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은 가장 어두우나 그렇기에 모든 것을 가장 잘 받아들인다.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 흰 도화지 같은 상태로 나온다고 한다. 태어나하게 되는 모든 경험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색을 그 도화지에 묻히고 뿌린다. 점점 퍼지고 퍼져서 어떤 특정한 색을 가진 도화지가 생겨나는데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도화지의 색을 '개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신만의 확고한 색이 생겨났다고 해서 그 도화지에 다른 색이 안 묻는 것은 아니다. 분명 종이가 색을 흡수한다면 그 위에 다른 색을 칠할 때에 덮어져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전의 색과 합쳐지게 된다. 마치 도화지에 뿌린 물감이 마르지 않는 것인지 혹은 물감이 아니라 빛인지. 결코 마르지 않는 도화지에 쌓여가는 경험들이 색을 뿌리고 뿌려서 합쳐지고 합쳐지다 끝내 검정색이 되고 만다. 빛이 모이고 모여서 투명해지거나 색이 모이고 모여서 어두워지는 차원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검정.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흡수해서 사라지게 만들 것만 같은 칠흑이. 이 현실감 없는 도화지는 놀랍게도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높은 수용성, 끝없는 가능성'이라고 불린다.
현실적이지 못한 검정색은 색이라고 하기엔 이상하다. 만약 이렇게 까지 어두운, 칠흑의 검정이라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치 그곳만 빈 공간이 되어버린 것 마냥 모든 빛을 흡수해야 한다. 하지만 도화지는 다르다. 비치는 모든 빛을 본래보다 더 밝게 반사시킨다. 주변이 모두 검정색이다 보니 작은 옅은 한줄기 빛이라도 마치 북극성이 되어버린 것 마냥 굵고 강하게 빛난다. 정말 어떤 색이든 강하게 비춰줄 수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간혹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도 저것도 다 지나온 경험들이 최소한 어느 정도 이상의 밝기를 내게 해준다. 이것은 되지도 않은 재능의 착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착각은 사람을 '가능성에 중독'되게 만든다. 데이고 데이다 마주치는 나의 재능이란 착각.
이 상태에 빠진 사람은 위험하다. 분명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적이지 못한 꿈을 꾸는 망상에 가까운 목표를 잡고 있으면서도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작은 재능은 남들과는 달라서 어떤 특별한 지점에 나를 데려가 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놓지 못한다. 더욱이 이 작은 빛이 주는 안정감은 그동안 지내오던 칠흑에서 한 줄기의 이정표이자 생명줄인 것. 그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직접 마주하고 고통스럽고 아픈 현실에 다시금 치일 자신이 없다. 한 번 마약을 한 사람은 사실상 그만둘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 이 마약은 사람의 신경에 영향을 주고 이를 바탕으로 한 화학적, 생리적 요소로 중독되게 만든다. 그리고 만약 이런 자신을 견디지 못해 끊어내려 해도 계속해서 심리적으로 괴롭혀서 결국 그 상태로 도망치게 만든다. 가능성은 사실상 마약에 가깝다. 사람의 신경을 자극시킬 수 있는, 아무런 영향 없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으로만 신경을 건드리는 존재에 가깝다. 그러니 이에 중독되어 버린 사람들이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고 만약 빠져나온다 하더라도 그게 가져다주던 안정감과 도파민에 미쳐 심리적으로 지쳐버려서 끝내 다시 손대고 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자신이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평범치 않은 길을 선택하고 '난 할 수 있을 거야.'정도로 도전하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이 걷는 길이 언젠가 '날 증명해 줄 거야.'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도전이 아닌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모든 재능과 가능성은 누구도 재단할 수 없다. 재능의 영역인 스포츠도 노력에 비해 올라가는 것이 있고 순수히 가진 것이 중요한 것도 있으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운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판단하여 도전인지 노동인지 결론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본인이다. 당신은 스스로 물어볼 수 있다. '내가 정말 이것에 재능이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뭐 보통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면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조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미약하게나마 자신이 재능이 있으며 이것을 활용해서 정말 대단한 위치에 오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이를 활용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상태라면 그것은 도전이라 생각한다. 결국 '가능성'이 중요한 것이니 만큼 목표가 낮으면 미약한 재능이라도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이다.
'때론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라는 말은 이런 가능성에 빠져버린 사람들이 제일주의 깊게 생각해야 될 말이다. 당신의 노력에 자신이 없다면, 계속해서 의문을 가지고 도망치게 되고 좀 더 바라볼 자신이 없다면, 본인의 주변이 모두 새까맣게 변해버려도 오히려 이 작은 재능의 빛이 더욱더 빛나게 되는 것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면 더 이상의 노동을 그만두고 현실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 작은 가능성에 매달려 있는 동안에는 현실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기에 되돌아오는 것이 늦으면 늦을수록 빠르게 현실에 뛰어든 사람들보다 뒤처지게 된다. 이를 위해서 당신의 거대하거나 혹은 얄팍한 재능이 목표에 도달시켜 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해라.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목표정하기'가 되는 것이다.
막연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알지도 못하는 수치의 가능성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목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능력보다 한참 안 되는 목표를 달성해서 고작해야 모래알갱이 같은 만족감을 얻은 채 사라질 수도 있으며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설정해서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감만 느끼다 스스로 수렁으로 빠져버릴지도 모를 노릇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는 자신만의 무기 하나 없이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사회에 나왔다가는 금세 도태되어 사라져 버릴 세상이 와버렸다는 것. 이제 노동의 가치는 의미가 퇴색됐다.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느냐-가 논점이 되었다. 스스로에 투자하고 스스로를 성장시켜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