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자다르는 지나가는 길에 잠시 거쳐가는 곳이다. 여행 가이드북에는 히치콕 감독이 사랑한 노을이 있는곳이라 한다. 남편은 둘 중 하나일거라 했다.
아직 상상은 안가지만 정말 특별한 노을이거나
아니면 노을 밖에 볼것이 없는곳이거나.
나에게도 매력이 크진 않았지만 이렇게 지나치는곳들은
나중에라도 못 오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지금 아니면 못 올것 같아서 1박으로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우리가 자다르에 도착한것은 오후 4시 30분경이였다.
약 1시간뒤부터 해가 조금씩 사라질 예정이었다.
타이밍도 참 맘에 들었다. 히치콕 감독이 본 노을을 도입부부터 놓치지 않고 볼수 있다니.
우리는 미리 메신저로 연락을 해 두었던 숙소 주인과 아파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제발 숙소주인이 늦지 않기만을 바랬다.
숙소 앞에 서 두리번 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차되어 있던 차에서 백발의 할머니가 스윽 나오시면서 딱 한마디를 하셨다.
"재?"
남편의 한글이름 중 첫글자 '재'로만 불리울때가 종종 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저렴하게 예약했다는 숙소에는 발코니와 내가 맛보고 싶어했던 지역 대표 쥬스까지 웰컴 드링크로 있었다.
자다르 물가가 너무 착하다며 와인잔에 축하주를 한잔씩 했다.
노을이 시작되는 자다르
천천히 노을을 만끽히러 걸어나갔다.
노을이 붙잡고 온 어둠은 남편의 얼굴에도 있었다.
무슨일인고 하니 남편이 본 숙소 사진이랑 너무 다르다는것이다. 마음이 불안하다고 했다.
나는 내심 남편의 서프라이즈인가 생각했다.
"리모델링을 하셨는데 피곤하셔서 사진은 아직 안바꾸셨나보지"
난 솔직히 내 평생 하루만 허락됐을지도 모를 자다르의 노을을 놓치기 싫었다.
어떻게든 발걸음을 노을로 향하고 싶어서 대충 말했다.
남편은 먼저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때 문자가 왔다.
"Have you arrived?"
우리는 둘다 멈췄다. 남편은 역시 불길한 예감이 맞았단 표정이였다.난 믿기 싫었다. 신비한 보랏빛 하늘이 점점 퍼지고 있는데 이런 날벼락이 떨어졌다는것이.
히치콕을 반하게 한 밤의 그림자는 보랏빛이었다.
이 멋진 풍경을 등지고 답문을 보냈다.
"우리 너의 어머니를 만났어. 스튜디오 미아 맞지?"
답장이 왔다.
" where r u ? "
바로 몸을 돌려 숙소로 뛰어서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는데
그중에서 가장 궁금한것이 있었다.이 모든 상황의 시발점.
'우리가 예약자가 아니라면, 남편의 이름을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다행히 멀리 나오진 않았다. 좀전에 우리가 나온 그 아파트에는 건장한 30대 중반의 남자가 서 있었다. 서로를 알아보자마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라는 신호로 높이가 다른 눈썹을 주고 받았다. 그는 우리에게 손가락으로 아파트의 안쪽을 가르켰다.그곳에는 금발의 젊은 커플이 짐을 바닥에 두고 서 있었다.
그는 아마도 저 커플과 우리가 숙소가 바뀐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여자친구는 표정이 굳어있었다. 우죄인이 된 기분이였다. 조심스레 다가가 숙소의 이름을 말했더니 자신들의 숙소가 맞다고 하면서 호스트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원래 주인을 찾았으니 그 다음은 짐을 빼줄 차례다.
숙소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숙소가 바뀐지 정말 몰랐으며, 우리의 호스트에게 듣자마자 달려왔다고.
다행히 젊은 커플은 유쾌했다. 괜찮다며 웃어주었다. 나는 유쾌함을 틈타 그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가장 궁금해 했던 한가지!
"My name is jury."
"What's your name?"
그가 대답했다.
"잭"
나는 속으로 '미쳤다'란 생각과 함께 남편 이름을 소개했다.
"He is 재!"
이번에는 그가 우리에게높이가 다른 눈썹을 보여주면서 '이게 말이나 돼?' 라는 표정으로 천장을 봤다.우리는 이 기가막힌 우연에 웃음밖에 안나왔다.
그랬다. 영국에서 왔다는 젊은이의 이름은 잭.
한국에서 온 남편의 이름은 재.
할머니는 우아하게 원래의 손님인 잭을 재~(ㄱ)이라 부르신것이다.
우리는 할머니가 해 주셨던 집 사용법을 기억 나는한 자세히 알려주고 원래의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웰컴드링크는 한잔씩 먹었다는 사과도 잊지 않았다.
바뀐 숙소(왼) / 원래 예약한 찐숙소 (오)
마침내 돌아온 우리의 찐숙소는 괜시리 더 초라해보였다.
이미 밖은 밤이 되어있었다. 아쉬운대로 우리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어둠을 보며 파도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멍하니 앉아있다 좀전의 상황에 빵빵터졌다. 아마 누군가 보면 둘다 제정신이 아닌것처럼 보였을것이다.
내가 노을을 놓친것은 다시 오라는 자다르의 선물인것 같다.언제일지는 내 인생이 알려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