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기자의 온] 선택하는 삶
내가 사는 곳은 수리산 아래고, 고층에 속하는 20층이라 여름에도 바람이 자주 불어 꽤 시원한 편이었다. 이사 와서 4년은 안방에 에어컨이 없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견디지 못하게 된 것은 작년의 일이다.
첫 아이를 낳고 돌이 될 무렵인 2008년쯤 구입한 에어컨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며 '이제 그만 나를 내버려줘'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성능은 떨어지는데 더위는 기승을 부렸다. 한 마디로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바꾸는 김에 안방과 큰애방까지 모두 3대의 에어컨을 설치했다. 설치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을 만큼 죄책감이 들었지만 열대야가 주는 고통은 생각보다 셌다.
올해 더위는 작년보다 더 심해졌다. 연일 폭염 기사가 오르내리는 때, '에어컨을 틀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글을 검토하게 되었다. 전기요금이나 환경 때문인가 싶었는데 '사람' 때문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택배를 나르고, 배달을 하고 아파트 계단 청소를 하는' 사람들.
'오늘부터 배달을 끊고 다 함께 집밥을 만들어 먹자는 억지 따위를 부릴 수는 없지만' 에어컨을 덜 켜는 걸 선택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고백. 그것은 더위에 고생하는 사람들의 땀의 무게를 짐작하려고 애쓰는 한 시민의 선량한 마음이었다.
'나 하나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얼마나 큰 영향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글쓴이처럼 솔직히 나도 '이 기사 하나가 나간다고 해서 얼마나 큰 영향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럼에도 한 시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에어컨을 틀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라는 부분에서 그랬다. 그 말이 곧 우리의 선택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읽혔다.
오은 시인은 <뭐 어때> 책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삶의 중심에 있다는 말이다. 선택으로 기꺼이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도, 흔쾌히 달라질 수도 있다'라고 했다. 글쓴이는 에어컨을 틀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삶의 중심에 놓았다. 그것이 이 폭염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며, 마음에 거리낌 없이 자신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행동이라며.
또 작가 김유진은 <사랑을 연습하는 시간>에서 "짐작과 실제 겪는 일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거대한 강이 있지만 몸을 어느 쪽으로 돌리고 있느냐는 중요하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는 없어도 그쪽을 향해 팔을 벌릴 수는 있다(206p)"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폭염에도 에어컨을 안 틀게 된다'는 글쓴이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는 없어도 그쪽을' 향해 팔을 활짝 벌린 사람이다. 팔을 활짝 벌린 그를 나도 마주 안고 싶어졌다. 같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있는 힘껏 팔을 벌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랐다.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나를 삶의 중심에 두는 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