청춘은 초록에서 파랑 그 중간 어디쯤이다. 그리고 아주 멀리서 바라보면 꽤나 괜찮은 빛깔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기 위안을 했다. 어딘가 변하고 어딘가 머무르는 나지만 누군가는 나를 보며 어여삐 여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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