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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Aug 18. 2024

긴 머리: 사랑이란 도대체

왜 축축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지

  적당히 잘랐어야지 후회했다. 그렇게 어렵게 단발로 자르고 나면 머리가 길기만을 기다린다. 유난히 짧게 잘랐던 덕인지 머리가 참 안 길었다. 한번 미워한 단발은 어떻게 해도 밉게만 보였다. 묶을 길이가 되자마자 거울도 보지 않고는 매일을 묶어버렸다. 그러다 오늘 알았다. 머리가 길었다.


  머리가 잘 안 말랐다. 축축한 머리를 수건으로 털고, 강풍으로 불어 제쳐도 안 말랐다. 분명 탈탈 털면 말랐던 머리였는데. 이제는 축축하다. 축축한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아. 사랑이었다.


수건이 다 젖도록 머리가 마르지 않네요


  적당히 사랑했어야지 후회했다. 그래서 싹둑 다 잘라버리고 나서는 뭘 그리 애틋하게 그리워했는지. 길어라 길어라. 길어진 사랑을 눈앞에 두고도 나는 또 모른다. 그러고 베갯잇이 축축해질 무렵에야 알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게도 사랑에 빠졌구나. 나를 지킬만큼만 사랑하고 있다 굳게 믿었는데.


   바뀐 샴푸향이 싫지 않으면서도 나는 애석하다. 왜 축축해지기 전에 알아차릴 수는 없는지. 애매하게 긴 머리 앞에 고민한다. 잘라야 하나 길러야 하나.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가도, 아무렇게나 될까 노심초사한다. 아마 이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일 테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상처받을까 솔직하지 못한다. ‘어떻게 되든’만을 말하고는 불안에 잠을 설친다. 지레 겁을 먹고 달음박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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