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필승 전

삶의 노래

by 그린

언젠가 라디오에서 조용히 읽어내리는 문장이 마음속에 선명히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건 김유정이 죽기 11일 전에 안회남이라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해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번역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을 한 30마리 고아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읽을 때마다 전해지는 작가의 삶에 대한 절절한 의지, 마음이 아프다가도 거의 100년이 다되어가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생생히 살아 있는 그 표현에 놀라게 된다.

그 딸의 딸의 딸벌 되는 나에게도 고민스러운 그것 , 돈, 돈 슬픈 일이다.

생명이 다 해가는 와중에도 세상에 대한 원망이나 한탄 대신 이 삶의 흥패를 이기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던 김유정, 살아가기 위해서 닭을 잡아먹겠다는 그 의지가 결연해 보인다.

닭과 뱀으로 병이 고쳐지겠냐마는 ,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들로 불행을 헤쳐나가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평범해서 오히려 더 문학적으로 보이는 딱 그의 작품 같다고나 할까

죽음이 눈앞에 보이지만 마지막으로 할 일을 해보고 죽겠다는 , 의지, 계획, 다짐들

죽기 전 그 열흘 동안 고기라도 먹어보고 죽었을까 김유정은

자신이 쓴 소설 속 인물들처럼 살다가 , 그들처럼 죽어간 작가

세상에 수많은 격언과 문장들 , 철학과 지성들이 삶을 이야기하지만

어려운 시대 자신을 위해 담백하게 노래한 이 노래가 나는 좋다


사는 건 누구에게나 끝이 오기에 그 순간까지 어떻게 지내고 살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그 시간이 짧거나 길거나 상관없이


오래전 듣고 반했던 이 글, 우연히 지나가다던 길에 들른 김유정 문학촌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언제나 읽어도 뭉클한 감동이 든다. 그의 글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다음번에는 김유정 묘지에 삼계탕이라도 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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