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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

by 정다훈

어린 나에게 아버지는 늘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때의 나는 단순히 ‘과학자가 되고 싶어요.‘ 같은 단순한 대답이 일상이었다. 그런 대답을 하고 나면 늘 어린 내가 제대로 이해하긴 힘든 말들을 조금 하시곤 했다. 겨우 남아있는 기억에는 꿈이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그걸 하면서 살게 되는 삶이 기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


조금 시간이 지나서 꿈이란 게 그런 소박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현실에서 내가 챙겨야 할 것,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갈 때쯤, 아버지는 다른 질문을 꺼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라는 말에 몸만 성장한 나는 또다시 단순히 ‘그냥저냥 평범하게.’ 짧게 대답할 뿐. 이제 아버지의 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다. 처음에는 살짝 웃으시며 평범한 삶이 가장 어려운 길이라는 말을 하시고 그런 단순한 생각 말고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삶에서 중요한 포인트나 가치관을 확립할 만한 것이 없냐는 말을 덧붙이셨다. 나는 또 그저 들으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지만 끝내 시원하게 뱉을 말은 없었다.


매번 생각할수록 조금씩 이해되는 질문이다.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했던 경험이나 여러 책을 읽고 얘기를 들으며 자신이 세우게 된 가치관과 목표들의 중요성을 깨달으셨을 터, 자신의 아들에게 본인보다 빨리 그런 것을 깨닫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얘기를 들음으로서 그런 것을 확고히 세우기엔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처음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란 질문을 듣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명쾌한 답은 찾지 못했다. 소박한 두뇌로 생각하고 생각하며 얻어낸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들 중 몇 가지를 조금 정의했다.


현재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 중에서 고른 것은 돈, 인간관계, 직업(하고 싶은 일),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시간 정도다. 돈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이 있었다. 다다익선이긴 하지만 돈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는 싫었고 굳이 많은 돈을 위해서 다른 것을 희생할 정도로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저 ‘내 삶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없앨 수 있을 정도.’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는 꽤 현실적이면서도 어려움을 동반했다. 내가 정한 가치는 어떤 뜻일까. 간단히 정리하면 만약 내 핸드폰이 고장 났을 때 생각에 없는 지출이지만 우선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 몸이 아플 때 병원비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들어둔 보험과 우선적인 몸의 건강을 위해 진료를 받고 치료할 수 있을 정도 같은 개념이다. 이는 우리 삶에서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당연한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목표지만 어려움이 동반된다. 결국 이 목표를 위해서는 직업(하고 싶은 일)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기 때문.


그렇다면 인간관계는 어떨까. 어릴 적부터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관점이 존재했다.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말 가까운 사람들 외의 관계에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거나 중요도가 매우 낮았다. 하지만 결국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이상 관심이 없거나 관련이 없어 보여도 유지해야 할 관계가 있다는 것. 이는 불편한 관계를 여럿 가지게 만든다. 한 때는 내가 가진 회의적인 관점을 내려놓고 넓고 얕은 관계를 끝없이 키우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되는 것처럼 행동했었다. 그러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생각이 바뀌었고 내 삶에서 인간관계가 가진 중요성은 굉장히 낮아졌다. 특히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움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았고 이는 나에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좀 더 스스로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이 결론에는 시간이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그럼 위의 두 가지에 대한 가치관을 분명하게 확립 지을 직업과 시간에 대한 관점이 정해졌는가?-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돈에 대해서 큰 욕심은 없더라도 최소한의 목표치가 있기에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에 따른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결국 손해처럼 생각이 된다. 인간관계 또한 필요한 만큼의 시간소비가 손해로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확고한 가치관을 형립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다.


내가 자연스러운 시간흐름에 따라 어른이 되어야 할 때가 오면서 정해낸 것은 소박하다. 꿈꿔오던 넓고 많은 선택지를 정리하고 덜어내면서 남은 소박한 것. 지금 와서 정하고 싶은 것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질문,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것.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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