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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잘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망했다

by 다보일 Dec 15. 2024

분명 나는 잘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주변에선 자꾸 아니란다. 엄마가 낙엽 같은 몸으로 새벽을 뒹구는 것이 그렇고, 한 톨의 동정도 주지 않는 일터가 그렇고, 좋은 짝 만나 어여 시집가라는 조언인 듯한 잔소리들이 그렇다. 모질게 반론했어야 했는데, '잘하고 있다'가 아니라 '잘하고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 때문에 난 입을 꼭 다물고 나를 채근한다. 그래. 더 잘해야지. 그러면 주변에서도 아무 말하지 않을 거야. 나는 내게 어서 나아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어깻죽지가 뻐근하고 두 팔을 더 이상 못 쓸 때가 와야만 나는 더는 못해먹겠다고 울었다. 분명 잘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렇다. 내 인생은 불행으로 가는 관성을 가졌다. 잠시 잠깐의 행복으로 발을 걸 때마다 잠시 잠깐의 불행이 찾아와 발을 치운다. 10만 원씩 100번을 모아 1000만 원이 되었을 때, 동생은 사고를 치고 엄마는 그걸 수습하고 나는 그런 엄마를 가여워한다. 둘 다 왜 그렇게 살아. 그렇게 나의 100번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 나도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터에서의 나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식은땀을 흘리다 주저앉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할 일을 마친다. 아무도 그러라 하지 않았는데. 누가 나 좀 일으켜주고 안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왜 드는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으로 누군가를 만나니 죄다 마음에 차지 않는다. 날 일으켜줘야지, 같이 넘어져버리면 어떡하냐 땅을 치고 운다. 얼른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엄마가 올 때까지 나는 운다.

나는 아직도 어리숙한 게다. 엄마한테 버림받기 두려운 12살에 멈춰버려서 아무리 손을 잡아끌어도 오지를 않는다. 착한 어린이 상장을 내밀어도, 100점짜리 시험지를 내밀어도, 사랑한다라는 말이 가득한 편지를 내밀어도 엄마는 도무지 나를 봐주지 않았다. 바빠서 그래. 아니면 아파서 그럴 거야. 나는 계속 지금처럼만 하면 돼. 그러면 언젠가는 엄마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라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을까. 잘했다고 치켜세워주지 않을까. 나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주지 않을까.

"엄마, 나 밥상 만들어왔어. 어때?"

'오-'라는 한 마디만 남기는 엄마를 서운하게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뒀다. 그래. 조립만 한 건데 뭐. 그래도 꽤 멋진 것 같은데. 낑낑거리며 집에 들고 와서 밥상이었던 책상 위에 좋아하는 시집과 공책과 노트북을 두었다. 그리고 시선이 닿는 곳에 20여 년 전의 가족사진을 두었다. 엄마는 20킬로가 넘는 동생을 두 팔로 안고 있고, 그런 엄마에게 온몸을 찰싹 붙인 나를 본다. 나도 번쩍 들어 안아주길 바랐지만, 이젠 내가 엄마를 들어 안아줘야 한다. 나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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