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 여행 4일 차 이야기 (2/2)
시간 순서상으로는 기차역과 등대 사이에 신한촌이 와야 맞으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인 만큼 별도로 나누어 마지막 여행기인 10편을 작성하고자 한다.
연해주 한인 이주의 아픈 역사를 담은 신한촌에 다녀왔다. 한때 한국인이 모여사는 동네라 그 이름이 신한촌이었으나, 지금은 아파트 단지 사이 작은 공원에서 홀론 신한촌 기념비만이 남아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https://goo.gl/maps/bVtLMEznzXs1NjgK7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 먹고살기 위해서, 독립운동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 중국과 러시아로 이주를 했다. 함경도에서 가까운 이 도시 중심가에도 한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러시아 정부가 도시 외곽으로 쫓아내면서 이 곳에 다시 자리를 잡았기에 새로운 한인촌이라 신한촌으로 불렸단다. 하지만 여기서 살던 한인들도 결국엔 소련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해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이 곳에 아무 흔적도 못 남기고 말이다. 고국인 한국도 일제 강점기라 아무런 지원을 해줄 수 없던 시절, 이국 땅에서 누구에게 이 억울하고 부당한 처사를 하소연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있었다. 어딘가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로 보인다.
1937년 이 도시에 살던 한국인들(지금의 고려인들)을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켜 버린 소련 정부는 이 자리에 아파트 단지를 세워버리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 1999년이 되어서야 뜻을 모은 사람들이 겨우 기념탑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싶지만 그나마 기념탑이라도 남아있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국가란 무엇인가, 민족이란 무엇인가, 여기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고 이주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한촌 주변에는 조금씩 다른 형태의 아파트들이 가득했다. 뭔가 러시아라기보다 '소련' 느낌의, 우중충한 아파트 단지들이다. 신한촌 기념비 외에는 아무런 관광거리가 없는 주택가임에도, 우리는 물론이고 많은 한국인들이 일부러 이곳까지 다녀가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톡 여행 중 여러 잔의 커피를 마셨지만 이곳의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았다. 메뉴판에 영어는 한 글자도 안 쓰여있지만 친절하게(비록 유창하진 않아도) 영어로 말 건네는 사장님과, 아늑한 매장 분위기, 맛난 커피까지 아주 좋은 추억을 남겼다. 아이들이 시킨 핫 초콜릿이 진짜 진했다는 것도 빠질 수 없다. 신한촌에서 도보로도 멀지 않은 곳이니 오고 가는 사이에 커피와 휴식이 필요하면 들려보길 권한다.
https://goo.gl/maps/kMCqnV1N7mhG25fV8
신한촌에서 안타까움과 막연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교차로 쪽으로 나오니 큰 쇼핑몰이 있다. 식품 매장을 둘러보니 그래도 신한촌 근처라 그런가 한식 반찬가게가 두 군데 있었다. 판매하는 분이 고려인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한국말을 하시진 않아서.
https://goo.gl/maps/aXY23vjYBhkmmeYn9
점심식사 때가 되어 식사할 만한 곳이 있는지 둘러보니 쇼핑몰 제일 위층에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네. 근데 영어 메뉴판도 없고 영어를 말하는 사람도 없어서 구글 번역기와 손짓 발짓을 동원해 겨우 음식 주문. 시킨 음식은 다행히 모두 맛있었다!
시간상으로는 중간에 토카렙스키 등대와 연해주 미술관에 들렸다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Porto Franco라는, 식당으로, 구글과 블로그 여행 후기 등에서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소문대로 음식은 전반적으로 맛이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참 재미난 게 한반도 바로 옆에 있으면서 먹는 음식은 서양식인 거다. 만약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되어 남한 사람도 북한을 자유롭게 지나는 날이 온다면 북한도 북한이지만 내 차 몰고 블라디보스톡 한 번씩 놀러 가서 한국에서 먹기 힘든 빵이랑 유제품 기타 등등 신나게 먹고 올 것 같다 ㅋㅋ
https://goo.gl/maps/FG8AQbYf1XDvGk1w5
공항으로 오는 길에는 얀덱스 앱을 이용했다. 막심과 쌍벽을 이루는(?) 서비스로서, 평균적으로 가격은 막심보다 살짝 비싼데, 차량은 막심보다 더 나은 편이다.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얀덱스도 그리 비싼 건 아니므로, 편안한 여행을 원한다면 얀덱스,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싶다면 막심을 이용하면 되겠다. (우리는 처음에는 막심만 이용하다가 얀덱스 이용해 보고 후회했다, 왜 진작에 얀덱스 안 썼을까 하고 ㅋㅋ)
돌아오는 항공편. 러시아 항공사인 오로라 항공을 이용하니 역시 북한 영해를 건너서 간다. 국내 항공사는 이쪽으로 못 오고 멀리 중국 쪽으로 돌아가느라 시간이 더 걸린다. 탁월한 선택 ㅋㅋ
오로라 항공편 기내에서는 맥주를 돈 받고 팔고 있는데, 캔맥주 주제에 흉악한 가격은 기내라는 환경 상 그렇다 치더라도 왜 러시아 항공사에서 남한의 하이트와 일본 아사히를 팔고 있는 게냐, 정작 러시아 맥주는 안 팔고!! 하다 못해 러시아의 우방국인 중국이나 북한 맥주라도 팔아야 하는 것 아니냐? (당신들 나한테 맥주 팔기 싫지요?) 마지막으로 러시아 맥주 한 잔 마셔보고 싶었으나 이렇게 좌절되었다.