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뜨거워서 시원했던
길고 길었던 여름이 끝나감을 밤중의 시원한 공기가 선언한다. 해가 마치 5살 어린아이의 반항마냥 사라지기 싫다고 억지 부리며 길게 늘이던 오후가 점점 짧아졌다. 그렇게 모든 것이 늘여져 있던 계절이 끝났다는 거다.
항상 집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하던 일은 에어컨을 트는 것. 어느 순간부터 창문만 열다가 이제, 찬바람에 창문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스팔트를 달구며 세상을 어지럽게 보이게 하던 열기와 이를 식히던 시원한 맥주, 덥다고 불평하던 거리와 그 더위를 날리던 휴가철의 계곡 같은 여름의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 불과 방금의 오후에 더위를 욕해놓고도.
여름의 일상은 길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있었다. 끝날 줄 모르던 오후의 일상은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분명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어쩌면 금방 다시 돌아올 뜨거운 날이다. 그럼에도 당장 짧아진 해와 길어진 그림자는 나를 허무에 빠트린다.
또 한 번의 작별을 고한다. 떠나가는 뜨거운 무기력과 시원한 벅참에. 가장 긴 낮이 남겨둔 것은 마냥 힘들기만 했던 시간이 아니라 많은 것을 한 추억임을. 그것을 알고 있기에 곧이어 돌아올 여름에 또다시 그 뜨거움을 맞이해 시원함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